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 법 / 이윤설
비린 게 무지하게 먹고팠을 뿐이어요
슬펐거든요 . 울면서 마른 나뭇잎 따 먹었죠 , 전어튀김처럼 파삭 부서졌죠.
사실 나무를 통째 먹기엔 제 입이 턱없이 조그마했지만요
앉은 자리에서 나무 한 그루 깨끗이 아작 냈죠
멀리 뻗은 연한 가지는 똑똑 어금니로 끊어 먹고
잎사귀에 몸 말고 잠든 매미 껍질도 이빨 새에 으깨어졌죠.
부리 째 씹는 순서 앞에서
새알이 터졌나 ? 머리위에서 새들이 빙빙 돌면서 짹짹 거렸어요
한 입에 넣기에 조금 곤란했지만요
닭다리를 생각하면 돼요 . 양손에 쥐고 좌-악 찢는 거죠.
뿌리라는 것들은 닭발 같아서 뼈째 씹어야 해요 오도독 오오독 물렁뼈처럼
씹을수록 맛이 나죠 . 전 단지 살아있는 세계로 들어가고 팠을 뿐이었어요.
나무 한 그루 다 먹을 줄, 미쳐 몰랐다구요
당신은 떠났고 울면서 나무를 씹어 삼키었죠
섬세한 입맥만 남기고 갉작이는 애벌레처럼
바람을 햇빛을 흙의 습윤을 잘 발라 먹었어요, 나무의 살집은
아주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죠, 푸른 생선처럼 날 것의 비린 나무냄새,
살아있는 활어의 저 노호하는 나무 비늘들.
두 손에 흠뻑 적신 나무즙으로 저는 여름내 우는 매미의 눈이 되었어요
슬프면 비린 게 먹고 싶어져요 ,
아이 살처럼 몰캉한 나무 뜯어 먹으러 저 숲으로 가요 .
[당선소감] “느린 우주의 걸음으로 당신을 다시 만났다”
꿈같고 꿈에서 운 아침같다
▲한때 당신과 나, 우리 둘이는 짝짝이 신발처럼 어색했지만 잘도 어울려 다녔다.
▲내가 가장 착할 때 당신은 떠났고
왜냐고 묻지 못했다.
▲조금씩 해와 달의 각도를 맞추듯 그렇게
▲느린 우주의 걸음으로 걸어와 당신을 다시 만났다.
참 예쁜 당신
▲당신이 나를 알아볼 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그냥 안아줄 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 말도 묻지 않겠다.
이 별에 오길 잘했다.
시가 시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시인들 - 감태준 이승하 선생님과 문창과 선생님들, 강형철 선생님, 오정국 선배님, 차창룡 선배님 그리고 멀리서 마음의 손 잡아주시는 철학과 선생님들과 선후배들, 토지문화관의 봄에서 여름까지 뜨거운 예술가의 자세를 보여주셨던 고마운 선생님들, 나의 벗 기연. 그리고 엄마 아빠 가족들, 내가 그다지도 귀애하는 꽃과 새와 별의 지옥인 너에게. 시를 쓰며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문정희 황지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활달한 상상력, 시어를 부리는 탁월한 능력”
언어를 통하여 삶을 투시하는 힘, 절제된 표현, 무엇보다 참신한 패기를 기대하며 심사에 임했다. 박민규의 '낙산', 신미나의 '부레옥잠', 한인숙의 '마이산', 이윤설의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남궁선의 '폭설', 김종훈의 '국소 마취'는 상당한 시적 성취를 이룩하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 중 박민규와 이윤설의 작품을 최종 심사 대상으로 올렸다.
박민규의 '낙산'은 시어를 다루는 솜씨와 객관적 서술력이 돋보였지만 신인의 패기보다는 모법답안이 주는 안정성이 넘치는 작품이었다. 이윤설의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은 활달한 상상력과 살아있는 시어를 부리는 능력이 탁월했다. 섬세한 묘사로 주제를 구체적으로 서술해 감으로써 한편의 시로서 스스로를 지탱시키는 힘을 느끼게 했다.
이 작품과 함께 보내온 다른 응모작들도 두루 수준을 이루고 있어 그동안의 습작의 흔적도 알 수 있었다. 부드럽고 미화된 언어보다 정확하고 정직한 언어가 감동으로 직결된다. 언어 사용자로서 최고의 축복을 누리는 한 시인의 탄생을 기다리는 분들께 기쁜 소식이 되기를 바라며, 오래오래 깊은 향기를 터뜨리는 시인으로 남기를 기원한다.
- 심사위원 문정희, 황지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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