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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뜰 바다는 멀다 / 임해원

 


어둑 새벽
바다의 낙조가 억새들 꺾인 무릎에 얹힌다
풀씨 같은 초저녁별을 품은 거기
눈이 부셨으나
바닷가에 사는 시인은 늘 바다가 부족하다
바다가 멀리 달아났기에
하늘을 허물어 그리로 흘려 보낸다
새떼들이 날갯짓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시간은 소멸 쪽으로 다가가고
사랑이라는 것조차
무너지는 허당을 어찌하지 못한다

떠나보내야 할 사람들 발을 묶은 섬의 한 끝씩
몸에 갇혀있던 어둠은 물음표를 세운다
주지 않았음에도 받아버린 상처 때문인가
물 위에 뜬 얼굴
괄호에 갇혀 뭉개진다
젊음의 거의를 소진하고도
설명하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갖고 있다는 건
참 다행이다

말없음이 살가워지는 만큼만 세상을 이해하겠다며
어쩌다 늦게 피어난 흰 꽃에 어둠이 앉아
뜰 가득 바다가 출렁이는
하늘은 마침 밀물 때였다.

 

 

 

 

[당선소감] “시를 찾는 길, 겨우 옮긴 이 한걸음”

포도주가 익었다. 제 몸의 빛을 버리고서야 익는 술, 보랏빛이 짠한 이마를 드러낼 때 포도는 넝쿨의 기억을 붉고 선명한 항아리에 풀어 놓는다. 넝쿨은 항아리를 타고 넘쳐 나를 적신다. 그래도, 아직 바다는 멀다. 방파제 끝 수초더미에는 절정의 음역에 닿지 못한 말들이 낮은음자리표로 흐느적거린다. 잠시 헐거워진 삽작문 밀고 나가 오랫동안 살 저미게 가슴을 흔들던, 갈 수 있었으나 가지 않았던 다른 길을 걸어 갈 수 있다니 기쁘고·감사하고·많이 부끄럽다.


시를 찾아가는 나의 길, 한 발자국씩 내딛으며 힘들게 닦아야 할 길이기에 나에게 묻고 싶다. 겨우 옮긴 이 한 걸음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참으로 새로운 이 세상은 내 보폭대로 걸어도 되는 길인가. 무엇을 찾아 무엇이 되려는 길 나섬인가.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길인가. 내게 시란 내앞으로 부딪치다 부서지는 그 어떤 것들에 대한 일종의 자기치료 같은 것 이었다.


그러나 시가 아름다운 구절들의 접합에서 벗어나야 된다면, 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 것이라면, 여전히 버릴 것 버리지 못하는 나의 가난한 허기가 결코 용서되지 않을 막다른 골목길 안으로 내몰린 기분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글을 쓰고 싶으니… 눈물겹다.


일일이 찾아뵈옵고 감사드려야 할 분들을 꼽아본다. 저 먼 경기도 안성 땅에 이제는 순백색 백골로 누워 계실 내 엄마, 오랜 방황 끝에 목숨이 거두어진 후에야 우리들 곁으로 오셨던 아버지, 두 언니, 두 오빠. 나의 지적 허영을 충족시켜 주시던 여러 교수님들, 날마다 넘어져 피 흘리는 나를 반듯이 일으켜주는 내 남자와 착하고 이쁜 내 딸과 잘 생기고 듬직한 내 아들, 기쁘다고, 속상하다고, 아프다고 하면 소주잔을 들어주는 내 오랜 친구들…두 손이 부족하다. 그 분들 곁에서 조용히, 그리고 간절하게 새 길을 바라보고 싶다. 늦은 나이임에도 새 길을 꿈꾸는 오늘이 있음에, 날마다 내 굽은 등에 업히는 옥녀봉의 놀빛이 있음에, 나는, 지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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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조금 서툴러도 미래가 보이는 작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새로운 작품을 읽고 싶다. 이것이 신년의 머리에서 보고 싶은 신인에 대한 기대이다. 신인은 모름지기 새로워야 한다. 신춘문예가 신문사의 명예를 걸고 매년 진행되는 것은 이 정도의 새사람을 세상에 내보냅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새롭다’는 것은 우선 이전에는 보지 못한 맨 처음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


잘 훈련된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투르지만 미래가 보이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 선자가 갖는 욕심의 전부다. 신인은 무엇보다도 기질에 넘쳐야 하고 자신만의 표정을 지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서 시류에 휩쓸려 이래야 되느니 마느니 해가며 제복 입은 사관학교생도들 훈련 받은 것 같아서는 신춘문예 행사의 의미는 이미 죽은 것이 되고 만다.


응모작들 모두에서 받은 느낌은 신춘문예 행사가 일종의 패션쇼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럴듯한 표현들을 패러디해서 짜맞추기에는 능란한데 그 이상은 도대체가 이어지지 않은, 울림 이전의 작품들이 대체적인 추세였다. 그러니까 신춘문예에 출전할 선수 뽑자고 집단 훈련시킨 후 선수로 내보낸 것 같은 작품들이 많았다는 의미이다.


마지막까지 오른 작품은 ‘문원 고물상’, ‘소리의 집’, ‘지하포구’, ‘기억, 혹은 미련에 대하여’, ‘이방인의 뜰-바다는 멀다’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상당한 실력도 갖추고 가능성 또한 엿보였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의 그 투의 세계에서 부자유스럽다는 점이 못마땅했다. 당선작으로 뽑은 ‘이방인의 뜰-바다는 멀다’도 폐단은 여전했고 여기에다 서투른 표현 등도 눈에 거슬렸지만 그 서투른 점을 사면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개성 있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여겨졌다. 분발을 통한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김종 시인·광주펜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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