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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천동 본가입납(本家入納) / 이명

 

 

태어나 최초로 걸었다는 산길을 돌아

푹신한 나뭇잎을 밟으며

청주 한 병 들고 능선을 밟아 내려갔니더

누님이 벌초를 해놓은 20년 묵은 산소는

어둡고 짙은 주변의 빛깔과는 달리 어찌나 밝은지

무덤이 아니었니더

봉긋하게 솟아오른 아담한 봉오리

그랬니더, 그것은 어매의 젖이었니더

진초록 적삼을 살짝 풀어 헤친 자리에 속살이 드러나고

빛이 쏟아져 나왔지요

나는 그만 아기가 되어 한참동안 보듬고 쓰다듬고

얼굴을 파묻었을 때는 맥박소리가 들려오고

숨이 턱 막혔었니더

내가 오는 줄 알고

미리 나뭇잎으로 길을 덮어두고

아삭아삭한 소리까지 그 속에 갈무리해 두었디더

나는 낙엽을 밟으며 산등을 넘고

어매는 그 소리에 옷고름을 풀었겠지요

적삼 속에서 영일만 바다가 아장아장 걸어 나오고

해안선이 출렁거리고

몽실몽실한 백사장이 예전과 같았니더

이 젖의 힘으로 여태껏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환하게 한 세상 살고 있고

하늘 가득 씨앗들이 날아오르고

파릇파릇 아기 부처들이 자라나고 있었니더

 

 

 

분천동 본가입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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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천의무봉을 꿈꾸며

 

뜨거웠던 지난 여름 어느 날, 매미가 밤을 새워 방충망에 매달려 울었다. 매미의 눈에는 밤새 흘린 눈물의 흔적이 하얗게 지워져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매미가 몸을 흔들고 날개를 퍼덕였다. 춤을 추는 듯했다.

 

사르나트에서 사정없이 내리치던 죽비를 얻어맞은 교진여의 영혼처럼 울음 울던 참매미의 갑작스런 춤사위에서 매미의 깨달음이 보였다. 그렇구나, 그 동안 나는 나를 들여다 본 세월이 없었구나. 그리고 어디에서라도 진실로 소리 내어 울어본 적이 없었구나. 나는 비로소 정면으로 내 앞에 서 보았다. 시를 공부한 것이 아니었다. 그 동안 나는 ‘내 껍데기’와 싸웠을 뿐이었다. 서서히 나를 알아가는 순간,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시에 눈 뜸이 내 눈을 뜨게 하고 마음을 열어 주었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윤회와 밝음과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눈에 보이지 않던 미물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고 내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시는 내게 그렇게 한 세상을 열어 주었다. 2년여의 짧은 시 공부에서 나는 순수의 하늘과 바다와 들녘을 누비며 자연과 더불어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습작에만 열중했다. 그것은 내 삶에 주어진 최초의 자유였다.

 

지금 이 순간, 시를 지도해 주신 박제천 선생님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오래 전 돌아가신 어머님이지만 한순간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이 상을 어머님의 영전에 바친다.

 

 

 

 

기사문을 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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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잘 익은 말의 빛깔

 

아침의 언어는 언제나 눈부시다. 신춘문예의 벽을 넘기 위해 오래고 먼 모국어의 장강을 거슬러 올라온 신인조들이 저마다의 빛깔과 소리와 뜻을 절정으로 뽑아낸 시, 시조는 더욱 그렇다. 시조가 우리의 전통시인 터에 굳이 자유시와 나뉘일 까닭이 있을까마는 지금까지의 현상은 분리해서 공모를 했었는데 불교신문의 경우는 시라는 큰 틀 속에 묶은 것이다.

 

총 310인의 응모자에 편수로 1000편이 넘는 작품들을 읽으며 느낀 것은 대체로 시의 수준이 고르게 높아가고 있으며 시 경작을 하는 후보층이 두텁다는 것이었다. 다만 시행지가 주는 종교적 선입견 때문인지 불교적 소재나 주제의 작품들이 두드러지게 많았다는 점이다. 그것이 감점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의식적인 필요는 없어야 할 일이다.

 

어렵게 가려낸 결과 ‘분천동본가입납’ ‘순천만의 저녁’ ‘소금꽃’ ‘돌탑을 쌓으며’ ‘대숲이 있는 항아리’를 최종심에 올려놓고 저울의 눈금재기를 해서 ‘분천동본가입납’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시도 예술의 한 양식인 이상 시대적 패러다임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몇 해 특히 신인들이 좇아가는 시의 흐름은 우리 시의 정체성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당선작 ‘분천동본가입납’은 연어가 모천으로 회귀하듯 어머니의 산소에 가서 “어메의 젖”과 만나는 “풀벌레들이 환하게 한 세상을 살고 잇는” 정경들이 크게 꾸미지도 않으면서 깊고 은은한 가락으로 펼쳐진다. 다시 아기가 되는 화자와 어메와의 해후가 “…니더”의 화법으로 전해주는 잘 익은 말의 빛깔이 오래 묵은 향기로 피어난다. 함께 보내온 ‘추사가 보내온 저녁’이 작품을 끌어올리는 밑밭침이 되었음을 덧붙인다. 더욱 큰 성과있으시기를 빈다.

 

심사위원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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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기원 / 안병호

 

  

문득, 뼈가 시려오면

내 뼈의 아득한 시원을 찾아

눈과 바람의 길을 걸어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이라는 것이

대체로 나의 문명이지만

그것은 비석에 판각되거나 정의되어진 것만이 아닌

단단한 그 무엇이 내 속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과 말 속에도 뼈가 있다하고

문중의 아재 한 분은

바람조차 투명한 뼈를 지니고 있다하므로

뼈는 삼라만상의 근원이다

모든 족속은 그 조상으로부터

몇 개의 맑고 흰 뼈를 물려받아 사는 동안

또 한 생이 고요히 마감되는 것이다

 

“뼈가 시릴 적엔 몇 모금 음복술로 덥히면서 오백년 전, 통정대부 할아버지를 만납니다. 삼십대에 무슨 사화로 졸(卒)하신 당신, 처자식은 관노가 되고 그 때 당신의 눈물은 눈발이 되어 사방 백리까지 날렸습니다. 그때부터 당신은 뼈마디마다 수수눈꽃을 피우면서 아버지와 저의 뼈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눈발 속에도 맑은 뼈가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아버지가 졸(卒)하시던 그 때처럼”

 

아버지는 신발공장 공원에서 출발하여

생의 마지막 즈음 공사판 반장직에 올랐는데

젊은 나이에 병으로 졸(卒)하셨다

그 때 아버지는 뼈만 남은 문양으로

어린 내 손을 꼭 잡은 채, 흐린 물기를 보였는데

물기는 뼈를 타고 흐르다 서서히 결빙되고 있었다

어린 나는 앙상한 뼈의 모습이

너무 무섭고도 생경해 입관 하던 날조차

차거운 뼈를 따습게 데우지 못했다

그 날에도 먼 곳에서부터 눈발이 날려 왔고

 

오래지 않아 강아지처럼 여린뼈를 가진

내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아버지, 오늘 밤 수북이 눈이 내립니다. 눈송이 송이마다엔 당신의 눈물이 담겨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북편에서 날리는 눈발에는 종가에 계자로 와 당신 집안은 절손 된 9대조 조부님의 눈물도 보입니다. 저와 아이는 오늘 같은 밤이면 뼈를 살포시 맞대고 세상을 꿈꿉니다. 그래서 눈 오시는 밤은 참으로 마음 따습습니다.”

 

뼈가 잘 맞물려서 사계절을 보냈다

펼쳐진 시간 속에서

나의 뼈는 좀 더 유연해지고

아이의 뼈는 좀 더 옹골차졌다

몸속의 뼈들을 가지런히 정돈하여

순하게 낮추는 오늘,

뼈마다 하얀 풀꽃이 피어난다

 

향불을 피우는데 음력 시월 을해(乙亥)

이른 눈이 축문과 함께 투명하게 날린다

 

기서유역氣序流易

상로기강霜露旣降

첨소봉영瞻掃封塋

불승감모不勝感慕

근이謹以

청작서수淸酌庶羞

지천세사祗薦歲事 상尙,

향饗

 

“당신들께서는 하얗게 뿌려지는 눈으로 혹은 투명한 축문의 곡조로 살아오십니다. 맑은 눈발 속 나폴 나폴 떠다니는 어린 것이 또 다른 뼈의 기원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뼈를 추스르며 어린 뼈를 돌보려합니다. 아이를 가만히 껴안아봅니다.”

 

 

 

 

게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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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흉한 글 수상…더욱 정진하라는 뜻

 

겨울이 깊어지고 있다. 동짓달 바람과 함께 결빙된 어둠이 내린다. 내 영혼도 시린 어둠처럼 오랜 시간 해빙되지 못했다. 문득, 불안정한 물상들이 스쳐지나간다. 지난 삶은 일상의 갈피마다 차가운 그림자가 펼쳐지곤 했다. 발은 자꾸 헛디뎌지고 내 속의 언어는 좀처럼 시가 되지 못했다. 시가 되지 못한 언어들이 입 안에서 술렁이다가 자주 치아를 흔들면서 치근단까지 상하게 했다. 오늘도 치과를 다녀왔다. 나는 그렇게 겨울 풍경처럼 기울어져 바람에 흔들거렸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늦은 나이에 문학을 접했다. 불혹을 몇 해 앞두고 중한 병을 앓았던 적이 있었다. 병상에서 몇 권의 시집을 읽은 것이 시를 처음 만나게 된 계기였다. 무작정 독학으로 시 창작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시를 통해 모질고 험난했던 지나간 생과 화해도 하고 내 영혼도 위로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아둔하고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가 내 생에 있어서 또 하나의 얼음송곳이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쓴 시가 문자와 이미지에 갇힌 관념의 조합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더욱이 영혼의 해독은 고사하고 육신의 해독도 불가능한 비문들이었다. 깊은 사유와 철학 없이 시를 쓰다는 게 참으로 무모한 짓임을 인식하고는 오랜 시간 글 짓는 것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울림 없는 시를 세상에 내 놓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알고 있기에 당선소식을 듣고 긴 한숨을 쉬었다. 나에게 시 쓰기란 늘 두려운 작업이었다. 이젠 두려움이 더욱 깊어지겠지만 이런 상황도 천 년 전에 이미 정해진 운명일 것이다. 흉한 글을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의 의도는 목숨 걸고 정진하라는 의미임을 잘 안다. 혼신을 다해 노력해야겠다. 지면을 빌어 함께 밥을 먹는 사람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나의 공백에 대해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고 전하고 싶다.

 

 

 

 

아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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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혈육에 대한 ‘화자의 연민’ 잔잔히

 

상당수 시편에서 참신한 발상과 탄탄한 직조력에 놀라면서 능청스런 어법과 해학으로 읽는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본지의 특성상 불교적 선미가 깃든 작품이 상당수 있었으나 대체로 관념을 육화시키는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그러나 순조로운 시상전개와 유려한 발성이 돋보이는 ‘초록 함정’이나 ‘바람의 사원’ 같은 작품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해학성이 넘치는 ‘산국이 노랗게 피었어’나 ‘언어 수난 기록문’, ‘동물의 왕국’과 ‘월식’의 참신성과 시적 통찰력, 생명에 대한 외경과 사실적 묘사가 돋보인 ‘고양이에 대한 편견’, 한 치의 오차 없이 조사가 탁월한 ‘꽃잎’과 ‘낚시’에서는 선명한 이미지와 영상미가 돋보였다. 이러한 시 읽기를 두루 충족하는 ‘어머니’와 ‘살구나무’ 그리고 ‘들 찔레꽃’은 ‘뼈의 기원’과 끝까지 겨루었다.

 

신춘문예는 신인의 등용문이라는 점에서 언어적 세련성과 완결성도 중요하나 시적 통찰력과 참신성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 한편의 시를 꿰뚫는 유기적 통일성과 새로운 발성을 기대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새로움의 추구’로 하여 상당한 수준에 이른 응모자 몇 분의 시편이 보여주듯이 허위적 치장이나 포즈, 단선적(斷線的) 언어구사로 소통불능의 난해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결국 <뼈의 기원>을 진정성과 설득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뼈의 기원’에서 시적 화자가 들려주는 진지한 발화는 시종 중량감을 가지고 시적 구성을 탄탄히 떠받치는 힘을 발산하고 있다. “몸속의 뼈들을 가지런히 정돈하여/ 순하게 낮추는 오늘”은 시제(時祭)를 지내는 기일이다. “향불을 피우는데” “이른 눈이 축문과 함께 투명하게 날리는” 데서 ‘나의 뼈’와 ‘아이의 뼈’를 이루는 그 기원과 눈발로 오시는 조상님들을 추상(追想)하고 있다. 이 시의 탄탄한 구성력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몰락한 가계의 조상과 혈육에 대한 시적 화자의 따뜻한 연민이 잔잔히 배어나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홍성란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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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세 줍니다 / 유금옥

 

 

나뭇가지에 빈 가게 하나 있었어요. 참새 두 마리가 날아와 화원을 차렸죠. (햇살 꽃방) 정말 그날부터 햇빛들이 자전거 페달을 쌩쌩 밟았다니까요

가게에 봄이 한창일 때는 산들바람도 아르바이트를 했죠. 사랑에 빠진 벌 나비가 주 고객 이였는데요 창업에 성공한 사례였어요

참새들은 날개 달린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요. 가위로 꽃대를 자르다 서로 눈이 부딪치면 재재거리며 웃었어요. 앗! 그때 여름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갔어요

가을이 이삿짐 트럭을 타고 지나간 다음 날 나는 보았죠. 양은냄비 브래지어 구두 숟가락들이 낙엽이 되다니 아스팔트 바닥에 나 뒹굴다니

비 내리던 가을 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꽃방은 다시 문을 닫았어요. 가랑잎 한 장만한 쪽지를 붙여 놓았지만 겨울 내내 가게는 나가질 않았어요. 가게 세 줍니다(연락처;살구나무)

 

 

 

 

줄무늬 바지를 입은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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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원고지 위를 자유분방하게 뛰어놀겠다”

 

영동지방 적설량, 108cm 하얀 눈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02-733-1604’ 낯선 전화벨 소리가 서울에서 강원도 대관령 중턱, 폭설로 버스도 끊긴 이 산골짝까지 어떻게 찾아왔을까요.

길이 어디에도 없을 때 온통 절망으로 세상이 캄캄해져 있을 때 나의 시는 이렇게 불쑥 찾아오곤 했습니다. 마치,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부메랑처럼 내가 당도할 수 없는 먼 곳으로 사라졌다가 신기하게 되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지금, 내 앞에 사뿐히 놓여 있는 부메랑이 둥글다는 것은 왜 이제야 알게 되는 걸까요.

내가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함부로 날려 보냈던, 연필 칼이나 가위로 오려낸 장래희망, 비뚤비뚤한 각이나 모가 나 있던 장래희망이 어느 세월을 떠돌며 스스로 지워지고 닳아버린 다음에 돌아오는 걸까요.

흰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내가, 떠돌던 부메랑처럼 돌아와 잠시 근무하고 있는 초등학교 도서관, 전교생이 스무 명도 안 되는 산골학교 운동장은 오늘같이 흰 눈이 내리지 않아도 날마다 순백의 백지였습니다. 아이들 마음 속에는 크레파스 공장이 한 채씩 들어 있습니다. 몽당 크레파스 같은 아이들이 뛰어와 아름드리 살구나무 밑동을 타고 오르면 우르르, 분홍빛 봄이 몰려왔고, 가끔은 초록빛 소나기들이 뛰어다녔고, 또 어느 날은 실바람 혼자 가오리연을 날리는 일요일도 있었지요.

훌쩍 그 연을 타고 올라가, 실눈을 뜨고 서울 방향을 가늠해 보아도 여기서 임 계시는 서울은 너무 먼 곳이었지요. ‘거무데데한 나의 시들이 도시체험 한 번 못하고 저 살구나무처럼, 뿌리박혀 살다가 죽어가는 것도 괜찮은 인생이야’라며 제법, 똑똑한 생각이 들 때쯤 이렇게 폭설이 내려 마을이며 운동장을 온통, 새하얀 도화지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순백의 마음이 되기까지 나는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와야 했던가요.

드디어, 지금까지 내가 방황했던 모든 길들은 지워졌습니다!

살구나무 한 그루로 살 수 있도록, 우둔한 나에게 미리 시를 가르쳐 주신 정진규 스승님, 이승훈 스승님, 그리고 송준영 선생님 고맙습니다. 또 전국 미인대회에서 산골 아이처럼 생긴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큰절 올립니다. 앞으로도 결코 미인이 되지 않도록 맨발로 흰 눈밭을 뒹굴 것이고 햇볕에 그을리면서 크레파스처럼 자유분방하게 원고지 위에서 뛰어놀겠습니다.

 

 

 

 

[심사평] 일상 속 깨달음 발견한 시적통찰 탁월

 

투고된 작품들을 몇 차례씩 숙독하여 마지막 까지 남은 작품은 ‘가게 세 줍니다’, ‘자작나무의 행로’, ‘정씨 목공예방’, ‘신발 속에서 걸어나오다’, ‘딱다구리 경전’, ‘꽃들의 언어’, ‘호수의 법문’, ‘안부’ 등이었다. 이 중에서 ‘가게 세 줍니다’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최후까지 겨룬 ‘자작나무의 행로’도 당선작으로 별반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미학적 완결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도전해 보시기 바란다.

‘가게 세 줍니다’는 스케일이 크거나 문제성을 지닌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평범 속에서 진리를, 일상 속에서 깨달음을 발견한 시적 통찰이 돋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미학적 차원에서 신선하게 형상화시킬 수 있는 언어적 감수성도 탁월하였다. 자연과 하나 된 인생의 참 모습이 나무의 사계절을 통해 잘 표현되어 있다. 모든 훌륭한 시는 쉽게 읽히면서도 감동을 주는 법이다. 굳이 어렵게 쓸 필요가 없다. 당선작은 이 같은 시의 원리를 잘 터득한 듯 하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시론에서 논의되고 있는 시의 보편적 원리를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시창작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한 정석이다. 첫째 이미지의 등가적 반복이다. 1, 2연은 봄의 이야기를, 3연은 여름의 이야기를, 4연은 가을의 이야기를, 5연은 겨울의 이야기를 빌어 같은 자연의 의미를 네 번 굴절시키면서도 각각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둘째 상상력의 이원적 대립이다. 시인은 자연과 문명이라는 상반된 두 세계를 한가지로 일원화시킨다. 셋째 이미지들의 병렬적 기법이다. 1연에서 ‘자전거 페달’을 이야기한 것은 3연에서 ‘오토바이 질주’에 2연 ‘산들 바람’은 3연에서 ‘이삿짐 트럭’에 대응된다.

‘자작 나무의 행방’은 사유가 깊고 복선적이다. 그런 점에서 당선작보다 무게가 더 있어 보인다. 그러나 상상력의 논리가 부족하며 그런 까닭에 다소 산만하다. 주제 의식보다도 형상화의 완결성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바란다.

나머지 시들도 모두 상당한 수준에 있어 조금만 노력하면 좋은 성과를 거둘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시 창작의 도움이 될까하여 여기서는 약점만을 지적해 보도록 하겠다. ‘호수의 법문’은 긴장감이 부족했으며, ‘안부’는 설명적이었으며, ‘꽃들의 언어’는 작위적이었으며, ‘딱따구리 경전’은 다른 시인들의 이미지와 유사한 점이 있었으며, ‘신발 속에서 걸어나오다’는 상상력의 비약이 지나쳐 보였으며, ‘정씨 목공예방’은 사실적이었다.

 

심사위원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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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흰 빛 / 박지선


 
장롱 맨 아래
한지에 곱게 싸여 있는 한 필의 모시
철이 바뀌어도
결코 위아래 섞이는 일 없다.
깊은 禪定에 든 석불 같다.
하나의 풀씨가
한 필의 베로 태어나기까진
잿물로 살과 피를 녹이는 고통이 필요하다.
흐르는 시냇물 속에서도
물살 거스르지 않고 버티다가
올곧은 백발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쪼개지고 비벼지고
다시 수많은 시간을
모닥불로 담금질을 당하는 동안에도
모시의 生은
동그랗게 이어져간다.
마냥 엉클어져 있다가도
북이 오가고 딱딱 바디 오르내리며 장단이 울리면
모시는 그것이
죽비의 깨우침이란 것을 안다
죽비가 어깨를 내려칠 때마다
몸을 낮게 낮추던
씨줄과 날줄이
서로 손 내밀며 정갈하게 일어선다
달구어진 여름 내내 매미의 울음소리
지천으로 흐르다가
겨우 엷어질 즈음
비로소 그 흰 빛 모시는 긴 터널을 빠져 나온다.
한번 흘러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래 견뎌야만 하는 것을 알았을까.
풀기 빠진 가슴을 서로 맞잡은
모시의 손이 따뜻하다
장롱의 어둠 속에서 홀로 깨여있는
그 흰 빛.
아직도 긴 겨울밤 잠 못 드는 어머니다.

 

 

 

 

그 흰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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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기쁘다 삼보전에 참배 가야겠다”


만선의 깃발을 날리며 포구에 들어서는 아버지의 불콰한 얼굴은 우리 육남매의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유년은 늘 행복했고 영원히 지속되리라 믿었었다. 풍족함으로 출렁이던 바다는 하루 아침에 소금기로 반들거리는 성에에 조금씩 절룩거리기 시작했다. 정부의 산업개발로 호남정유공장이 세워지고 나의 유년의 꿈이 뿌리내린 터전을 제칠 비료공장은 먹어버렸다. 비료공장은 소화불량으로 쉼 없이 방귀를 뀐다. 지독한 유황냄새를. 그 냄새에 산천은 중독되어 해골처럼 청 푸르던 소나무 꼬챙이가 되어버렸다.


봄이면 꽃피고 가을이면 튼실한 감이 물결치던 나의 집 도토리 같은 육남매가 골목을 지날 때면 애기씨 라는 호칭이 내 앞에서 허리를 굽혀오곤 하던 고향 그 골목 굽혔던 허리들이 빳빳하게 펴지면서 더 이상 애기씨는 없었다.


내 앞에 옹벽처럼 서있던 이웃들 세상엔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불성 뿐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소유(所有)’는 ‘비소유(非所有)’라는 걸.


나의 내륙에 짠물이 차오르고 어머니는 길쌈을 하기 시작했다. 베틀 밑에서 자고 밥을 먹고 학교를 다녔다. 바디소리에 잠을 깨고 나는 그 바디소리가 끔찍이도 싫었었다. 낮이나 밤이나 베틀에 앉아있는 어머니는 왜 그리 싫었을까?


그렇게도 혐오스럽던 베가 나의 혼수품이 되었다. 어머니는 명주, 삼베, 모시, 무명베 한 필씩을 주셨다. 명주 베는 지인들 머플러로 나누어주고 삼베는 홑이불이 되어 어머니 말씀대로 아이들을 고슬고슬하게 키웠다. 촘촘히 짜 내려간 어머니의 삶이….


혹여나 하면서 기다리던 소식 너무나 기쁘다. 삼보전에 참배를 가야겠다. 108배는 해야 할 것 같다. 지금부터 나는 뭍에 매여 땔감밖에 되지 못했던 아버지의 배 세척을 내안의 시의 바다에 띄우고 파도 보다 사나운 언어들로 어머니의 베를 한 올 한 올 직조 하련다. 그리고 늘 시 공부 한다고 늦도록 불을 끄지 않아 방 밖을 서성거렸던 남편과 사랑하는 아들, 딸, 늘 함께했던 시의 도반 박성희님 이선애님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그 흰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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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멸치떼 빛깔처럼 반짝인 작품”


내가 불교신문 신춘문예 응모자와 한자리 앉아보기는 참 오랜만이다. 아무러나 ‘재회’라는 것은 어떤 의미로거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60년 세월을 그 둘레에서 방황해 온 문학도로서 하나의 도반의식에서 더더욱 반갑기도 하다. 선자의 손에 넘어 온 작품이 무려 천 3백 여 편, 시와 시조가 예심도 거치지 않고 한 타래로 묶여져 있다.


한 작품에 한 번씩만 눈길을 돌리자해도 사나흘이 걸렸다.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 보다 더 큰 고역은 운문도 산문도 채 아닌 불성실한 작품이 너무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 거품을 걷어내는 초선을 거쳐 선자의 손에 쥐어진 작품은 20여 편, 재심에서 10여 편을 줄이고, 종심까지 온 작품이 6편이다.


‘그 흰 빛’(박지선), ‘돌의 幻 ’(김자성), ‘치자 향’(임형신), ‘ 華嚴의 꽃’(이우식), ‘산소에 앉아’(김종빈), ‘동자꽃 필무렵’(김용채), 자유시가 3편, 시조가 3 수이다.


‘돌의 幻’과 ‘치자 향’도 좋은 작품이기는 하나, 장롱 속에 갈무려 둔 한 필의 명주, 그 잔잔한 심층의식이 과장 없이 결 고운 호흡을 하고있어 마치 ‘어느 아침바다에서 건져 올린 멸치 떼 그 빛나는 비늘들을 보는 것 같아’ ‘그 흰 빛’ 에게 자리를 내 주기로 했다.


나머지 3수는 시조인데, 시조는 자유시에 비해 절제와 응축, 관조와 직관 , 그리고 그 지절을 세우는데 있어서 자유시보다 더 앞서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심사위원 정완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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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내소사 / 김문주

 

세상에 수런거리는 것들은

이곳에 와서 소리를 낮추는구나, 변산

변방으로 밀려가다 잠적하는 지도들이

일몰의 광경 앞에 정처없는 때

눈내린 오전의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아름답다

전부를 드러내지 않고도 풍경이 되고 어느새

동행이 되는 길의 지혜

작은 꺾임들로 인해 그윽해지고 틀어앉아

더 깊어진 일은

안과 밖을 나누지 않고도 길이 된다

나무들은 때때로 가지들어 눈뭉치를 털어놓는다

숲의 한쪽 끝에 가지런히 모여앉은 장광같은 부도탑들

부드러운 육체들이 햇빛의 소란함을 안치고 있다.

봉래루 설선당 해우소 산사의 마당에는

천년의 할아버지 당산과 요사까지

저마다의 높낮이로 중심을 나누어 가진 집채들

부푸는 고요

몸으로 스며드는 시간의 숨들

숨길이 되고 집채 사이를 오가다, 아

바람의 꽃밭, 열림과 닫힘의 자리에

바래고 문드러진 수척한 얼굴들

슬픔도 연민도 모두 비워낸 소슬무늬꽃문

난만한 열망들이 마른꽃으로 넘는 저, 장엄한 경계

 

대웅보전 앞마당에 발자국들 질척거리고

진창을 매만지는 부지런한 햇빛의 손들이여

내소사 환한 고요 속에 오래도록 읽는다

서해 바람의 이 메마른 문장을

 

 

 

낯섦과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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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세상의 말들 가운데 고요한 길을 내”

 

강의를 위해서 찾아간 학교의 학과사무실 게시판에서 〈불교신문〉의 신춘문예 공고를 보았다. 당선 전화를 받고 게시물을 보던 그때의 마음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신춘문예에 응모하려는 학생과 투고작을 놓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묘한 일이다. 한동안 그만 두었던 시작(詩作)인데, 12월 초순의 내 마음은 시심으로 수런거렸다. 동대문 근처를 어슬렁거렸지만 쉽지 않았다.

 

20대에는 말을 하고 싶어서 시를 쓰려고 했다. 마음에 쌓여있는 것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시를 쓰지 않은 세월 동안 마음은 욕망으로 어수선하고 복잡해졌으며,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 대해 말을 더하는 일을 하면서, 나는 피로했다. 자본의 욕망으로 들끓는 세상과 수없이 많은 언어들 사이에서, 그리고 나를 둘러싼 현실 속에서, 매우 자주 겨울잠 같은 유폐로 찾아 들고 싶었다.

 

고단했던 시절, 노자와 장자를 읽었던 것도 그러한 욕망의 한 자락이었던 것 같다. 늘 어디론가 가고 싶었지만 떠난 적은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인도와 관련된 책자들을 뒤적이며 지도를 그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현실이 아니라 무거운 나의 욕망 때문이었다.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세상의 말들 가운데 고요의 길을 내고 싶고, 동일한 보폭으로 현실을 살고 싶다. 나는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사찰의 고요에 익숙하다. 고요에 깃들 수 있는 시간들이 시로 인해 많아졌으면 싶다. 좋은 일이다. ‘하나님의 뜻’이라거나 ‘다 인연’이라는 말법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좋은 일이다. 해석의 과정 속에 더해지는 욕망들, 그것을 덜어내는 일의 자연(自然), 내 말들이 그러했으면 좋겠다.

 

나의 언어들이 당신의 마음을 담아내기를 원하시는 내 어머니와 오래도록 마음을 돌아보게 만드시는 아버지로 인해, 처음 시를 쓰고 싶었다. 그분들께 오래가는 기쁨이었으면 좋겠다. 당선 소식을 듣고 나보다 더 좋아하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오래 전 시 쓰는 일에 용기를 주었던 김명인 선생님께, 그리고 나의 말들에 길을 열어준 심사위원 선생님과 불교신문사에 감사드린다. 모두 고맙다. 십여 년 전 도봉산에서 내 시를 찬찬히 읽어주신 당신에게, 겨울 사찰의 햇빛 같은 평온과 평화가 내리기를 소망한다.

 

 

 

백석 문학전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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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서정시의 ‘결’ 불교적 사유로 잘 표현”

 

249명, 모두 1500여 편에 가까운 시편들을 읽고나니, 먼저 우리 시단의 양적 풍요로움이 전해져왔다. 이렇게 많은 응모자들로 신춘문예가 성황을 이룬다면 아직도 우리 문학은 큰 희망이 있다고 느껴졌다. 신문의 특성 탓인지 불교 관련 소재가 눈에 많이 띄었으며, 대체로 크게 다를 바 없는 유사한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도 많았다.

 

불교적 가르침이란 중요한 뜻을 함축하고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시 작품으로 승화 내지 변용시키는가 하는 것이 우리들의 중대한 관심사이다. 독자적인 목소리를 지닌 신인을 탄생시키는 것 또한 신춘문예의 역할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열대야’ , ‘사월초파일’, ‘소리 항아리’, ‘불꽃무늬 항아리’, ‘연못’, ‘백담사 살살이꽃’, ‘추이불이선란도’, ‘겨울 내소사’ 등 여덟 명의 작품들이 그 나름의 수준을 보여 주어 마지막 검토의 대상이 되었고, 이를 더 축소시켜 최종적으로 ‘추사불이선란도’와 ‘겨울 내소사’ 두 편을 놓고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정할지 고심하였다. 이 두 작품은 각각 그 장단점이 있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추사불이선란도’는 선미가 승하고 시적 통찰이 빛나고 있었으나, 시적 구성과 언어적 세련미는 ‘겨울 내소사’에 조금 뒤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아 있다.

 

‘겨울 내소사’는 일반적인 서정시의 결을 잘 살리면서도 불교적 사유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저마다의 높낮이로 중심을 나누어 가진 집채들/부푸는 고요/ 몸으로 스며드는 시간의 숨들”에서 포착되는 섬세한 화자의 눈길은 시행의 분절로 드러내면서 고요 속에서 “진창을 매만지는 부지런한 햇빛의 손들”을 통해 장엄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읽어내는 동시에 신생의 열망을 표현하는 능력은 그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시작 수련을 거쳤음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추사불이선란도’는 마지막 결구에서 “내게 있어 추사의 붓끝은 너무 아득하고 깊어 보였다”라고 하는 설명적 진술로 마무리되어 결과적으로 시적 긴장을 약화시킨 것이 결정적 아쉬움이었다.

 

전반적으로 금년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시조 부문은 응모자의 수와 질적인 면에서 이제 본격적인 도약기를 마련한 것 같다. 그 자체가 하나의 경사이자 축복이다. 아쉽게 탈락한 분들에게는 아낌없는 격려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최종 당선자에게는 진심에서 우러난 축하의 박수를 전해드린다.

 

심사위원 최동호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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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 날리는 마당 / 김운영(김용희)

 

 

눈발 날리는 마당을
보고 있으면요
마른 저녁도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마는데요
발목 잃어버린 눈발은요
땅에 닿지도 못하구요
약한 한숨처럼 담벼락 위
아버지의 여윈 어깨 위
에도 말이지요 관절
절룩거리면서 아버지 뒤란으로
가시더니요 불쏘시개 송구나무
가마솥 물 끓이는데요
등겨같은 닭털이 공중에
몇 날아다녔나요?
오래오래 눈발이 아버지
빈 어깨에 배꽃처럼 쌓이면요
오래오래 가마솥 연기
마음의 暴政(장작불) 몸 밖으로
서서히 증발되고 있으면요
아버지 사발에 담아
안방에 어머니에게요
아버지 붉은 동맥 모세혈관 풀어
어머니에게 비는
견고한 용서
닭백숙의 용서를 말이지요
살과 뼈 허물어지는 解産처럼
맑은 국물 눈물 말이지요
어머니가 밤새 소리없이
우시는 날에는요 다음날
말없는 닭백숙 한 그릇
눈발 날리는 마당에서 말이지요.

 

 

 

 

[당선소감] “먼 길을 돌아 詩의 섬으로 귀환”

음모에 빠졌다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당선되었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아무래도 큰일이 생기고야 말았다는 두려움이, 이제 어찌해볼 수 없는 공모의 한 가운데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불길한 예감이 한동안 마음을 짓눌렀다.

시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공포와의 대면이었던가. 시를 짓지 않기 위해 너무나 많은 길들을 우회했다. 잘도 피해왔다. 시 근처에 집 짓고 시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면서 한 평생을 그냥 그렇게 살려 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다시 이 섬으로 돌아오게 되었단 말인가. 온갖 전쟁과 모험 속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귀환한 오디세우스처럼. 내 몸에는 시가 할켜놓은 단 한 개의 생채기도 남아 있지 않다.

시 쓰기를 위해 뜬 눈을 새운 저 절망의 밤조차도 등록되어 있지 않다. 내 몸은 문학이론으로 적절하게 소독되고 논리로 증류되어 있을 뿐이다. 사이보그처럼. 내 혈관 속에 아직도 20대에 갇혀 있던 그 시의 피들이 웅웅대고 있단 말인가. 오 맙소사. 당선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실어증에 걸려 버리고 말았으니.

그러니 음모는 성공한 것이 아닌가. 이제 나에게 남아 있는 어떤 언어도 없다. 혀가 잘린 것 같은 겨울 아침, 나는 새로 시작할 것이다.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숙여 깊이 감사를 드린다. 그 두려운 시쓰기에 대해 크나큰 용기를 주신 것이다. 무엇보다 시적 감수성을 키워주신 모교 은사 김현자 선생님, 이어령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언제나 늦된 나에게 다시 시를 써보라고 권한 어느 선생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인생에서 또 하나의 매듭점을 맺게 해주셨다.

고통과 희망이 묘약처럼 입 안에서 함께 섞이고 있다. 열심히 써서 그 모든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

 

 

 

 

맛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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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 서해안과 호남지방에는 보름 가깝게 계속 눈이 내려 교통이 두절되었을 뿐만 아니라 비닐하우스와 축사가 무너져 내렸고, 출하를 앞둔 양식장에서는 얼어 죽은 물고기들이 참혹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거기에, 황우석 교수 사건마저 가세해 2005년 12월은 나라 전체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하지만 새해 첫 날 자신의 작품이 신문 한 면을 가득 채울 것을 바라고 문학의 외길을 정진해온 문학도들의 열정은 해가 갈수록 더욱 뜨겁고 웅숭깊어지는 것 같다. 그것은 불교신문 신춘문예 응모자가 작년에 비해 1.5배 정도 증가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는다. 좀더 자세히 살피면, 시와 시조부문에 270명, 단편소설 부문 55명, 동화 부문 88명, 그리고 평론부문 7명이 응모했다.

물론 이러한 숫자는 중앙일간지의 신춘문예 응모자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신춘문예의 연륜이 중앙일간지의 그것에 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불교신문의 특성을 고려할 때,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대한 일반 독자의 관심이 점차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응모자 수가 늘어난 것에 비례해 작품의 수준도 예전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 각 부문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것은 우리 문학의 저변이 그만큼 넓고 깊어졌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어서 무척 반가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응모작들이 다루는 제재나 주제 또한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에 대한 집요한 탐구와 세계의 현상에 대한 추적, 혹은 내적 자아를 찾아가는 철저한 구도적 자세 등 우리 문학의 일반적 특징과 유관한 것들이 많이 보였다.

심사위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불교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제재와 주제를 불교 정신에 무리하게 적용하려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었다. 불교 정신을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스며들어야지 의식적으로 도드라지게 하려면 오히려 문학성이 훼손될 위험이 많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시와 단편소설, 동화 부문 당선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응모자 가운데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우리 문학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기도 하다. 한 심사위원은 우스개 소리로, “이런 추세가 한 십 년 계속되면 ‘오랜만에 남성 작가가 탄생했다’는 기사가 나올 것”이라고 하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시조 부문에서도 좋은 작품이 보였으나 시와 시조 가운데 한 작품만을 선정해야 했기 때문에 아쉽게 당선작에서 제외되기도 했고, 동화 부문에서는 최근 입적하신 큰 스님의 일화를 연상시키는 제재와 낙산사 대들보로 만들어진 악기를 제재로 한 작품이 눈에 띄었다. 단편소설은 불교적 제재나 주제를 다룬 작품이 많았는데, 작위성이 강하고 구성이 다소 산만한 것이 흠이었다. 평론 부문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당선자를 내지 못하였으나, 수준은 상당히 진보한 것이었다는 평이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것은 개인에게 커다란 영광이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하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가차없이 잊혀지고 도태당하는 것이 문단의 현실이기도 하다. 당선자 세 분께 축하의 인사와 함께, 앞으로 더욱 정진하셔서 우리 문학을 빛내는 큰 작가와 시인이 되기를 간곡히 희망한다.

 

심사위원 장영우 문학평론가.동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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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 심수향



11월에도 꽃이 필 수 있다는 듯이
배추가 제 삶의 한창때를 건너고 있다
꽃을 피우고 싶어하는 푸른 이마에
금줄같은 머리띠 하나 묶어주려고
이참 저참 때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배추는 중심이 설 무렵
묶어주어야 한다고 귀뜸을 한다
배추도 중심이 서야 배추가 되나보다
속잎이 노랗게 안으로 모이고
햇살 넓은 잎들도 중심을 향해 서기 시작한다
바람이 짙어지는 강물보다 더 서늘해졌다
띠를 묶어주기에는 적기인 것 같아
결 재운 볏짚을 들고 밭에 올랐더니
힘 넘치는 이파리가 툭 툭 내 종아리를 친다
널따란 잎을 그러모아 지그시 안고
배추의 이마에 짚 띠를 조심스레 둘렀더니
종 모양 부도처럼 금새 단아해졌다
부드러운 짚 몇 가닥의 힘이 참 놀랍다
이제 배추는 노란 제 속을 꽉꽉 채우며
꽃과 또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이다
추수 끝난 들녘에 종대로 서 있는 배추들
늦가을의 중심으로 탄탄하게 들어서고 있다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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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이제는 시적 화두 하나 품어야겠습니다”

맑은 아침에 꿈은 분명 아닌데, 반가운 소식이 배달되었습니다.

잠시 소원하고 접어둔 마음 사이로, 그 소식이 기쁨으로 스밀 때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비로소 실감나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났고, 그 다음은 모두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직은 시도 불교도 잘 모르는 상태이지만, 정일근 선생님께서 시도 불교도 구도의 과정이라고 자주 하시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겨두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정말 그럴싸한 시적 화두 하나 품고 열심히 노력해 보아야겠습니다.

진정한 주먹 고수들은 주먹을 내 보이지 않고도 충분히 고수 노릇을 한다는데… 이 기회를 통해 도구를 보이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진정한 고수가 되도록 늘 연마하는 자세를 갖도록 해 보겠습니다.

먼 길을 돌아 여기 오기까지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과 많은 시간을 흘렸습니다만, 느림보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분명 있었습니다. 빠르게 달려간 사람들이 놓친 작고 따뜻한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크고 분명한 것보다 작고 낮은 것을 더욱 소중히 아는 마음으로 앞으로는 살아가고 싶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손으로 길을 열어 주시는 정일근 선생님, 맨 처음 도전 정신에 불을 댕겨준 김옥곤 선생님 그리고 울산 시인학교 문우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말없이 후원해준 가족들에게 이 기쁨 돌리고 싶습니다.

아직은 무명의 바다에 허우적거리는 제게 나룻배 이야기를 해 주시는 울산 불교교육대학의 많은 스님들과 교수님들과 도반들께도 함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새삼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신 송수권 선생님과 불교신문사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살짝 스쳐가는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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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당선작, 불교코드 시적 형상화 적절”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일곱명으로서 8편이었다.

‘농아부부의 빵집’(서상규) ‘고달사지에 가다’(손성조), ‘흔적’(정경호), ‘우화’(김애연), ‘도피안사 금개구리’(권지현), ‘중심’(심수향) ‘가을밤 짧은 편지, 평창강 섶다리’(홍준경)였다.

이중 ‘농아부부의 빵집’은 따뜻한 시선에 의한 제재를 결박하는 힘이 돋보였으나 합장, 묵언수행, 불립문자 등 금기시되는 시어에 문제점이 있었고, ‘고달사지에 가다’는 선취(禪趣)에 머물러 있어 시인의 현실적 아픔이 결여된 느낌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도피안사의 금개구리’나 ‘흔적’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홍준경의 ‘가을밤 짧은 편지’와 ‘평창강 섶다리’, 심수향의 ‘중심’, 김애연의 ‘우화’로 압축되었지만 시인의 직접적인 체험의 무게로 보아 심수향의 ‘중심’을 당선작으로 내세웠다.

이는 불교코드를 시로 가져올 때는 본보기가 되는 작품이란 뜻도 있다. 선취의 아류가 아니라 창작에 있어서도 고오귀속(高悟歸俗)의 입전수수 정신이 필요한 때다.

“부도처럼 금새 편안해졌다”라는 상투어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겨울배추밭을 부도밭으로 연상하는 이미지 확장에 기여하므로 은유체계 완성에 있어서 별다른 흠결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끝으로 홍준경의 수준이 고른 시조작품들과 김애연의 작품들에도 애석함을 금치 못하며 다른 지면에 선보일 것을 당부한다.

 

심사위원 송수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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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가는 길 / 임곤택

 

 

숲에서 나온 길이 나를 앞질러
동백 사이로 사라지고 있었다
뼈를 묻을 곳을 찾는 늙은 동물처럼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쉼이 없었다
저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산 그림자와 함께 산을 넘은 바람은 숲에 머물고
알 수 없는
사실 조금은 알 듯도 한 무엇을 보았던지
상기된 꽃잎들이 연이어 숲을 나오고
나를 보더니 흠칫 놀라며 총총히 길을 건넜다
나무들이 울부짖듯 노래를 부르고
위태롭게 펄떡이던 잎들 위로
오랫동안 공중을 떠돌았을 시퍼런 영혼들이
막 새 몸을 얻어 힘겹게 반짝이고 있었다
모든 것은 명백해 보였다
동백숲으로 사라진 길은 돌아 보지 않았고
동백꽃만 검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죄 없이 다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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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삶의 전의를 상실한 채 깊은 절망, 천길 낭떠러지 앞에 핀 희망의 꽃

여기서 두어 걸음만 더 나갔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이었다.

나는 그게 두려웠다. 내가 믿던 몇몇 잠언과 자기암시의 형태로 붙잡아두었던 희망이 잔인하게 철회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죄도 없이 아프기 시작하던 차였다.

도선사 아직 잔설 덮힌 나무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전혀 다른 새 시작을 이제 준비해야 하나.. 이제서야 무언가 알 듯 한데.. 비로소 詩도, 삶도 내게 조금씩 틈을 보이기 시작한 것 같은데..

이미 내 마음의 등과 배가 서로 바싹 맞붙어, 내 영혼은 흑갈색 미이라. 벌써 몇 해를 모래 바람 속에 헤맨 뒤였다. 세상은 그런거였다. 회색의 구름 속에 알 듯 모를 듯 거개가 운이거나, 아니면 나도 모르게 미리 다 정해져 있는 듯 했다.

나는 철저하게 길 위에 있었다. 항상 어딘가로 향해 걷고 있었지만 그나마 길가의 노견 때론 질퍽하고, 때론 먼지 뒤집어 쓴 풀꽃들이 마음 편한 그런 길이었다.

간혹, 정말로 아주 간혹, 새로운 빛을 발견했단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감당할 수없는 기쁨과 어지럼증에 잠깐 정신을 잃곤 했다, 하지만 눈을 뜨고 일어났을 땐 낯익은 예전의 그 빛에 다시 눈이 부셨다.

절망의 바로 앞, 만신창이의 몸에 누더기를 걸치고 선 천 길 낭떠러지, 구멍난 신발 앞에 피어 있는 작고 예쁜 꽃 한 송이.

희망은 그런건가 보다. 사람을 죽지 않을 만큼 늘씬 패주고는 이제 모든 전의를 상실할 때쯤, 바로 그때쯤 한번 씨익 웃어주는 건가 보다.

부족한 글을 예쁘게 보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앞으로 간결하면서도 선명한, 그리고 항상 넓게 살피고 깊게 고민하는 시를 쓰고 싶다.

부모님과 우리 가족, 그리고 후배 의혁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제부터’라고 다짐하며, 다시 한번 뽑아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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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구성 깊이 있는 주제 형상화 돋보여

불교신문 신춘문예라는 특징 때문인지 응모된 시(시조) 작품의 대다수가 불교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 가운데 대다수가 불교적 세계관을 작품 속에 내재화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제재로 다루어진 것들이었고, 불교적 관념만 생경하게 노출되어 있을 뿐 한 편의 정제된 시작품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적지 않은 작품이 만만치 않은 시적 역량을 보여 주어 심사의 괴로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남은 작품은 ‘대구머리 찜을 먹으며’(최숙자), ‘고물상 장씨’(금이정), ‘대흥사 가는 길’(임곤택) 등 세 편이었다. ‘대구머리 찜을 먹으며’는 일상적 소재를 통해 인간의 내면적 고통과 삶의 애환을 가다듬은 솜씨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대구머리 찜의 묘사와 일상적 삶의 반성의 교직이 작위적인 데다가 다소의 감상기가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고물상 장씨’는 배냇병신인 고물상 장씨의 삶과 폐품이 되어 고물상에 버려진 물건을 대비시킨 상상력과 단순한 비유법에서 느껴지는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고물상 장씨의 배냇고물인 왼팔에 얽힌 사연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고, 재생을 꿈꾸는 사물과 인간의 욕망이 긴밀한 조응을 이루지 못했다. 이와 함께 ‘고물캉’과 같은 어휘가 시적 긴장감을 이완시켜 놓았고 “고물상을 동그랗게 에워싸던 불빛도 차츰 사그러진다”를 독립연으로 처리한 것도 애매했다.

‘대흥사 가는 길’은 첫눈에도 잘 다듬어진 작품임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별 군더더기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짜여진 구성과 평이한 어휘와 조사(措辭)를 통해 생사의 반복적 순환과 그 경이로움에 관한 깊이 있는 주제를 형상화한 솜씨가 녹록치 않았다. 이 작품이 주는 ‘잘 정제된 작품’이란 일차적 인상은 신춘문예 응모용이란 혐의를 주는 게 사실이지만, 작품을 이만큼 잘 만들어낼 수 있는 기량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과 함께 투고한 작품이 보여주는 고른 수준을 시 당선작으로 뽑는다.

앞으로 신인으로서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갖추면 좋은 시인이 되리라 믿으며, 더욱 정진할 것을 부탁드린다.

 

심사위원 장영우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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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렴

 

 

1
깊이 흐를수록 뜨거워진다는 건 돌아올 메아리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건 열매들이 익어가는 소리이거나
팽창하는 하늘의 속삭임일지도 몰라요 갈대가 맨발로
웅숭그린 강가에서 당신을 떠나 보내고 물수제비를 뜨며
단발간격으로 수면 흔들어 놓는 납작 돌멩이의 몸부림이
낯설지 않은데요 당신의 말대로라면 저 돌멩이의 마지막
흔적이 바닥을 울리는 순간 찡한 뜨거움으로 녹아
흐르겠지요

2
맨 처음 당신을 찾아 나섰던 그 자리 거기 나는 꼼짝없이
발묶여 있는데요 깊게 흐를수록 멀어지는 당신을, 아득한
바닥에서 푸른 피 흘리며 나는 다슬기처럼 시큼해지는데요
뜨겁다니요 시리디시린 혈관 껴안아 주는 건 피붙이같이
뿌리 얽힌 갈대 뿐이었어요

3
어쩌면 물구덩인 듯 보여요 깊어지라 한 마디를 水深(수심)만큼
던지고 뗏목 따라 떠난 당신을 돌아올 거라 손꼽는 망부석
하나가. 어쩌면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먼 나루 하나 남겨
놓고 떠났는데요 혹 돌아올지도 모르지요 수증기나 구름
혹은 비가 되어 당신이 깊게 박아놓은 혈관의 뿌리를
뜨겁게 헹궈주리라 믿는데요

 

 

 

 

[당선소감] 

 

오랜동안 캄캄한 바다에 홀로 떠 있었습니다. 망망한 바다의 어둠 속에서 가랑잎같은 나룻배 하나에 몸 실은 채, 표류할 섬 하나 보이지 않고 방향 가늠할 표적 하나 없이 나아갈 항로를 잃고 있었습니다. 파도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뒤로 밀려나 언제나 그 자리인, 무감각 상태에서 헤어나기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주위와 싸우기 전 자신과의 싸움에 먼저 지쳐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소스라치듯 깨어나 보면 밤하늘에 초롱초롱한 별들이 질책 담은 눈망울을 하고 죄다 내게로 쏟아지는 것 같아, 아찔하게 정신을 가다듬곤 했습니다.

정말이지 일상에 지친 감정을 깨워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하는 감각들이 없었더라면 나의 싸움은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막, 한 줄기 구원같은 등대빛이 서방정토에서 비춰 왔습니다. 끝도 없을 것 같던 파도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증거를 확인한날, ‘인간에게 가장 훌륭한 몫은 바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詩(시)가 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도 좋은 시라 격려해 준 知人(지인)들과 시의 正道(정도)를 걷도록 준엄하게 채찍질해 주신 서지월 선생님, 부족한 작품을 選(선)해 주신 심사위원님 그리고 불교신문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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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응모한 작품들에는 응모한 사람들의 정성이 행간에 숨쉬고 있었다. 시를 사랑하고 불심에 가득찬 응모자들의 마음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행복이었다. 우열을 가늠하기 힘든 작품들을 두고 고민에 빠졌던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시조에서 정현숙의 ‘11월, 장곡사에 비가 내리네’ 외 4편과 정창영의 ‘수국’외 6편, 시에서 박형수의 ‘佛影寺에서’외 4편, 박성필의 ‘남장사’ 외 5편, 이주렴의 ‘강’외 6편을 마지막까지 읽고 또 읽었다.

정현숙의 시조는 시조시의 정통성을 이은 모범답안적 작품이라 할만했다. 언어의 조탁과 시조가 가진 자수율에 의한 운율의 획득 등에서 나무랄 데가 없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모범답안이 항용 그렇듯이 파격적인 창의성과 무한한 상상력에로 향한 아쉬움과 갈증이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장창영의 응모한 시조들은 수준이 모두 고른 편이었고, 무엇보다 시조의 정통적 틀을 벗어나려는 파격과 개성이 돋보였다. 현대시조시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행로를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예사롭지 않은 행갈이 방법과 언어의 조탁에서 현대시조가 고시조와 왜 다른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창영의 시조를 가작으로 선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형수의 시들은 단아했다. 그 단아함은 언어의 절제를 통한 조사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응모한 시편들의 수준이 고르지 않은 것은 흠이었다. 박성필의 시는 화려한 시적 수사와 자유분방한 시적 상상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는 기성시인 누군가의 시에서 읽었던 분위기가 자꾸만 느껴졌다.

이주렴의 시는 도도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강한 개성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언어의 절제도 생각하는 것이 이 시인에게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강’은 불교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불교적 사유를 시 속에 용해시킨 작품이다. 윤회와 인연 그리고 부처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이만큼 승화시켜 놓은 것은 이주렴의 시적 역량이 일정한 수준이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면서 이 시인이 더욱 분발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김선학 문학평론가·동국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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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에 서다 / 이정원


저, 무청 푸르딩딩한 대님만 남은
들판
우수에 잠겨 침침하다
단물로 품었던 속정까지 내주고야
빈 들이 되었다.
산발한 은발로 밭두둑 억새꽃
몇날 며칠 손짓 거듭했어도
내 안에도 썰렁 썰렁 비어가는 들판 있는거
눈치 못채고 있다가
11월이 들녘 끝자락부터 아득 아득 저물어 오면
나도 못내 저물어 땅거미가 되는 것인데
저물다가 문득
自盡하려 곤두박히는 나뭇잎 보았다
재빠른 하강곡선
그속에 잎맥같은 무수한 길이 보였다
뿌리에서 잎맥까지 이어진
길따라 나섰다
감은눈 속으로도 휘영청 열린
길은 이제 들숨에서 시작되고
날숨으로 끝나가고 있다
뿌리가 준비한 거한 목숨들
길 가운데 빼곡했다
텅텅 비워야 겨울은 그 빈 여백에
작은 움 하나를 그리기 시작한다는 깨달음
그 길 어느 도중에야 섬광처럼 왔다
내 비어가는 속 뜰 어디엔가도
형형안 만다라 한폭 쟁여져 있으려나
다시 빈들에 서 본다
冬 安居에 들고 있는 초겨울
저 들판
바람 쓸리는대로 지는 잎새처럼 떨어져
섭생의 가드레일 같은
난해한 눈빛으로 열반경을 읽고 가는
새 떼 한무리
가뭇없는 허공에 銀紙처럼 구겨박혀
일몰이 된다

 

 

 

 

꽃의 복화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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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먼 길 나서며

첫 눈 조신조신 내리더니 축복이었나 봅니다. 그 날 오후의 난데없는 당선 통지는 내게 분명한 이정표였습니다.

잊었는가 했는데 잊은 게 아니고 떠났는가 했는데 떠난 게 아니었는지, 때론 파고 높았고, 때론 깜깜한 그믐의 시절 속에 부대껴 흐르며 살다가 문득문득 사무치는 그리움에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시(詩)였습니다.

늘상 설렘으로 지켜봤던 새해 아침 그 환한 지면에 제 졸시(拙詩)를 올려주시다니, 놓칠 뻔한 꿈 붙잡아 가두게 해 주시다니, 불교신문사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합장(合掌) 올립니다. 이 격려에 힘입어 첫 걸음 내딛었으니 천리길 마다 않고 가겠습니다.

이 기쁨 회향합니다. 유년부터 아직토록 내 시의 도반인 저 햇빛, 거기 잘 버무려진 삼라만상과 종단엔 그 시의 지향점인 우주적 자아에까지. 그리고, 내 서정의 자양이었던 아버지, 어머니 영전에 생전의 불효를 뉘우침과 더불어.

또한, 늘 곁을 든든히 채워주었던 가족과 법우들, 그리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벗에게 온전히 회향합니다. 저 중중무진 법계에까지.

 

 

 

내 영혼 21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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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넓은 세계로 나가기를”

예년의 수준을 훨씬 넘는 많은 응모작 가운데 예선을 통과하여 본심에서 오른 작품들은 강재현 〈청평사 가는 길〉외 8편, 백하길 〈공사장에서〉외 8편, 김승호 〈山家에서〉외 5편, 정하해 〈살아서 관을 짜다〉외 4편, 이정원 〈빈 들에 서다〉외 5편, 홍 범 〈보이를 마시며〉외 4편, 이완 〈나비〉외 5편 장석원 〈낙하하는 것들의 이름을 안들〉외 4편 등이었다.

이 중에서 마지막으로 이은자, 장석원, 이정원, 김승호 네분의 작품이 최종 심사의 대상이 되었다. 이은자의 간결성, 이정원의 서술성, 장석원의 참신성, 김승호의 형식적 절제 등이 각각의 장점으로 돋보였다. 그러나 육화된 시적 사유와 투고된 작품의 균질성 등으로 인해 이정원의 〈빈 들에 서다〉와 〈등신불〉 등을 금년도 당선작으로 선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울은 그 빈 여백에 작은 움 하나를 그리기 시작한다’는 깨달음이나 ‘풍경에서 뛰어나온 마음들’을 붉은 배롱꽃에 전화시킨 상상들이 이번 수상을 계기로 크고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리며, 아깝게 탈락한 많은 분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한다.

 

심사위원 최동호 교수

 

 

 

 

[가작] 山家에서 / 김승호

나무 숲 바람소리 가만히 숨죽이면
못 물은 왜 이렇게 꼬리가 길은지,
돌담에 기대어 있는 산중의 의문 하나를
모악의 산맥같은 돌로 눌러 죽이고
석등 밑에 부려놓은 허리 휜 길 하나
가슴 속 붉게 흐드러진 화염도 밟고 와서
손 호호 불어가며 고봉 쌀밥 공양하고
그림자 가득한 창호문을 닫아걸면
화엄은 깊은 바닷속 늘 깊이 잠겨 있음을
비 끝에 쓸리는 적멸의 이 길을
시내에 모이는 솔 소리에 비내리면
미륵은 우리 곁에서 수행자로 걷고 있다.

 

 

[입선소감] 그리움을 글로 채우며…

산 속 깊은 산가(山家)에서 가지가 앙상한 나무에 등 기대고 있으면 가만히 밀려오는 산중의 외로움, 외로움과 그리움은 늘 함께 했다.

산 위에서나 산밑에서나 내 가슴은 늘 그리움으로 채워져 있었고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였다. 글을 써야하는 이유가 나를 속박했었고 뒤돌아보면 항상 회한만 남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앓이하며 원고지를 채우던 스무 살 때가 내게는 가장 행복한 시절로 기억된다.

스무 살을 넘기면서 원고지도 버리고 세상 속으로 훌쩍 뛰어 들었지만 언제나 가슴 저 밑은 그리움이 남아 있었다. 또 다시 스무 해쯤을 훌쩍 넘기고서도 그리움은 변하지 않았고, 늦게 서야 다시 시작한 글쓰기의 보상 심리는 상이라도 받는 것이어서 무던히 애를 썼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아내가 곁에서 격려해 주었던 것이 큰 위로가 되어서 좋은 상을 받는 것 같다. 더욱이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입선된 것은 내게 시사하는바가 매우 크다.


선(選)에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더욱 정진하라는 것으로 알고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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