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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김만중의 편지 / 송유미

 

 

부서진 파도소리 한 잎 주워 책갈피에 오늘처럼 꽂았다

어두운 바다 위로 걸어 다니는 바람 소리 사납다

섬과 뭍 사이 파도는 밤이면 더 높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이제 알 수 없다

단 하나 남은 촛불인 양

마지막 손가락 잘라 피눈물 흘리며 혈서를 쓴다

잠든 고통도 새벽이면 다시 짐승소리를 내며 울고

무성한 가시 울타리 손톱들을 세워

텅 빈 허공의 등짝을 피나게도 긁는다

막 어디론가 떠나는 구름 몇 장에게 몇 자 써서

보내야 할 말도 잠시 잊었다 몇 날 며칠

곤궁한 아궁이에 지핀 군불들이 검은 연기 끝없이 풀어낸다

캄캄한 유배가 끝나는 날까지 이 목숨이

견뎌내야 할 오욕의 입술은 이미 말라 비틀어졌다

바람은 낼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어제칠 것이다

한없이 거칠고 사나워져서 나도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이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상소할 힘도 없이

그저 능인의 진여에 기대여

피를 말리며 한 줄 글을 어머니 위해 짓는다

저 그을림 다 닦아 낸 등피의 밝음 속에서 아내가 웃는다

지고 온 고통은 잠시 신발을 벗고

형틀 위에 앉아 조은다

바다를 건너오는 말발굽 소리 희미하고

풀썩 석양은 수평선 밖으로 떨어지고.

 

 

 

 

검은 옥수수밭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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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보부상들의 이야기를 담은 대하소설 객주로 한국문단의 대표적 작가로 자리매김한 김주영 작가의 잘가요 엄마가 제4회 김만중문학상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문학평론가 임헌영 심사위원장을 비롯한 7명의 심사위원은 남해 고도에서 모정을 그리며 썼던 서포의 사모곡 집필 자세와 서울에서 모정을 그리며 쓴 김주영의 사모곡 창작 동기는 시대를 넘어 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귀양살이하는 아들이든 도시에서 출세한 아들이든 어머니에게는 한결같은 근심덩어리였다는 점에서 인간은 모성애 앞에 평등할 것이다이런 모성애가 국토와 역사와 민족으로 어우러져 펼쳐진 게 김주영 문학의 요체이기에 만장일치로 대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남해군은 서포 김만중 선생의 작품세계와 문학정신을 기리고, 유배문학을 계승 발전시켜 한국문학발전에 기여하고자 2010년부터 매년 1억원의 고료로 김만중문학상을 운영해 왔다. 1회부터 제3회까지는 공모를 통한 응모작품 중에서 수상작을 선정해 시상해 왔지만 올해부터 시상제도를 바꾸어 최근 16개월간 발표된 작품들도 추천위원을 통해 심사대상에 올렸다. 그 결과 42명의 추천위원들이 37명의 발표작품을 추천하여 김주영 작가의 잘가요 엄마가 선정부문 최초의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시조 응모부문은 박현덕 시인의 시조 노도에서의 하룻밤59편이 금상, 송유미 시인의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김만중의 편지8편이 은상으로 선정되었다. 심사를 맡은 정호승, 최영철, 이우걸 시인은 두 작가는 모두 김만중과 그의 시대를 모티브로 시집 분량에 가까운 신작시를 보내왔으며, 그런 양적 결실 못지않게 시의 맛과 멋을 유지한 균질의 밀도도 갖추고 있었다며 두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4회 김만중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112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문학제와 함께 열린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함께 50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지며, 각 부문별 금상과 은상 수상자에게도 상패와 함께 각각 1500만원과 10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한다.

 

한편 군은 김만중 문학상의 품격을 높이고 유배문학의 정신을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응모분야 수상작들을 책으로 엮어 10월 말경에 작품집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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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유리 상회 / 송유미

 

 

허름한 희망 유리 상회 창문은

수족관처럼 뭉클뭉클 몰려다니는

양떼구름을 키우고 모래 바람도 키운다.

어느 창틀에든 맞게 잘라 놓은

여러 개의 유리들은

골목길 모롱이에서 튀어나온

똑같은 크기의 승용차와 사람들을

무수히 복제해서 쏟아 내기도 한다.

때론 흐릿하거나 밝거나 어두운

희망 유리 상회 창문 안을 기웃대면

심해에 사는 거북이처럼

등이 굽은 주인을 만날 수 있다.

한 장 한 장 저마다 다른

바다를 품은 듯 바람에 잔물결 치는

희망 유리 상회, 문이 열린 날보다

문이 굳게 닫힌 날이 많은 희망 유리 상회

어쩌다 밤늦게 그 앞을 지나노라면

밤바다보다 고요한 침묵에

나는 지느러미 돋는 한 마리 물고기가 된다

 

 

 

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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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빛나는 인간적 가치를 찾아

 

전태일문학상에 작품을 보내주신 분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소외된 노동의 해방과 뭉그러지고 찌그러진 인간의 해방을 위해 스스로 빛의 길이 된 전태일 열사의 정신처럼 빛나는 글들을 만났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현장을 담아낸 이륜길 씨의305 창진호, 김정원 씨의오월, 최늘샘 씨의델몬트 망고 쥬스에서는 현장으로 집중된 모순을 생생한 언어로 담아내는 힘이 빛났습니다. 그런데 함께 보낸 다른 작품들이 받쳐주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구광렬 씨의 시편에서는 의미를 끌고 나아가는 힘이 돋보였으나 응축되지 못해 아쉬웠고, 박주석 씨가 보내온 시 중에서는 반가유상 앞을 지나다가가 눈에 띠었지만 다른 시편들이 못 미쳐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응모한 작품 전체가 고른 시적 성취를 이룬 작품을 수상의 기준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은 전태일 사상의 핵을 이루는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의 실천 활동을 문학으로 왕성하게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분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요구를 충족하는 작품이 송유미 씨의희망 유리 상회2편이어서 이를 당선작으로 결정했습니다.

 

전편에서 인간 노동이 만들어낸 지혜를 새 세상의 골조로 삼아야 한다는 단단한 사상성이 돋보였고, 인상적인 면을 중심 형상으로 다듬고 그 안에 의미를 응축시키는 형상성이 좋았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은 다른 문학상과 달리 현장에 충실하면서도 그 안에서 빛나는 인간적 가치를 찾아 예술적으로 드높이려는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당선작이 이를 전적으로 충족하는 바는 아니지만 출발점에 세우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송유미 씨를 지느러미 돋는 한 마리 물고기”(희망 유리 상회)로 세상에 내보냅니다. 큰 진전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 심사위원 맹문재(시인), 문동만(시인), 오철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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