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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 / 기명숙

 

 

살점이 뭉텅 빠진 들쑥날쑥한 몸 하나 허공에 걸려있다

 

쾡한 눈알을 바람이 핥고 지나가자 파르르 눈가의 잔주름이 흔들린다 헤쳐가야 할 길을 또렷이 바라볼수록 굳은살처럼 딱딱한 몸은 야위어간다 그 해 누군가 억센 손으로 그의 내장을 파내고 그 속에 단단한 뼈대를 세웠다 그의 몸 바깥에서 느닷없이 아카시아꽃이 펑펑 지고, 군화자국이 지나간 자리마다 비늘 같이 꽃잎이 소복하게 쌓였다 바람 불어 허공이 저 혼자 우는 밤, 그는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뻣뻣해졌다

 

스물다섯 해, 맷집 하나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사는 북어가 있다 상한 지느러미 곧추세워 풍향계처럼 헤엄치려 하는데 아무도 그에게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우리 큰오빠……

떠나야 한다, 떠나야 한다 입술을 달싹이는데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몸 밖의 안부를 묻다

 

nefing.com

 

 

 

날아다니는 꽁치 / 기명숙

 

 

접시 위에 잘 구워진 채 퍼덕거린다 물때가 채 가시지 않은 맑은 눈을 또랑또랑 뜨고 꽁치는 지금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꽁치가 다시 날아가지 못하도록 젓가락들이 날렵하게 접시 주변을 들락거린다 그러다 보니 꽁치의 살과 살 사이 흰 머리카락 같은 가시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참 성가시게 달라붙어 있다 용케도 힘을 나란히 모으면서 촘촘히 박음질한 무명 천 조각처럼 가시는 끄떡없다 이 가시는 바다에서 꽁치의 몸을 찌르던 바늘이었다 바다를 벗어나고 싶은 꽁치가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물을 때마다 가시는 단단해졌다 가시 때문에 아파서 푸른 물결을 뚫어야 했다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고 도망치다 보니 꽁치는 길쭉해졌다 그러다가 꽁치의 몸에 청회색 바다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길게 들어와 박히게 되었다 젓가락들이 바다를 뜯어먹게 놔두고

 

지금 꽁치는 다시 날아가려고 기우뚱 몸을 한번 뒤집고 있다

반대쪽 살이 통통하다

 

 

 

 

 

[당선소감] "미숙한 출발 치열하게 정진할 터"

 

터널 속을 통과할 때 잠시 겪는 적막감이 줄곧 나를 괴롭혔다. 발길에 채이는 것은 온통 고개숙인 것 투성이고 문득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딘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럴 때마다 일기장 귀퉁이에다 주절거리기도 하고 수신인이 없는 엽서에 한없이 깊고 슬픈 내 사랑을 꾹꾹 눌러 썼다. 삶의 비의가 날카롭게 나를 스쳐가고 문학을 향한 그리움이 세월의 톱니바퀴 속에서 자잘하게 부서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두리뭉실하게 살아버리자, 하며 나를 달래고 있을 때, 기적과 같은 당선소식이 내게로 왔다.

 

과문한 문장, 부끄럽고 송구스러울 뿐인데 시인으로서 명찰을 달아주신 전북일보와 두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우석대 문창과 안도현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교수님들을 만난 건 내게 행운이었다. 그분들의 존재가 너무 커서 혹 뒤뚱거리다 그림자라도 밟을까 늘 조심스러웠다. 우석대 문창과 꼬맹이들아! 정말 고맙다. 문학캠프 담임선생님, 윤석정 선생님, 두 분의 열정이 무지하고 소심한 내게 불을 지폈습니다. 그 고마움을 오랫동안 잊지 못 할 것 같고, 무엇보다 나를 믿고 지켜봐 준 사랑하는 남편과 내 아이들, 사랑하는 아버지, <북어>의 모델이 된 오빠, 멋진 기행숙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어쩌면 하늘나라에서 시인의 모습으로 다시 살고 계실 어머니! 당신이 내 몸에 남겨놓은 풍류객의 피가 결국 무대 위로 나를 세우는군요. 친구 황미숙, 그 외에 나를 아껴주는 많은 친구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무턱대고 달아오르는 문학에 대한 열정만으로 시작한, 미숙한 출발이지만 앞으로 정진하겠습니다. ....

 

 

 

 

[심사평] 섬세한 관찰력이 돋보인 수작

 

예심을 거친 17사람의 시가 우리에게 넘겨졌다. 한 사람이 대략 3-5편씩, 더러는 10여 편이나 20편 가까이 응모한 이도 있었다. 한 사람이 열 편도 넘게 응모하는 것은 응모하는 이에게 아무래도 손해가 될 것 같았다. 그중에 좋지 않은 게 섞여서 그 사람의 다른 시들도 도맷금으로 넘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 단위가 아니라 넘겨받은 시 한 편 한 편을 독립시켜 읽어보고자 했다. 오늘이 동짓날,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날이라고는 해도, 오후 2시부터 심사를 시작했으니 시간은 우리에게 녹녹한 편이었다.

 

예선을 거친 작품들이어선지 시들은 그러나 모두 녹녹치 않았다. 선 밖으로 일단 밀어놓는 작품들이 쌓일 때마다, 하얀 실에 검정물이 드는 것을 보고 한없이 울었더라는 墨子 생각이 나곤 했다.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그 어느 색깔로도 다시는 물들일 수 없는 그런 절망적인 검정색이 아니기를 빌면서 우리는 자꾸만 선 밖으로 작품을 밀어냈다. 한 편만 뽑아야 한다는 건 얼마나 야속한 선택인가.

 

얼룩동사리, 어머니에게 잊혀진다는 말은, 날아다니는 꽁치,북어등 마지막 4 편이 그렇게 우리의 선 안에 남았다. 선 밖으로 작품을 밀어낼 때마다 우리는 작품의 흠결들을 주로 화제로 삼곤 했는데 이제부터는 작품의 좋은 데를 서로 들춰보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 곳으로 한 곳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얼룩동사리는 정확한 관찰과 참담한 부성애를 집요하게 부각시키는 전개 솜씨가 돋보였지만, 마지막 부분의 자살한 사람과 얼룩동사리와의 대비가 시적 긴장을 결정적으로 상쇄시킴으로써 시 전체가 사람이 미물만도 못한 거 아니냐 하는 일반론에 함몰되고 만 것 같다.

 

어머니에게 잊혀진다는 말은이라는 작품에 대해서 우리는 가장 길게 의견을 나누었다. ‘잊혀지는 것잘 삭아서 숙성되는 것을 일원적으로 파악하는 시적 착상이 무엇보다 돋보이는 작품이었지만 땜질 흔적이 드러나 보이는 구조상의 문제점과 숙성이 덜 된 시어들이 끝내 우리들의 맘에 걸렸다.

 

날아다니는 꽁치북어는 둘 다 기명숙씨의 작품이었다. 데생이 정확한 화가가 좋은 그림을 오래 그릴 수 있다는 말을 새삼 떠올리게 할 만큼 두 작품 다 섬세한 관찰력이 우선 돋보였다. 날아가는 꽁치의 시적 긴장이 유지되는 상상 또한 그런 섬세함 때문에 더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북어는 북어라는 媒材를 통하여 시대의 그늘과 그 아픔이 우리들의 삶 속에 어떻게 얼룩져 있는가를 가시화하고 있어서 특히 눈길을 끈다.

 

선 밖에 빚더미처럼 쌓인 작품들이 내내 맘에 걸렸지만 우리는 이견 없이 이 두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고 신문사를 나섰다.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날 뽑았지만, 가장 좋은 작품이 가장 긴 밤과 큰 축복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 팥죽도 못 얻어먹은 동짓날 짧은 해가 무슨 미련이 남아 있는 듯 녹다 만 눈길 위에 머뭇머뭇 기울고 있었다.

 

심사위원 이운룡, 정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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