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fi / 강성은
친구는 우울하다고 했다
친구여 오늘은 내가 옆에 있어줄게
하지만 내가 옆에 있어도
우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갔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았다
다음 해 극장은 사라지고
밤새 불 켜진 쇼핑센터가 되고
혼자 온 사람은 텅 빈 커다란 카트를 끌고 돌아다닌다
쇼핑센터는 예식장이 되고
예식장은 병원이 되고
병원은 주차장이 되고
주차장은 유치원이 되고
유치원은 납골당이 되고
우리는 납골당에 갔다
친구는 여전히 우울해 보였다
여기도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다
어두운 한낮
파도가 출렁이는 소리
들으며 오래 누워 있었다
올해 대산문학상 수상작에 강성은의 시집 'Lo-fi'(로파이·저음질)와 최은미의 소설 '아홉번째 파도'가 선정됐다.
대산문화재단은 올해 제26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최은미, 시인 강성은, 문학평론가 우찬제, 번역가 조은라·스테판 브와를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시 부분 수상자 강성은의 'Lo-fi'는 "유령의 심상세계와 좀비의 상상력으로 암울하고 불안한 세계를 경쾌하게 횡단하며 끔찍한 세계를 투명한 언어로 번역해 냈다"는 평을 받았다.
강성은 작가는 5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사건과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 두 사건을 겪으면서 시를 못쓰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 시간들을 견디고 이겨내는 시쓰기를 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설 부문은 8편의 장편소설 중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정용준의 '프롬 토니오', 최은미의 '아홉번째 파도'가 최종심에 올랐다.
이중 최종 수상작에 선정된 최은미의 '아홉번째 파도'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감각적이면서도 치밀한 묘사, 사회의 병리적 현상들에 대한 정밀한 접근, 인간 심리에 대한 심층적 진단 등 강력한 리얼리티를 구축하며 문학적 성취를 이뤘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최은미 작가는 "첫번째 장편소설인 '아홉번째 파도'를 시작하면서 제 세계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겠다는 기대와 만들어낸 인물들을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반반씩 있었다"면서 "이번 수상으로 확신을 가지고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평론 부문에서는 우찬제의 비평집 '애도의 심연'이, 번역 부문에서는 조은라, 스테판 브와가 함께 번역한 'La Remontrance du tigre(호질: 박지원단편선)'이 각각 선정됐다.
우찬제 평론가는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가 애도의 주제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고민했던 것 같다"면서 "앞으로도 우리시대의 고민과 아픔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새로운 희망의 원리를 어떻게 같이 찾아 갈 수 있을까 고민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산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27일 오후 6시30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다. 수상자에게는 부문별 상금 5000만원과 함께 양화선 조각가의 소나무 청동 조각 상패가 주어지며 주요 외국어로 번역, 출간되는 기회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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