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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사슴의 눈도 늙어가나 / 고형렬

- 고산지대(高山地帶)

 

 

파란 고산지대엔 벌써 가을

처연함에 반소매는 아무래도 짧은 것 같죠

또 언제 이렇게 되었나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첫가을이 온 것은

 

아침 해도 스치면 떨어지는 이슬을 먹으려고

산마루에 떠올랐다 그 해 있는 곳은

 

시의 나라에선 천공 속의 바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파도와 흰 구름과 새벽과 함께

 

이렇게 파란 배추와 무는 처음 보았네

한 번쯤 팔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 것은

다시 거둘 수 없는 생의 높이 때문일지

어른보다 먼저 아이들 얼굴에

가을이 와 있었다

 

아이들이 늘 세상과 아버지를 걱정하죠

가을은 그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또 지나가고

생채기 하나 유리금 긋는 저 고산지대

어디서 사슴의 눈도 늙어가나

 

 

 

 

2018 유심작품상 수상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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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유심작품상 수상자에 고형렬 시인, 박방희 시조시인, 송준영 시와 세계주간, 천양희 시인이 선정됐다. 유심작품상은 만해 스님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현대문학 발전에 기여한 문학인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됐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제16회 유심작품상 시부문에 고형렬 시인의 어디서 사슴의 눈도 늙어가나’, 시조부문에 박방희 시조시인의 삼릉 숲에서’, 학술부문에 송준영 시와 세계주간의 , 발가숭이 어록’, 특별상부문에 천양희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심사위원회는 고형렬 시인을 한 시인이 정서의 편안함과 아득한 정신의 혼란스러움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이런 경우는 우리 시사에서 보기 드물다그는 우리 시가 지닌 서정적 전통의 흐름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예외적이고 독특한 자신의 길을 개척한 형이상학적 시인이라고 평했다.

 

박방희 시조시인의 삼릉 숲에서당대 사회문화적 쟁점의 와중에 제시하는 하나의 실마리라며 평등한 진리(不二), 치우치지 아니하는 바른 도리(中道)와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관계하면서도 서로 장애가 되는 일이 없다(相卽相融)는 불교적 세계관이 배어 있다고 평했다.

 

또 심사위원회는 학술상 수상작 , 발가숭이 어록그동안 송준영 주간이 천착해온 선의 수행서이며 선시의 이론서를 망라하는 작품이라며 현대인이 선사상과 선시를 공부하는데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별상 수상자 천양희 시인은 동음이의어를 매개로 한 기표의 즐거움, 유사어를 활용한 음상의 재미, 반복과 병렬을 통한 리듬의 기쁨 등을 바탕으로 사람살이의 깊이 있는 진실을 실감 있는 언어로 표출해 한국현대시의 정신적 현존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고 심사위는 평가했다.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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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렬 시인은 나는 지금도 설악에서 무엇인가가 깨어지는 소리를 듣곤 한다. 아직 오지 아니한 우리의 고통 같기도 하고 어느 아라한의 희열 같기도 하며 그 선반에서 떨어진 사물 소리 같기도 하다. 산속에서 평생을 깎아가며 우듬지를 올렸을 어느 송백이 내장한 나이테의 침묵과 그 솔잎의 바람소리를 들려주려면 좀더 걸어야 할 것이라며 시를 대신하여 늘 수평선을 내다보던 설악산 너머 사진리 모래기의 두 형제섬에게 설악이 만든 이 상을 바친다고 했다.

 

박방희 시인은 시업에서 오래 겪던 혼돈과 헤맴은 결국 시조에 이르기 위한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읽어온 어떤 자유시들보다 견고하고 아름다운 시조, 시조의 형식과 율격은 혼돈에 질서를 부여했다질서를 통하여 저의 시는 품과 격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송준영 주간은 나는 순간 찰나의 미학을, 공과 같이 흐르는 흐름의 미학을 만났다. 아니 두 개의 질긴 일탈, 이 몸이 되어 만나고 그 속으로 들어가고 그는 있다. 하얀 백지는 거울이 되어 내어 놓는다고 밝혔다.

 

천양희 시인은 이제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라는 산을 넘고야 말겠습니다. 영원성을 갈망하는 시의 낱말을 더 붙잡겠다삶을 겹눈으로 보면서 새로운 것에 늘 두근거리겠다고 밝혔다.

 

유심작품상 시상식은 만해축전 기간인 오는 811일 인제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리며, 각 부문 수상자에게는 각각 1500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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