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 이원
이상한 봄
깊은 발은 희망을 모를 테니
깊은 발은 바닥을 모를 테니
깊은 발은 실밥 푸는 곳을 모를 테니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식탁 의자에 몸 냄새가 밴 카디건을 걸쳐 두었지만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다시는 환청과 만나지 못한다 해도
그림자의 무릎뼈가 미처 펴지지 못했다 해도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이상한 봄
달아나는 발목
엄마 아빠
피가 흩어지는 축제
비명과 꽃잎과 누수를
돌멩이와 비닐봉지의 중력을
나란히 이해해
땅을 오래 두드린 발
얼리지 않은 땅
풀들은 담장 위로위로 솟아오른다
이상한 봄
춤을 추다 발목만 남았어
내용을 생각할 틈이 없었어
온몸에 죽음의 불이 붙었었거든
작은 점 하나가 목젖 부근에
눈물을 참으면 울퉁불퉁하다
지구에서처럼
홈리스는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다
새들은 허공을 깨고 간다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서지 않는 엘리베이터에 타 본 적이 없어도
바다와 하늘이 바로 다음 언덕에서 만나고 있어도
사방의 벽마다 출구가 마련되어 있다고 해도
구겨진 틈 아니면 조롱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등 너머에서 붙잡던 목소리를 혀처럼 뽑아 쥐고 있어도
나는 사람이다
팔다리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너는 사람이다
예쁘고 연한 발목을 가졌다
자를 게 남았다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 2023년 편도행 화성 정착 프로젝트 공개 모집을 다룬 기사 제목.
이번 호에서는 <오늘의 시인> 코너를 대신하여 <제6회 시작작품상 수상자 이원 특집>을 게재한다. 등단 이후 지금까지 “‘시’라는 개념의 견고한 틀에 도전하면서 동시에 시적 상상력과 시적 형상화의 한계를 동시에 넘어서려고 했던 이원 시인”(<시작> 2014년 봄호, ?제6회 시작작품상 심사평?)의 신작시 3편과 김익균, 김승일의 작가론을 싣는다. 김익균 평론가의 이원론은 기존의 이원 시에 대한 비평 담론들이 무심히 지나쳤던 이원 시의 ‘문채의 수사학’에 착목하여 이원 시인이 ‘이미지 상태의 사유’에 어떻게 도달하고 있는가를 면밀히 구성하고 있어 주목을 요한다. 한편 김승일 시인의 이원론은 다정다감한 작가론이다. 이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이원 시인이 얼마나 따뜻한 시인인지를 느낄 수 있는데, 그런 만큼 그녀가 한국 시단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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