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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종신형 / 조영민(조연후)

 

 

고향집 노을은 양철지붕 위에서 부식되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사귀에서 요령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손금의 가지들이 너무 우거져 어머니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쇠창살 같은 나뭇가지의 손등을 만지자 달빛이 어둑했다 달은 몇 번의 탈옥이라도 결심한 듯 이마의 주름계곡을 따라 어지러웠지만 밖으로 나오진 못했다 그 누구도 학사모를 쓸 때까지 철문 깊숙이 숨은 달을 한 번도 면회 가보지 못했다

 

전생에 무슨 끔찍한 죄를 저질렀을까 이 저녁, 집행유예 동안 잠시 출감한 듯 내 곁에 앉아있는, 어미라는, 가족이라는 감옥에서 종신형을 살고 있는 어머니 아직도 잔여형기가 남았는지 푸석한 웃음과 갓 딴 옥수수 한 보따리를 싸주신다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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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어머니의 바느질 / 박성훈

 

 

바늘로 한평생 물길을 꿰맸다는 어머니

옷감을 얻어와 옷들을 수선했다

나는 바느질이 꼬리를 흔드는 물고기 같다 생각하였다

어머니의 손에는 비늘 같은 바늘이 미끄러졌다

바늘은 미끄럽고 아주 놓치기 쉬워서

용케 잡으면 펄떡펄떡 옷감을 숨 쉬게 했다

밤은 헝겊처럼 여러 겹 겹쳐지고 있다

비늘은 반짝이는 별로 별자리를 꿰매려 한다

색실이 바늘구멍 속으로 들어가 비늘조각을 맞춘다

헤지고 닳은 옷감 사이로 유유히 흘러다닌다

입방체로 박음질되기도 하는 비늘들은

한 땀 한 땀 덧대어지는 것에 익숙하다

어머니는 늘어진 목들을 개어놓는다

실은 옷들을 끌고 다니며 여러 길을 만든다

반짇고리에는 뒤엉킨 물살이 감겨있다

옷은 부레가 되어 줄에 매달려 떠다니고

달은 하늘에서 단추처럼 채워진다

꽉 잠긴 밤 어머니는 바늘을 꽉 쥐어본다

수선을 마친 옷은 뻐끔뻐끔 숨을 쉴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비늘로 바느질을 하고 있다.

 

 

 

 

 

조영민(필명 조연후) 시인이 시 종신형으로 제1회 백교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시와 수필 우수상에는 박성훈 시인의 시 어머니의 비늘질’, 유채연 수필가의 수필 마른 나무에 비틀린 나뭇가지, 김영미 수필가 목련의 경우 수필부문 장려상에 각각 선정됐다.

 

백교문학상 첫해 대상을 수상한 조영민 시인은 뒤늦게 배운 시는 마음의 기쁨보다 실의의 연속이었다세상의 모든 질문과 해답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 만이 빠른 지름길을 주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조 시인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삼육대 대학원과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했으며 산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황금찬·권혁승·지연희 심사위원은 전국에서 도착한 제1회 백교문학상 응모작품은 여름 한낮의 뜨거운 열기만큼 치열했으며 500여 편의 작품 중에서 결심에 올라온 각 장르별 열 사람의 작품을 심도 있게 심사하고 문학상 취지이기도 한 효친사상을 문학정신에 깊이 깔고 있는 입상자 네 사람을 선정했다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조연후의 종신형은 어머니의 평생의 삶은 가족에 헌신한 쇠창살로 묶인 고난한 삶이었음을 더없는 아름다움으로 여겨 절제된 언어로 짚어낸 작품이라고 평했다.

 

백교문학상은 지난해 가을 강릉시 경포 핸다리 마을에 세워진 사모정(思母亭) 시비공원이 미래의 등불인 젊은이들에게 고향을 사랑하는 애향심과 부모님을 그리는 효사상을 함양시키는 정신적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하며 고향을 사랑하고 부모님을 그리는 작품을 전국 공모했다.

 

한편 백교문학회가 주최하고 강원도민일보사와 문파학회가 후원하는 제1회 백교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상금과 상패가 전달되고 대상작품의 경우 작품 시비로 건립된다. 시상식은 101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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