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가리 노래방을 지날 때 / 김민정
- 일종의 詩 라는 것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앙서점’ 이나 ‘남짜장’* 처럼 글자 하나 툭 떨어진 의외의 간판으로 마음 쿵 하는 경우라야 참 흔하다지만 그래도 발견하는 재미 꽤 쏠쏠하여 길 가다 우뚝 여기 어딘가 둘러볼 때가 있지
대낮이라 더 깜깜한 거기 그 가리, 가리 노래방 아래 나는 서 있었고 그건 배호나 고복수를 불러 제낄 때의 아버지처럼 비장을 건드리는 것이어서 나는 씁쓸과 쓸쓸 사이에서 창이나 슬쩍 열러둔 참이었는데
그때 들리는가, 모래바람이 인다고 했지 모래알갱이도 잘근잘근 씹힌다고 예사 사막인가 신발 벗으니 모랫발도 탈탈 털린다고 누군가는 말하였고 어떤 분은 말씀하셨는데 그게 무슨 멍게 여드름 짜는 소리래요, 닭살이나 긁는 나는 뱀살이나 비비는 나는 모레도 아니고 모래라니까 매일 아침 이 거리를 조깅하는 아가씨의 발목에 찬 모래주머니라도 찢어볼 요량으로 칼이 좋을까 모종섭이 좋을까 펜을 고르는 재미로다 詩라 하였는데
그건 아니라 하고 그건 틀렸다 하고 초 없이도 굳은 심지를 토하는 그분께선 부르면 답이요 받아 적으면 詩라 하였는데 초인이신가 만주벌판에서 말 타고 오신 선구자신가 농담인데 장난도 인생인데 왜 버럭 성은 내고 그러실까 이런 데서 화내시면 얼어 죽는다는 노래나 아실랑가 내 썰렁함의 전언은 바라건데 유대 일번지의 최양락처럼 안 괜찮아도 괜찮아유, 하는 것일진대 목도리는 왜 겹겹으로 싸고 그러실까 가리 하면 오리도 있지 않을라나 내 썰렁함의 두 번째 전언은 바라건대 일밤의 김정렬처럼 숭구리당당으로 힘없으면 다리 풀면 될 것일진대 이빨은 왜 앙다물고 그러실까
불쑥 ‘용’이라는 붉은 글자나 달아볼까 이고 나오시는 주인아저씨는 ‘가리’와 ‘용가리’ 사이에서 아슬아슬 시소를 타는 우리들의 詩를 알까나 모를까나 어쨌거나 우리들의 詩는 오늘도 우리들의 오버로만 돌고 돌아 빙고!
* 양서점은 유강희 시인, 님짜장은 이규리 시인의 시 제목에서 빌음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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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자로 김민정(31·사진) 시인이 선정됐다. 박인환문학상을 주관하는 인제문인협회(회장:최병헌)와 계간 `시현실'은 김시인을 올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수상작은 `어느 날 가리 노래방을 지날 때' 외 4편이다.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최승호 시인은 심사평에서 “김민정의 시는 자연스러우면서 재미있게 읽힌다. 그는 입심이 좋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제멋대로인 시인이다. 그만큼 자유롭고 개성이 있다. 시 속의 장난기는 의식의 가벼움이자 천진성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최 위원장은 “그러나 그를 둘러싼 세계는 지리멸렬한 실망스런 세계이고 인생은 진지할 필요가 없는 별것도 아닌 인생이다. 희망을 상실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는 농담, 넉살, 패러디, 난센스, 해학, 언어의 유희, 동화적인 환상 같은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끌어다가 시 속에 집어넣으면서 비빔밥처럼 맛깔스러운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만들어낸다”고 평했다.
김민정 시인은 인천 출생으로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대학원을 나왔다.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검은 나나의 꿈’ 외 9편의 시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가 있다.
시상식은 제8회 박인환문학제 기간인 10월13일 오후 4시 인제문화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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