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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고래 / 이병률


거인고래는 크지 않습니다

왼 눈은 감정 있는 것을 보고

오른 눈은 죽어 있는 것을 보기를 좋아합니다

상처가 생기면 상처 된 자리를 스스로 떼어내 번지지 않게 하며

백 오십년을 살 뿐 오래 살지 않습니다

그 일생의 한번 나의 천막에 들른다 하였습니다


밤은 어둡고 꽃들은 서로를 모른 체 하는 사이

나는 그의 눈을 받아먹고 고양이 되고 얼음이 되고 눈발이 되려

질척이며 그가 오는 소리를 향하여 몸 돌리려 하였습니다

헌데 거인고래는 살아오지 않는 존재라 하였습니다

기다리는 일은 구실이며 병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니 설레는 일 없도록 다 내려놓아야겠는데

팔뚝에 불을 질러 연기를 피우는 천막 밖의 저 큰 나무

큰 나무 아래 몸에서 몸위로 까무러치는 수천의 달(月)들


혹 내가 터를 옮길 적마다 서 있던 저 나무 한그루가 거인고래는 아니었는지요

그것으로 다녀간 것으로 치자는 셈은 아닌지요

거인고래가 다녀가고 나와 내 생각의 풍경들은 마지막을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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