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공장 / 오은
무인공장에서 기술을 배웠다. 사람이 없어도 사람을 견디는 기술을. 사람이 없어도 사람인 채 버티는 기술을. 일은 기술과 상관 없었다. 아침을 먹고 스위치를 켜는 것. 저녁을 먹고 스위치가 켜져 있는지 확인하는 것, 아침을 먹고 저녁을 먹는 것이 차라리 더 고된 일이었다. 무인공장에서 일어나 무인공장으로 출근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람이 없어도 되는 곳으로 아침을 먹고 스위치를 켰다. 보지 않은 사이에 스위치가 꺼질까 걱정되어 점심은 걸렀다. 사람을 맞이할 필요도, 사람을 배웅할 필요도 없었다. 출근시간이 왔다가 노동시간이 왔다가 밥시간이 왔다가 다시 노동시간이 왔다. 정확한 간격으로 밥시간과 퇴근시간이 왔다. 기술적이었다. 퇴근이라고 쾌재를 부르면 메아리가 되어 공장에 울려 퍼졌다. 예술적이었다. 무인공장에 출근했다가 무인공장으로 퇴근했다. 무인공장에서 잠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시간이 갱신될수록 시간개념은 점점 희미해졌다. 시간은 가지 않고 늘 오기만 했다. 이상했다. 그렇게 오래 근무해도 기술은 늘지 않았다. 수상했다. 무인공장에 내가 있었다. 무인공장인데 내가 있었다. 무인공장인데 내가 있는 것이 유일하게 습득한 기술이었다. 어느 날에는 스위치를 켜는 심정으로 불쑥 내 이름을 발음해보았다. 무인공장과 달리 나는 이름이 있었다. 무인공장과는 달리, 나는 사람이었다. 저녁을 먹고 스위치를 껐다. 공장 내에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제야 일이 기술가 상관있다는 걸 알았다. 해고를 당할 때에야 무인공장에도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해고를 당했는데 정작 공장에서 빠져나갈 기술이 없었다. 무인공장에서는 유입만 있고 유츌은 없었다. 제시간은 항상 찾아오기만 했었다. 곤욕은 곤혹 전에 찾아와 곤경에 처한 것은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이 없어도 되는 곳에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없어야 하는 곳에 사람이 있었다. 한번 꺼진 스위치는 다시 켜지지 않았다. 사람 구실을 하는 게 곤란해졌다. 비로소 무인공장이 무인공장다워졌다. 뭔가를 원해서 뭔가를 원하지 않아서 입은 늘 벌린 채였다. 아침을 먹어도, 점심을 걸러도, 저녁을 먹어도 입은 늘 벌어진 채였다. 무인공장에서 기술을 배웠다. 사람 없이도 사람을 견디는 기술을. 사람 없이도 사람인 채 버티는 기술을.
대산문화재단은 올해 제27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조해진, 시인 오은, 번역가 윤선영·필립 하스를 각각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
수상작은 조해진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 오은 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 윤선영·필립 하스의 독역서 '새벽의 나나'(박형서 원작)다. 희곡 부문은 수상작을 내지 않았다.
대산문학재단이 주관하는 제27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오은(37) 시인은 4일 서울 교보빌딩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나는 이름이 있었다'에 실린 시를 쓰던 시간은 귤의 과육이 아니라 귤락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같이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로 상을 받게 된 그는 귤을 감싼 섬유질인 '귤락'을 자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라 비유했다.
오은 시인은 "귤락이 더 멀리 뻗어 나갈수록 그물망이 더 촘촘해질수록 내 우주는 따라 성장했다"면서 "낮지만 깊고 어둡지만 진한 이야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지만 팽팽해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시집이 '삶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을 끌어내고 사람의 내면을 다각도로 이야기했다'고 평가했다.
대산문학상은 교보생명 창업주인 대산 신용호 선생이 창립한 대산문화재단이 1년여 동안 발표된 한국 문학 작품 가운데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을 부문별로 선정해 시상한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상금 5천만원이 수여된다. 시와 소설 수상작은 번역 지원을 받아 해외에서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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