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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 법 / 이윤설

 

 

비린 게 무지하게 먹고팠을 뿐이어요

슬펐거든요 . 울면서 마른 나뭇잎 따 먹었죠 , 전어튀김처럼 파삭 부서졌죠.

사실 나무를 통째 먹기엔 제 입이 턱없이 조그마했지만요

앉은 자리에서 나무 한 그루 깨끗이 아작 냈죠

멀리 뻗은 연한 가지는 똑똑 어금니로 끊어 먹고

잎사귀에 몸 말고 잠든 매미 껍질도 이빨 새에 으깨어졌죠.

부리 째 씹는 순서 앞에서

새알이 터졌나 ? 머리위에서 새들이 빙빙 돌면서 짹짹 거렸어요

한 입에 넣기에 조금 곤란했지만요

닭다리를 생각하면 돼요 . 양손에 쥐고 좌-악 찢는 거죠.

뿌리라는 것들은 닭발 같아서 뼈째 씹어야 해요 오도독 오오독 물렁뼈처럼

씹을수록 맛이 나죠 . 전 단지 살아있는 세계로 들어가고 팠을 뿐이었어요.

나무 한 그루 다 먹을 줄, 미쳐 몰랐다구요

당신은 떠났고 울면서 나무를 씹어 삼키었죠

섬세한 입맥만 남기고 갉작이는 애벌레처럼

바람을 햇빛을 흙의 습윤을 잘 발라 먹었어요, 나무의 살집은

아주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죠, 푸른 생선처럼 날 것의 비린 나무냄새,

살아있는 활어의 저 노호하는 나무 비늘들.

두 손에 흠뻑 적신 나무즙으로 저는 여름내 우는 매미의 눈이 되었어요

슬프면 비린 게 먹고 싶어져요 ,

아이 살처럼 몰캉한 나무 뜯어 먹으러 저 숲으로 가요 .

 

 

 

 

2006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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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느린 우주의 걸음으로 당신을 다시 만났다

 

꿈같고 꿈에서 운 아침같다

 

한때 당신과 나, 우리 둘이는 짝짝이 신발처럼 어색했지만 잘도 어울려 다녔다.

 

내가 가장 착할 때 당신은 떠났고

 

왜냐고 묻지 못했다.

 

조금씩 해와 달의 각도를 맞추듯 그렇게

 

느린 우주의 걸음으로 걸어와 당신을 다시 만났다.

 

참 예쁜 당신

 

당신이 나를 알아볼 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그냥 안아줄 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 말도 묻지 않겠다.

 

이 별에 오길 잘했다.

 

시가 시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시인들 - 감태준 이승하 선생님과 문창과 선생님들, 강형철 선생님, 오정국 선배님, 차창룡 선배님 그리고 멀리서 마음의 손 잡아주시는 철학과 선생님들과 선후배들, 토지문화관의 봄에서 여름까지 뜨거운 예술가의 자세를 보여주셨던 고마운 선생님들, 나의 벗 기연. 그리고 엄마 아빠 가족들, 내가 그다지도 귀애하는 꽃과 새와 별의 지옥인 너에게. 시를 쓰며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문정희 황지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활달한 상상력, 시어를 부리는 탁월한 능력

 

언어를 통하여 삶을 투시하는 힘, 절제된 표현, 무엇보다 참신한 패기를 기대하며 심사에 임했다. 박민규의 '낙산', 신미나의 '부레옥잠', 한인숙의 '마이산', 이윤설의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남궁선의 '폭설', 김종훈의 '국소 마취'는 상당한 시적 성취를 이룩하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 중 박민규와 이윤설의 작품을 최종 심사 대상으로 올렸다.

 

박민규의 '낙산'은 시어를 다루는 솜씨와 객관적 서술력이 돋보였지만 신인의 패기보다는 모법답안이 주는 안정성이 넘치는 작품이었다. 이윤설의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은 활달한 상상력과 살아있는 시어를 부리는 능력이 탁월했다. 섬세한 묘사로 주제를 구체적으로 서술해 감으로써 한편의 시로서 스스로를 지탱시키는 힘을 느끼게 했다.

 

이 작품과 함께 보내온 다른 응모작들도 두루 수준을 이루고 있어 그동안의 습작의 흔적도 알 수 있었다. 부드럽고 미화된 언어보다 정확하고 정직한 언어가 감동으로 직결된다. 언어 사용자로서 최고의 축복을 누리는 한 시인의 탄생을 기다리는 분들께 기쁜 소식이 되기를 바라며, 오래오래 깊은 향기를 터뜨리는 시인으로 남기를 기원한다.

 

- 심사위원 문정희, 황지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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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여인 / 이윤설

 

 

매일 창 여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지만, 매일 창 여는 순간 일정하게 지나가는 이국의 여인. 자줏빛 붉은 함박꽃 모직코트를 여며 입은 그 몸은 뚱뚱하나 검게 불 타는 흑발, 영롱한 흑요석의 눈동자를 불가리아 여인, 이라 칭하기로 하자. 가본 적 없는데도 그 여인 볼 때마다 벽력처럼 외쳐지는 불가리아! 정염의 혀가 이글거리는 태양과 열정이 조합된 발음! 가혹하게 태질하는 칼바람을 움츠려 깊이 찔러넣은 함박 핀 꽃은 불길하게도 피붉어 하염없이 걷고 걸어도 불가리아 여인 하염없이 걷고 걸어도 내 창 앞 그 여인 어쩌다 여기에 와 있는 거죠, 겹쳐진 창문으로 지나가는 그 여인 부풀어 터질 듯 꽃핀 몸, 타오르는 흑요석 눈빛은 생각하겠지, 저 이방의 여인 코리아의 여인 창 속의 갇힌 듯 노랗게 뜬 얼굴 부르쥔 손 왜 내가 지나가는 이 시간마다 일정하게 창을 여는 걸까. 어떤 이끌림이 그녀와 나의 눈동자 속 흑점에 맞추어지고 우리 서로 의아해하며 바라본다 왜 하필 나를 선택한 걸까. 하고많은 사람 중에 불가리아 여인 코리아 여인 우연히 다시 만난다면 스치듯 안녕, 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불길하게도 매일 일정하게.

 

 

 

2006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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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오늘의 기적에서 신의 은유를 느낀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은유가 있다.오래도록 어두운 창을 바라보는 날이었어도 잘 지냈다고 미소지을 때, 그 미소에는 그의 혼자인 촛불이 흔들리던 날들과 등을 기대고 허공에 그리던 얼굴 같은 것들이 모두 둥글게 감싸인 채 소유되는 것이다. 돌아서는 그의 어깨 뒤로 숲의 잎들이 가을을 받아적기 시작할 때, 그는 그 모든 날들을 자신의 힘겨운 육체의 일부분으로 가지고 호젓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사람이 모두 시인인 때는 제 뜨거운 아픔을 손에 꽉 쥐고도 놓지 않고 지니고 갈 때이다. 그것이 또 하나의 자신이 될 때까지 버리지 못하고 울 때이다. 사람의 은유는 신에게서 배워 사람만이 읽을 수 있도록 주어진 것, 그래서 그는 신의 은유로써 살아가고 신의 품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신이 그를 버리지 못하고 울 때이다.

 

오늘 이 평범한 기적에서 나는 신의 은유를 느낀다.

 

나의 모든 아름다운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감태준·이승하 선생님과 문창과 선생님들, 강형철 선생님, 오정국 선배님, 차창룡 선배님 그리고 멀리서 마음의 손 잡아주시는 철학과 선생님들과 선후배들, 토지문화관의 봄에서 여름까지 뜨거운 예술가의 자세를 보여주셨던 고마운 선생님들, 나의 벗 기연. 그리고 엄마 아빠 가족들, 내가 그다지도 귀애하는 꽃과 새와 별의 지옥인 너에게. 기회를 주신 신경림 유종호 선생님께는 말로 다하지 못하겠습니다.

 

 

 

 

[심사평] "삶과 사물을 꿰뚫어 보는 빛나는 예지"

 

비슷비슷한 내용, 비슷비슷한 이미지들의 시가 많은 것은 같은 세대가 같은 정서, 같은 생각에서 살고 있는 데 연유하는 바도 없지 않겠으나, 한편 시를 잘못 공부하고 있어 그런 것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억지로 만들어 잘 읽히지 않는 시도 많았지만, 삶과 사물을 꿰뚫어 보는 빛나는 시가 예년에 비해 더 많았다. 그 중에서도 이윤설의 시들이 단연 빛난다. 우선 세상을 보는 눈이 남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가령 불가리아 여인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창을 열고 같은 시간에 지나가는 이국 여인을 본다는 것이 시의 내용인데, 그를 불가리아 여인으로 상정한다든가 또 그의 위치에서 창 안의 나를 바라본다든가 하는 설정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시가 전체적으로 지극히 발랄하고 싱싱하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성난 여자에서는 활기와 거침없는 서술이 독특한 리듬을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가 재미가 있고 속도감 있게 읽힌다는 점도 미덕이다.

 

재미있고 잘 읽힌다는 점에서는 황현진의 시도 뒤지지 않는다. ‘당신과의 드라이브당신에게 키스를같은 시는 시라면 으레 심각하고 어렵다는 개념을 바꿔 놓는다. 한데 어딘가 한구석 덜 익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 흠이다.

 

김종분의 시들은 조금 구투라는 느낌을 준다. ‘나는 불량 농민이다는 메시지도 분명하고 잘 읽히지만, ‘나는 구술 면접을 잘 볼 자신이 없다같은 시는 지루하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이만큼 형상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우리 문학에서 전반적으로 사회적 상상력이 퇴색되어가고 있는 현실에 있어 그의 시들은 매우 값진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세 사람의 작품 중에서 이윤설의 불가리아 여인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선자들은 쉽게 합의했다.

 

심사위원 유종호(문학평론가·시인), 신경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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