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대상] 항아리 / 정재돈

 

 

어머니는 줄곧 항아리처럼

둥글고 잘 발효된 가정을 만드시길 원하셨다.

갓 빚은 항아리에 가정의 안위를 담그시고

오랜 기간 모정의 효소로

자식들을 맛깔나게 숙성시키셨다.

행여나 음지에서 부식되지는 않을까

뚜껑 열어 햇살이 드는 곳에 말리셨고

우설(雨雪)의 세례엔 포근한 품으로 감싸 안으며

남몰래 스미는 한기를 떠 안으셨다

무르던 된장과 고추장이

숙성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시며

언젠가 많은 이들에게 그윽한 맛을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내심 흐뭇하셨다

품안에 익어가는 자식들 보며

평생 흙에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업을

마다하지 않으시며 기쁘게 깜냥깜냥 맞이하셨다

지금은 항아리처럼 짙은 황토 빛 얼굴

오돌토돌해져 주름진 살갗

오늘 문득, 그 위에

일터에 나가려던 햇살이 부리나케 앉는다.

유난히 광휘한 빛이 눈부시다

 

 

 

 

맑은 누리 문학

 

nefing.com

 

 

 

[우수상] 마지막 정거장 / 김옥란

 

 

이승에서 임기를 마친 이들이 모여 있다

당신의 몸을 열어 이 땅에 사람을 보내고

달고 쓰고 독하고 험한 것들을 다스려

아이를 키우고 가르쳤던

그 전지전능을 까맣게 잊은 이들이

당신들이 온 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머물고 있다

 

팔딱이는 어린 심장이 뛰어들던 넓은 가슴과

깜깜하고 낯설던 세계를

등불로 길을 내듯 밝혀 보이던 푸른 경지는

여기까지 오는 어느 길에서 탈탈 털어 버렸는지

몸도 마음도 지닌 것이 없다

 

길이 보이지 않는 가난의 벽 앞에서도

당당하게 무릎 세우던 당신

주고 또 주어 샘 같던 손은

망각의 바다를 헤엄치느라

허공 한 줌만 쥔 채 고요하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놀라거나 넘어질 때

우리는 기도하듯 당신을 불렀고

종교처럼 의지했다

죽어 가는 사람이 찾던 비명 같은 이름들이

불 꺼진 밤처럼 닫히고 있는 요양병원

신의 능력을 상실한 어머니들이

이승의 마지막 정거장에서 쉬고 있다.

 

 

 

 

 

5회 백교문학상대상 수상작으로 정재돈(43·수원)씨의 시 항아리가 선정됐다.

 

백교문학회(회장 권혁승)는 효친사상과 애향심이 담긴 문학 작품을 공모, 대상을 비롯해 수필과 시 등 2개 부문의 수상작을 30일 발표했다.

 

우수상은 시 부문에 김옥란(57·강릉)씨의 마지막 정거장’, 수필 부문에 황인숙(49·대구)씨의 문패와 김소희(60·부산)씨의 할미꽃이 각각 선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2일 오후 2시 강릉 경포동 핸다리마을 사모정공원에서 열린다.

 

백교문학상은 백교문학회가 젊은세대에게 효친사상을 일깨워 주고 애향심을 고취·함양시키기 위해 2010년부터 매년 효와 사친(思親)을 주제로 한 시와 수필을 공모해 시상하고 있는 효친문학상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