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의 턱 / 오현정
잠 없는 몽상가들은 얼굴 중앙에서 아래쪽까지
이어지는 부분에 손을 괴고
오늘밤도 그럴 턱이 있나
주억거리던 생각을 발음하다 턱이 빠질 때쯤
한 턱 낼 일, 터트리지
김수영의 거침없는 기개의 턱은 풀을 일으키고
아고리*의 섹시한 턱은 불멸의 그림을
머라이어 캐리**의 귀여운 턱은 오만대신 사랑을
빨간 바지 복부인의 주걱턱은 파란 집으로 데려갔던 턱
한 턱 내도 아깝지 않은 턱이지
나의 아래 위 턱 긴 곡선을 도려내며
아들 취직했을 때 한 턱
딸 얻었을 때 두 턱, 붉은 포도주를 마시고
브이라인이 되는 동안 귀밑 사각턱부터 옆 턱까지
흘린 피는 가슴에 검은 주름을 만들었지
레드카펫의 문턱에는 몽상가의 삶이 턱을 괴고 사유중이지
버릇과 인상을 턱이 빠져라 하초에 힘을 주고 씹을수록 열리지 않는 궁
꿈꾸는 자의 턱살을 만지려 훗날의 맥을 짚었지
기둥을 세우려 동시교정에 들어간 문리의 턱뼈
턱tuck잡힌 날렵한 턱시도 언제 입을지
* 이중섭의 발달된 긴 턱을 일본사람들이 붙여준 별명. 아고(턱)+리(李)의 뜻.
**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1970~): Hero, Emotion 등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히트곡을 부른 미국 팝계의 디바.
[수상소감] 무지개 너머 마리오의 눈빛처럼
창가에서 막 영그는 가을햇살을 백지위에 담고 있는데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느닷없이 날아왔다. 마치『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마리오가 된 느낌이었다. 베아트리체와 마주친 마리오의 눈빛처럼 내 가슴에 온통 붉은 노을이 번졌다.
얼른 냉동실 문을 열고 홍당무 한 입 베어 물고 밖으로 나섰다.
지난 밤 비바람에 성근 산국이 마중 나온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향기로운 당근 속살이 입안에서 감돌았다. 들길에 핀 하얀 구절초 꽃을 한 아름 안아본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에 골똘해지면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밤새토록 보스락댔다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난다.
다 자란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출세와 부귀보다는 그저 소박한 시인이라는 행복감에 젖어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왜 이리 허전하고 쓸쓸해지는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시인의 세상과 인연을 맺어 지나온 길이 그저 아스라하기만 하다. 당신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지를 나 자신에게 스스로 묻고 답하느라 여태껏 철딱서니 없이 눈과 귀와 생각이 여전히 나의 턱을 붙들고 영 놓아주질 않는다.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화들이 나의 턱받이가 되어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아오른다. 멀고 먼 당신은 되새김질 할 때마다 헬륨을 마신 풍선이 되고 만다.
괴레메 마을의 요정이 굴뚝연기를 들여다보며 캑캑거리기도 하고 풍등은 상상에 나부끼는 샤랄라의 치맛자락처럼 삶의 능선을 타고 펄럭인다.
길치의 쓰린 마음을 달래는 저물녘 몽니처럼 꽃은 피고 지는데 혼자 오르는 산길은 적막하기만 하다.
오직 당신만 생각하라는 갈매 빛 편지로 물든 소나무에 등을 기대면 숲속 오솔길 짙은 나뭇가지에 사랑의 끈질긴 인내와 지혜라는 모성애의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옷깃으로 재를 넘어가는 당신을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더 넓은 세상의 들판에서 의미 있는 영감靈感으로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저 산마루 그늘에서 종달새와 몰래 나눈 이야기를 차마 잊지 못해 왔노라 며 뭉게구름과 천둥번개 치는 소리를 어린아이처럼 귀담아 들을 것이다.
더욱 열정을 쏟으라는 뜻으로 홍당무와 채찍을 함께 주신 애지의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늘 이 상은 “사랑과 지혜”의 첫 관문을 통과한 것으로 여기고 결코 자만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매사에 고인 턱의 각도를 더욱 탄탄하게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시는 작가의 것이 아니라 이를 필요로 하는 독자의 것이 될 수 있도록 더욱 알뜰하고 충실한 감성과 지성의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수액을 부지런히 끌어올려야겠다.
늘 격려해 준 가족과 문단의 선후배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심사평]
시는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이며, 이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을 지탱해주는 것은 비판의 힘이라고 할 수가 있다. 모든 비판의 힘은 인식이며, 이 인식이 결여되었을 때는 그는 어떠한 비판의 힘도 가질 수가 없다. 비판의 힘이란 K.O펀치의 권투선수와 홈런타자의 그것과도 같다. 한국 시단은 이미 비판의 힘을 상실했고,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을 연출해낼 힘을 상실했다. 제15회 애지문학상 후보작들로는 장옥관의 [키스], 정용기의 [석이石耳], 이재무의 [애국자], 안도현의 [그릇], 오은의 [벽돌], 장석주의 [키스], 유병록의 [그랬을 것이다], 오현정의 [몽상가의 턱], 김성대의 [장마가 시작되었고 차이나타운에 있었다], 김언의 [완제품]이 올라와 있었지만, 우리는 흔쾌히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을 펼쳐보이는 오현정의 [몽상가의 턱]을 제15회 애지문학상 수상작품으로 선정할 수가 있었다.
오현정 시인의 [몽상가의 턱]은 ‘턱의 현상학’이며, 그 ‘턱’에 의한 말놀이의 향연장이라고 할 수가 있다. 얼굴의 하부구조로서의 턱과 관상학으로서의 턱, 위 턱과 아래 턱, 옆 턱과 사각턱, 주걱턱과 그럴 턱, 무턱과 비대칭적인 턱, 한 턱과 두 턱, 문리의 턱과 의상용어인 턱tuck, 기개의 턱과 섹시한 턱, 귀여운 턱과 턱시도의 턱, 레드카펫의 문턱과 절대권력의 턱 등이 바로 그것이며, 동음이의어로서의 턱이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답게 변주될 수 있는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몽상의 나래가 날실이 되고, 턱의 나래가 씨실이 된다. 그의 시는 총천연색의 몽상의 드라마이자 턱의 드라마라고 할 수가 있다. 극본 오현정, 기획 오현정, 연출 오현정, 감독 오현정, 주연 오현정의 모노드라마가 한국시문학의 무대를 전면적으로 장악하게 된 것이다. 말들이 아름답고 풍요로우면 그 주체자의 삶이 아름답고 풍요롭게 되고, 말들이 더럽고 추하면 그 주체자의 삶이 더럽고 추하게 된다. 턱은 관상학적으로 인간의 야망과 그 허세를 드러내게 되고, 그리고 그 인간의 사유와 그 실천들을 떠받쳐주는 대들보가 된다.
오현정 시인의 [몽상가의 턱]은 대단히 지적이며 철학적인데, 왜냐하면 [몽상가의 턱]은 그의 오랜 탐구와 성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몽상-탐구는 턱의 유형과 턱의 의미에 대한 집중의 힘이 되고, 탐구-성찰은 그 몽상을 ‘턱의 현상학’, 즉, [몽상가의 턱]이라는 기적----기념비적인 업적----을 창출해내게 된다.
몽상은 시가 되고, 시는 아름다움, 그 자체가 된다. 몽상은 사유하고 턱은 그 사유의 대들보가 된다(반경환, {사상의 꽃들}에서).
제15회 애지문학상 수상자인 오현정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며, 더욱더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을 연출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심사위원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글 반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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