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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 조영민

 

 

꽃이 문을 꽝 닫고 떠나 버린 나무 그늘 아래서

이제 보지 못할 풍경이, 빠금히 닫힌다

보고도 보지 못할 한 시절이 또 오는 것일까

닫히면서 열리는 게 너무 많을 때

몸의 쪽문을 다 열어 놓는다

바람이 몰려와 모서리마다 그늘의 알을 낳는다

온통 혈관이고 살인 축축한 짚벼늘이 느껴져

아주 오랫동안 지나간 것들의 무늬가 잡힐 듯한데…

 

꽃 진 그늘에는 누가 내 이름을 목쉬게 부르다가

지나간 것 같아

꿈이나 사경을 헤맬 때 정확히 들었을 법한 그 소리가

왜 전생처럼 떠오르는 것일까

 

그늘은 폐가다 그것은 새집이나 마찬가지

나는 폐가의 건축자재로 이뤄졌다

태양이 구슬처럼 구르는 정오. 꽃그늘에 앉으면

뒤돌아서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부르다 부르지 못하면 냄새로 바뀐다는데

뒤돌아서 자꾸만 누가 부르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나무를 꼭 껴안아 보는데

나무에선 언젠가 맡았던 냄새가 난다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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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온갖 소재들, 詩로 화려하게 꽃피울 터”

 

날마다 출근하려면 정지용 시인의 생가 앞에서 차를 탑니다. 이곳으로 이사온 지 일 년 반이 넘어갑니다. 그동안, 나의 창으로 눈발이 날렸고 비도 내렸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꿀벌이 무수히 다녀갔습니다. 벚꽃의 환한 빛이 너무나 좋아, 나에게 유실된 것들을 찾아갈 때가 많았습니다.

 

지용생가 곁에서의 삶은 행복했습니다. 옥천 구읍의 상점 간판들은 온통 지용의 시들이 적혀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면 그 시구에 감흥을 받았습니다. 이곳은 작은 시(詩)의 대도시입니다. 지병 같은 나의 불행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나에게 시를 쓰는 것은 꿀벌과 같습니다. 저 벚꽃의 환한 빛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가만있으면 벚꽃도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지… 어느 때는 갓 출판된 시리즈물 같은 꽃잎을, 한 장 한 장 번역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돌아보면 시의 소재들이 자신도 번역해 달라 아우성입니다.

 

계속해서 벚꽃의 환한 빛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 영남일보와 부족한 저에게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합니다. 아울러, 수원에 계시는 어머니, 그리고 봉화에 계시는 장모님, 나의 사랑 이길현, 금쪽같은 다녕 동하 이준이, 저를 아는 모든 이에게 감사합니다.

 

뒤늦게 배운 시인 만큼, 앞으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화려하게 피워보고 싶습니다. 시의 쓴 맛, 단맛을 조금 겪어 보았으니 이제 길을 가는데 외롭지 않겠습니다. 길을 가다 꼭 한번 시 나라의 번화가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심사평] “활기찬 이미지 직조·신선한 묘사 뛰어나”

 

예심을 거쳐 올라온 이가 8명이었다. 전반적으로 과도한 수사와 진정성이 얕은 말놀음에 빠져 있어서 심사위원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으나, 이를 압축해들어가 마지막까지 논의된 몇 편의 작품에 이르러서야 그러한 의구심이 떨쳐지는 듯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유진의 ‘내 침대엔 가끔 토끼가 자요’ 외 몇 편과 조영민의 ‘목련꽃’ 등 수편, 그리고 염민기의 ‘이식’ 등을 놓고 저울질을 했다. 그 결과 쉽게 ‘목련꽃’이 당선작으로 선택됐다. 다른 작품에 비해 아주 개성적이어서 단연 돋보인다는 평을 들었다. 함께 보낸 다른 작품의 수준도 고르게 느껴졌다. ‘이식’ 등은 새로운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의 과도한 학대로 메시지가 애매하다는 점에서, ‘내 침대엔 가끔 토끼가 자요’ 등 몇 편은 작품은 아주 개성적인 데다 일정 수준을 고르게 유지하고 있어 돋보였으나 주제를 부각하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제외됐다.

 

‘목련꽃’은 제목의 소박함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아주 짜임새 있는 이미지의 구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늘은 폐가다 그것은 새집이나 마찬가지/ 나는 폐가의 건축자재로 이뤄졌다’와 같은 단연 돋보이는 구절들로 유장하게 짜나가는 솜씨가 아주 뛰어났다. 묘사도 정확하고 신선하다. 이미지의 직조 솜씨도 꾀죄죄하지 않고 상상력의 구사도 아주 활기에 차 있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꽃과 나무, 그늘과 밝음을 얽어 짜면서 ‘몸의 쪽문을 다 열어 놓는’ 그 고요한 시선이 눈부시다. 다만 이 시와 함께 보내온 그의 작품들의 미세한 부분에서 드러나는 겉멋과 자의적 이미지들이 걷어내졌으면 더 좋았으리라.

 

대성을 기대한다.

 

- 심사위원 문인수,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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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종신형 / 조영민(조연후)

 

 

고향집 노을은 양철지붕 위에서 부식되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사귀에서 요령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손금의 가지들이 너무 우거져 어머니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쇠창살 같은 나뭇가지의 손등을 만지자 달빛이 어둑했다 달은 몇 번의 탈옥이라도 결심한 듯 이마의 주름계곡을 따라 어지러웠지만 밖으로 나오진 못했다 그 누구도 학사모를 쓸 때까지 철문 깊숙이 숨은 달을 한 번도 면회 가보지 못했다

 

전생에 무슨 끔찍한 죄를 저질렀을까 이 저녁, 집행유예 동안 잠시 출감한 듯 내 곁에 앉아있는, 어미라는, 가족이라는 감옥에서 종신형을 살고 있는 어머니 아직도 잔여형기가 남았는지 푸석한 웃음과 갓 딴 옥수수 한 보따리를 싸주신다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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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어머니의 바느질 / 박성훈

 

 

바늘로 한평생 물길을 꿰맸다는 어머니

옷감을 얻어와 옷들을 수선했다

나는 바느질이 꼬리를 흔드는 물고기 같다 생각하였다

어머니의 손에는 비늘 같은 바늘이 미끄러졌다

바늘은 미끄럽고 아주 놓치기 쉬워서

용케 잡으면 펄떡펄떡 옷감을 숨 쉬게 했다

밤은 헝겊처럼 여러 겹 겹쳐지고 있다

비늘은 반짝이는 별로 별자리를 꿰매려 한다

색실이 바늘구멍 속으로 들어가 비늘조각을 맞춘다

헤지고 닳은 옷감 사이로 유유히 흘러다닌다

입방체로 박음질되기도 하는 비늘들은

한 땀 한 땀 덧대어지는 것에 익숙하다

어머니는 늘어진 목들을 개어놓는다

실은 옷들을 끌고 다니며 여러 길을 만든다

반짇고리에는 뒤엉킨 물살이 감겨있다

옷은 부레가 되어 줄에 매달려 떠다니고

달은 하늘에서 단추처럼 채워진다

꽉 잠긴 밤 어머니는 바늘을 꽉 쥐어본다

수선을 마친 옷은 뻐끔뻐끔 숨을 쉴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비늘로 바느질을 하고 있다.

 

 

 

 

 

조영민(필명 조연후) 시인이 시 종신형으로 제1회 백교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시와 수필 우수상에는 박성훈 시인의 시 어머니의 비늘질’, 유채연 수필가의 수필 마른 나무에 비틀린 나뭇가지, 김영미 수필가 목련의 경우 수필부문 장려상에 각각 선정됐다.

 

백교문학상 첫해 대상을 수상한 조영민 시인은 뒤늦게 배운 시는 마음의 기쁨보다 실의의 연속이었다세상의 모든 질문과 해답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 만이 빠른 지름길을 주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조 시인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삼육대 대학원과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했으며 산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황금찬·권혁승·지연희 심사위원은 전국에서 도착한 제1회 백교문학상 응모작품은 여름 한낮의 뜨거운 열기만큼 치열했으며 500여 편의 작품 중에서 결심에 올라온 각 장르별 열 사람의 작품을 심도 있게 심사하고 문학상 취지이기도 한 효친사상을 문학정신에 깊이 깔고 있는 입상자 네 사람을 선정했다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조연후의 종신형은 어머니의 평생의 삶은 가족에 헌신한 쇠창살로 묶인 고난한 삶이었음을 더없는 아름다움으로 여겨 절제된 언어로 짚어낸 작품이라고 평했다.

 

백교문학상은 지난해 가을 강릉시 경포 핸다리 마을에 세워진 사모정(思母亭) 시비공원이 미래의 등불인 젊은이들에게 고향을 사랑하는 애향심과 부모님을 그리는 효사상을 함양시키는 정신적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하며 고향을 사랑하고 부모님을 그리는 작품을 전국 공모했다.

 

한편 백교문학회가 주최하고 강원도민일보사와 문파학회가 후원하는 제1회 백교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상금과 상패가 전달되고 대상작품의 경우 작품 시비로 건립된다. 시상식은 101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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