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공동체 / 손미
그러니 이제 열쇠를 다오. 조금만 견디면 그곳에 도착한다. 마중 나오는 싹을 얇게 저며 얼굴에 쌓고, 그 아래 열쇠를 숨겨 두길 바란다.
부화하는 열쇠에게 비밀을 말하는 건 올바른가?
이제 들여보내 다오. 나는 쪼개지고 부서지고 얇아지는 양파를 쥐고 기도했다. 도착하면 뒷문을 열어야지. 뒷문을 열면 비탈진 숲, 숲을 지나면 시냇물. 굴러 떨어진 양파는 첨벙첨벙 건너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사라질 수 있겠다.
나는 때때로 양파에 입을 그린 뒤 얼싸안고 울고 싶다.
흰 방들이 꽉꽉 차 있는 양파를.
문 열면 무수한 미로들.
오랫동안 문 앞에 앉아 양파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때때로 쪼개고 열어 흰 방에 내리는 조용한 비를 지켜보았다. 내 비밀을 이 속에 감추는 건 올바른가. 꽉꽉 찬 보따리를 양손에 쥐고
조금만 참으면 도착할 수 있다.
한 번도 들어간 본 적 없는 내 집.
작아지는 양파를 발로 차며 속으로, 속으로만 가는 것은 올바른가. 입을 다문 채 이 자리에서 투명하게 변해 가는 것은 올바른가.
양파 공동체
nefing.com
민음사와 계간 '세계의 문학'이 주관하는 제3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손미(31)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양파 공동체' 외 49편의 시다.
심사위원들은 "양파 하나가 쪼개지는 사건 속에서 우주를 보여 주는 시인이다. 세상과 인간의 마음을 통과하는 무시무시한 동요(動搖)가 유리의 실금과도 같은 식물의 결 속에서 섬세하게 그려진다"고 평했다.
수상작은 20일 단행본으로 출간되며 부상으로 상금 1천만원이 주어진다. 시상식은 20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강남출판문화센터 내 민음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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