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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감춘 노도 / 조경섭(조선의)

 

 

그믐밤처럼 깊어진 가슴팍으로

엄동에 눈을 뜨는 동백의 긴 겨울을 가둔다

포박당한 삶의 급물살이 해무에 쌓여있고

변방의 시간을 건너뛰려는

키 낮은 나무들이

난바다를 향해 팽창하는 중이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보다 빠르게

서로의 체온을 나누어 갖는

톳 꼬시래기 감태 파래 미역 김 다시마 모자반은

어디로도 같이 포개질 수 없어, 하늘 언저리를 겉돌고

극지에 몰린 노도는 한뎃잠을 잤다

옹색한 꿈이 목젖에 달라붙어 마지막 위안마저 틀어막히고

삭제되는 생의 목록처럼

나는 깜깜하게 유폐幽閉되었다

빈 가슴 그리움에 몰두하듯 세상 밖을 향해

눈물 베어먹던 순간을 차례차례 떠올린다

진눈깨비는 희뿌옇게 섬을 덮고

기다리던 어머니의 편지가 인편에 당도했다

찬 방바닥에 엎드려

잔기침으로 써 내려간 모정이 피딱지처럼 굳어 있다

왈칵왈칵 차가운 향기를 쏟아내던 동백꽃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꽃잎에 살냄새가 엉기듯 구차한 죄를 둘러쓴 채

사나흘 찌푸린 하늘만 빈 마당에 머물렀다

이렇다 할 저항도 없이

적막 속을 잰걸음 쳐 노도 저편으로 펄럭이는 만장

저 뭍도 돌려 앉히고

아득한 생의 극점을 따라

바람보다 가볍게 하현달로 휘어졌다

 

 

 

 

군무, 새의 형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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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이 제8회 김만중문학상의 당선작을 발표했다. 남해군은 지난 4일 유배문학관에서 ‘제8회 김만중문학상 심사위원회’를 열고 수상작 선정 작업을 마무리했다.

올해 김만중문학상 영예의 금상은 소설 부문에 ‘기울어진 식탁’의 김혜자 작가, 시·시조 부문에 ‘군무, 새의 형용사’외 6편의 김학중 시인이 각각 선정됐다.

또 은상에는 소설부문 ‘춤추는 코끼리’의 김경순 작가, 시·시조 부문에 ‘바다를 감춘 노도’ 외 6편의 조경섭 시인이 각각 당선됐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은 김만중문학상 공모에는 소설 부문에 182편, 시·시조 부문에 1613편이 접수됐다.

시·시조 부문 금상 수상작인 ‘군무, 새의 형용사’ 외 6편은 착상과 표현이 놀라울 정도로 정겹고 통찰력이 뛰어난 작품이며, 은상 수상작 ‘바다를 감춘 노도’ 외 6편은 시적 흥과 슬픔이 잘 배치돼 마치 시 속으로 끌려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평가했다.

남해군은 오는 11월 1일 남해유배문학관 개관일에 맞춰 시상식을 개최할 예정이며, 각 부문별 금상과 은상 수상자에게는 1000만원과 500만원의 상금이 각각 수여된다.

한편 남해군은 서포 김만중 선생의 작품 세계와 문학 정신을 기리고 유배문학을 계승해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하고자 지난 2010년부터 매년 김만중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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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동 살구꽃 / 조경섭(조선의)

 

 

산소 불꽃이 분필 선을 따라가면

무쇠 철판이 힘없이 잘려나간다

쇠톱이나 전동공구로는 엄두도 나지 않는 두께

태평공업사에서는 태평하게 절단된다

야성의 속살 태우는 불꽃은 허공 속으로 소멸되고

고성을 지르며 흩어지는 쇳소리가

급류의 소용돌이 같은 귓바퀴를 돌아나와

철공소 바닥에 소복이 쌓였다

시간을 하나로 잇는 태초 이후의 빛은

프라나*의 온기를 식물성으로 분류했다

마른 줄기를 타고 올라와 꽃받침에 닿으면

온 동네 튀밥 튀기듯 꽃을 피웠다

모든 색조가 빅뱅의 어둠에서 방출되고

46억 년** 동안 빛에 대한 골똘한 명상이

꽃이라 불리는 독특한 별을 탄생시켰다

우주 귀퉁이에서조차 쉽게 들키는 분광은

눈앞에서 초신성이 되어 사라지고

지상에 불시착한 풀씨들은 꽃대궁을 뽑아 올렸다

어디론가 사라진 순간들이

텅 빈 어둠의 동공을 채우고 있다

철대문 틈새로 번쩍번쩍 불똥 튀는 태평공업사

분필 선의 뒤돌아본 흔적으로 길어진 골목이

구부러진 자세를 풀고 있다

아득할수록 더 명징한 빛의 씨앗들이

봄 하늘 꽉 차게 끌어안고 살구꽃 피었다

 

* 요가 언어로 기 또는 에너지

** 지구의 나이

 

 

 

돌이라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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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정 기념사업회(이사장 윤석정)가 주관하는 5회 신석정 촛불문학상수상자로 조경섭 시인의 시 태평동 살구꽃이 뽑혔다.

 

신석정 촛불문학상 심사는 김규화, 유자효, 김주완, 이숭원 씨가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예심에서 올라온 10명의 후보 가운데 조경섭 시인의 태평동 살구꽃을 뽑았다. 이 작품은 시작 체제 갖춤이 매우 빼어났다. 시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조경섭 시인은 농민신문 신춘문예, 기독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김만중문학상, 거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조 시인은 민족정신과 시 정신을 지키고 세우신 석정 시인의 문학상을 받게 돼 무한한 영광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석정 촛불문학상 상금은 500만 원이며 시상식은 석정문학제와 함께 1013일 오후 2시 부안 석정문학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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