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의 세계 / 김은주
숲이라 불리던 나무들은 한동안 자라기를 멈췄다
그림자를 잘게 부수는 데에만 밤과 초록을 쓸 때
먹는 것에 색의 이름을 처음 붙인 사람은 누구지?
나는 밤과 오렌지가 좋은 사람
일부러 맞춤법을 틀리게 쓰며 친해질 때
아이들은 자주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다
나무 밑에 둘러앉은 무리가
그늘이 짜놓은 레이스를 뭉개며 시끄러울 때
공원 벤치는 요의(尿意)를 겨우 참는다
챙이 넓은 모자로 얼굴을 덮고 잠든 척 하는 남자와
빈약한 가슴을 감추기 위해 엎드린 여자
다른 물을 먹고 자란 꽃들을 하나의 병에 꽂아두고 같은 냄새를 견디게 하는 일 사이에
투명한 벽을 종교로 삼은 늙은이들이 있다
마른 몸에 액체를 바르고
쓴맛과 단맛이 뒤엉켜 둥글어질 때까지
실온을 견디는 열매와
다 다른 맛이 날 때까지
손가락을 빠는 내가 있다
[수상소감]
오전에는 운동, 저녁에는 산책이라고 믿으며
매일 근린공원에 갑니다.
햇빛을 감시하느라 짙어진 나무들,
웃는 상으로 짖어대는 개들,
무용보를 그리듯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노인들,
무언가를 애써 이해하려는 듯이 끄덕이다 가는 혼자들.
크고 좋은 구름이 따라붙는 사람은 오지 않는
공원의 하루,
하릴없이 어슬렁이는 것만으로 어느새
친해진 돌멩이와 익숙한 그늘이 생겼습니다.
더 튼튼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나에게 몇 시의 햇빛이 유익한지
시를 쓸 땐 어떤 근육을 써야하는지
잘 모릅니다.
눈과 귀를 열어두고 그저 기웃댈 뿐입니다.
부족함 많은 저를 1회 수상자로 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뜻한 격려 잊지 않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심사평]
작품의 외연적 내포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형식주의의 핵심용어가 낯설게 하기이다. 김은주시인의 [이응의 세계]는 제목에서 외연적으로 생소함을 제공하여 낯섦이 느껴진다. 이응 하면 얼른 떠오른 것이 자음의 ㅇ이고 둥글다는 것과 작은 원이 연상된다. 그런데 좀처럼 어떤 세계의 대입이 어려울 것 같은 그 이응에 둥근 원인 지구를 끌어와 긍정적 시각으로 내연적으로 아주 사유가 깊은 내포적 가치를 지닌 성찰을 이끌어 내었다.
작품 [이응의 세계]는 개성, 성격, 취향이 다른 불안전한 사람들의 모가 난 뾰족함을 상황에 맞추는 구사력으로 둥글어 감을 이야기한다. 은근한 시적 논리이다
일본의 현역 시인인 이토오 케이이치는 시(詩) 발상(發想) 차원(次元)의 8단계 중 가장 높은 8번째가 나무를 매체(媒體)로 하여 나무의 너머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김은주시인의 [이응의 세계]는 사물 그 너머 이면을 감지한 능력이 돋보인다. 특수한 것을 보편적 감각으로 드러내 놓는 필력 역시 대단하다.
작품 [이응의 세계]와 가장 유사하게 견주었던 시는 박소란의 [너무 깊은 오해]였다. 애지회원들의 문자메시지의 투표 결과 김은주시인의 시가 더 많은 표를 얻어 작품상으로 선정되었다. 앞으로 계간지“애지”“애지문학회”카페에 힘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애지문학회 회원 일동(글, 박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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