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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인성 교육의 강화

 

 

 

1

  학교교육에서 인성교육이 붕괴된 것은 학교와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학생들의 태도를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놀랍다. 이러한 학생들의 변화과정은 대한민국이 물질만능주의로 타락하는 과정과 대체로 일치한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만큼 경제적으로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고속 성장을 해왔다. 서양에서는 200-300년만에 이룩한 결실을  약 50년만에 이룩한 셈이니 기적이라는 수식어는 합당한 셈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이기적 합리성과 물질을 최우선적으로 여기는 가치가 함께 성장해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돈이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1300여년을 단일 국가로 유지해 온 우리나라에서 이렇게까지 물질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불행한 것은 그렇게 장구한 세월동안 우리가 소중히 간직해 왔던 여러 가치관들이 돈이면 무조건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천박한 가치관으로 대체되었다는 점이다.

 

  작년 대선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 만능주의에 타락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른 후보님들께는 죄송하지만 그 당시 당선 유력한 라이벌로는 기호 1번 정동영 후보와 기호 2번 이명박 후보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정동영 후보가 내세웠던 선거 공략은 도덕성이요, 이명박 후보는 경제였다. 그 과정에서 BBK사건이 터지고 대선 결과는 이명박 후보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정치가 시작된 이래 투표 결과가 그렇게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 적은 없었다고 한다. 이것이 내포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도덕성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돈만 많이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사실 돈=행복이라는 도식은 비례관계에 있지 않다. 추구하는 목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돈이 많이 있으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상당한 시간을 돈을 모으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아니 거의 일생을 전부 다 돈을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잘못된 사고방식은 청소년들에게도 고스란히 주입된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부모로부터, 선배로부터 그밖에 자신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런 논리를 수업에 적용시켜보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주위의 여러 곳으로부터 물질만능주의를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이다. 수업 중 학생들은 판단을 하게 된다. 이 수업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것, 저 수업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그 기준은 당연히 돈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령 자신의 내면적 수양이나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수업내용은 당연히 후자에 해당한다. 특히 통일과 관련하여 지불되는 막대한 비용은 마치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져서 절대로 통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수학을 배우는 이유는 먼 훗날 손익 계산을 분명히 하는데 유용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며, 지리는 부동산 투자와 관련된 부분들과 같은 부분들만 취사선택하여 집중하게 된다. 

 

  그래도 이런 학생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적어도 수업을 듣고는 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 자체가 내 인생에 있어 도대체 무슨 이익이 되는가?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순간 귀를 닫는다. 그리고 잠을 청한다. 그것도 아주 깊은 단잠을 . . . . 그 잠자는 모습이 너무나 달콤해 보여 차마 깨울 수가 없을 정도로. . . .혹시나 어떤 여선생님이 그 단잠을 깨우다가는 맞아 죽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학생은 수업을 하기 이전에 이미 판단을 한 상태이다. 당신의 수업은 들을 가치가 없는 것이므로 지금 이 순간 차라리 단잠을 청하는 것이 내 인생에 더 유익하다라고. . . . 이 판단은 철저하게 물질만능주의에 기초해 있다.

 

 

 

2

  길포드와 스텐포드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영역들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여 왔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아마도 지, 덕, 체가 조화로운 상태일 것이다. 흔히들 전인이라고 부르는 개념이다. 이 3가지 영역 중에서 우리 학교 교육은 그동안 지적인 영역에만 치중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지적인 영역도 은밀히 분석해보면 도구적 이성과 합리성 이성으로 나뉜다. 그 중에서 우리는 도구적이성만을 강조한 셈이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지적인 영역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한 개인이 아무리 암기력이 뛰어나더라도 다음이나 네이버 검색창에 있는 지식보다 더 많은 양을 습득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들은 누구에게나 공유되어 있는 상태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번도 확인해보지 못할 정도로 많은 양의 정보들이 생성되고 사라진다. <경제편>에서 진지하게 다룰 예정이지만 자본주의 체제는 이미 종착역에 이른 상태이고 우리는 경제 영역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모색할 시점에 이르렀다. 나는 그 영역을 사회적 영역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회적 영역에서 강조되는 것은 당연히 인성과 관련된 부분이다. 개인과 개인의 집합을 사회라고 정의할 때 각 개인들은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텐데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의 내면적 성찰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훈련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상대방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며 그 결과  서로 간에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행 교육은 도덕 과목을 통해 일주일에 1-2시간 씩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전부이다. 그것도 학생들 태반이 그 과목에 대해서 진부하게 느끼거나 아님 관심이 없는 상태로 선생님은 입시위주의 교육에 발맞추어 교과서 진도 나가기에 바쁘다.

 

  이런 방식으로는 절대로 학생들에게 인성과 관련된 정의적 영역을 신장시킬 수 없다. 사실 정의적 영역의 수업을 지적인 영역의 수업방식으로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알면 곧 행한다'는 주장한 소크라테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학생들 개개인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안다고 해서 그것이 곧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보장을 할 수가 없다. 인성교육은 정말로 중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집단생활을 필연적으로 할수밖에 없는데 조직생활을 함에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규칙 준수나 예절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자세등이 학교 교육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미래의 한국 사회는 정말로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이기적 합리성에 기초하여 상대방을 바라본다면 서로 간의 경쟁은 불가피해진다. 서로가 서로를 뺏고 빼앗기는 그런 형태의 사회에서 무슨 놈의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학생들에게 경쟁심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으라고 부추기고 있다. 정책적으로는 학교 서열을 공식화 하고 있으며 학교에서는 학생 구성원들 간에 등급을 매긴다. 이들이 졸업 후 사회로 나와서 과연 어떠한 행동들을 취하겠는가! 우리나라 모든 학생들이 지식을 하나를 더 아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인성 함양을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할 때이다. 이 문제는 사회과(윤리)의 전유물이 아니다. 좁게는 가정에서부터 학교 더나아가서 지역사회까지 함께 동참할 때 인성교육은 제대로 된 결실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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