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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변 물래실 / 구지평

 

 

어정쩡한 물안개가 저녁 강을 서성이다

속기 벗는 투명함에 산 빛이 검어질 때

실골목 저뭇해지는 내성천을 감싸고

 

굼닐대던 저녁연기 모래톱으로 불러내면

속 깊도록 시에 숨어 우련한 물래실이

갈라진 시간 틈새로 제 몸피를 드러낸다

 

허물어진 돌담 너머 마당귀에 마른 장작더미

텅 빈 방 잠긴 시간 푸른 여백 문장인데

이제야 적요를 푸는 한 올 한 올 자화상

 

평면으로 구겨지는 빛바랜 담초談草 위에

창문마다 달이 뜨면 거기에, ! 거기에

묏등에 답청하시는 어머니가 서 있네

 

물래실 : 경상북도 예천군 마을 이름

 

 

 

 

[당선소감] “금빛 반짝이는 내성천이 시조의 모태

 

사무실 창밖으로 찌뿌듯한 눈발이 희끗희끗 날린다. 며칠째 일없이 심란하여 맥 놓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시대가 하수상한지라 모르는 전화번호는 잘 받지 않는 편인데 벨소리에 묻은 예기에 끌려 바로 받으니 당선 소식이다. 가슴에서 머릿속까지 헤집고 다니는 말글들이 뽁뽁거리며 입술을 내밀고, 산란기 무논에 붕어 튀어 오르듯 통통거리며 정신 줄을 튕긴다.

 

책상 위에 게으르게 누워있는 책들 속에 갇혀있던 문장도 스멀스멀 똬리를 풀고 제 공()을 자랑하듯 눈앞에 알짱거린다. 그래, 저것들 조탁하며 남은 생 보내라는 부처님 말씀인 게지! 늦깎이 시 공부를 시작한 지 10년째. 연로하신 아버님 둘째아들이 원을 풀었다.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에서 어설프기 그지없는 무지렁이를 야무지게 무두질 해주신 이승하 교수님과 문우님들, 격조 있는 시조 세계와 에스프리의 멋을 깨우쳐 주신 윤금초 교수님과 열린시조학회 문우님들께 감사의 큰절을 올린다. 그리고 코로나에 발목이 잡혀 텅 빈 손이라고 생각한 신축년 한 해를 무한한 기쁨으로 채워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말씀 올린다. 힘든 시기 함께 보낸 사랑하는 가족들과 뇌리를 스치는 많은 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하며 잊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졸작의 배경인 물래실은 소백산 등짝을 따라 한참 내려오다 보면 끝자락에 매달린 산골 마을이다. 열 번이 넘는 아버지의 복막염 수술로 형편이 어려웠던 세월이었지만 떠나온 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는 물기 머금은 모래사장이 금빛으로 반짝이던 내성천이 흐른다. 그 배고팠던 때도 부뚜막 한 쪽에 조그마한 단지를 두고 아침마다 곡식 한 줌을 모아 탁발하러 오신 스님께 시주하던 어머니가 눈에 선하다. 남에게 건넨 해로운 말이 다 자식에게 돌아온다며 평생 말을 아끼시던 어머니, 하루 종일 물만 마셔도 배가 부르다던 어머니, 어머니가 20202월에 귀천하셨다. 보셨으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이 기쁨과 영광을 어머님 영전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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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신선한 감각과 고요한 시심 돋보여

 

불교신문 ‘2022 신춘문예에 응모한 시·시조 부문 작품들을 꼼꼼하게 읽었다. 불교문인의 등용문인 만큼 응모한 작품들의 경향도 예년과 다름이 없이 불교적 소재를 시적인 모티프로 삼은 경우가 주를 이루었다. 사찰 공간과 주변 환경, 수행, 불교와의 인연 등을 노래한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불교의 연기법, (), 무심과 무욕 등을 노래한 시편들은 예년의 시편들보다 깊고 확장된 시심(詩心)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다만, 한 편의 좋은 시는 빈틈없이 꽉 찬 상태에 있지 않고 오히려 흰 여백에 의지할 때가 많고, 읽는 사람이 개성적인 독해의 내용으로 그 여백을 마저 채우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당선작 선정을 두고 크게 고민한 작품들은 두고 간 신’, ‘반가사유상’, ‘고목’, ‘내성천변 물래실이었다. ‘두고 간 신은 낡은 구두를 보며 아버지의 일생을 가늠하는 작품이었다. 작고하시기 전 구두를 닦고 끈을 묶어 신발장에 가지런하게 두었다라고 쓴 대목은 감동이 컸지만 술회의 방식이 다소는 산문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반가사유상은 마음이 안정의 세계에 머물게 된 일을 목수의 목공의 일에 견주고 있는데, 시를 짓는 데에 익숙한 솜씨를 보여주었지만 번뇌의 소진과 맑은 명상을 죽음의 상태인 에 견준 점은 다소 의아했다. ‘고목은 벌판에 선 고목을 노스님으로 여기고 쓴 작품이었다. 고목이 옥빛 낮달 하나 걸치고있고, 스스로 적막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고 적은 시구들은 깨끗한 시심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눈꽃들이 입적해 있다라고 쓴 시구 등은 다소 과장되어 있는 듯했다.

 

긴 고민 끝에 내성천변 물래실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 시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풍경을 응시하는 고요한 시심이 돋보였다. 시행을 따라가며 읽을 때 잡스럽고 탁한 것을 걷어내며 밝고 환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절로 상상할 수 있었는데, 그러할 때에 어떤 환희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시어의 선택이나 시상의 전개가 매우 자연스럽고 또 신선한 감각을 선보여 신뢰감을 안겨 주었다. 앞으로 더 많은 가편(佳篇)들을 보여주시길 당부 드린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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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 / 백향옥

 

 

부풀어 오르는 흙이 좋아 맨발로 숲을 걸었다

바닷물에 발을 씻다가 만난 돌은

손바닥에 꼭 맞는 매끄러운 초승달 모양

 

열병을 앓을 때 이마를 짚어주던 당신의 찬 손

분주하게 손을 닦던 앞치마에 묻어 온 불 냄새, 바람 냄새, 놀란 목소리

곁에 앉아 날뛰는 맥을 지그시 눌러 식혀주던 손길 같은

 

차가운 돌을 쥐고 있으면 들뜬 열이 내려가고

멋대로 넘어가는 페이지를 눌러두기에 좋았는데

어느 날 도서관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져 깨져버렸다

 

몸 깊은 곳에서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놓친 손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두 동강 난 돌을 잇대보았지만

깨진 돌은 하나가 될 수 없고

가슴에서 시작된 실금이 무섭게 자라났다

 

식었다 뜨거워지는 온도 차이가

돌 안쪽에 금을 내고 있었던 걸 몰랐다

 

이제 그만 됐다고 따뜻해진 돌이 속삭였다

 

그날, 달빛 밝은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깨진 돌을 가만히 놓아주었다

달에게 돌려주었다

 

 

 

 

[당선소감] “두렵고 기쁜 마음으로 정진하겠다”

사는 일이 대체로 아슬아슬했습니다. 문이 닫히기 전 우체국에 겨우 도착해서 무사히 마감한 밤 공원엔 달이 밝았습니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두렵고 애타던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할 운동장으로 제비꽃이 오고 개망초와 까마중이 자라고 느티나무만이 싹을 틔우던 불안한 시간이었습니다.

신춘이라는 높은 관문을 두드린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당선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습니다. 감격에 겨워 들에 나가니 이제 막 떠오른 실낱같은 초이틀 달이 아름다웠습니다. 나무와 달과 별, 강물 위에 썼다가 지운 수많은 문장에 이끌려왔습니다. 높고 아름다운 세계에 덜컥 들어선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만큼 가슴 가득 차오르는 기쁨이 커서 어느 때 보다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천진한 아이가 된 것처럼 좋습니다. 시 쓰는 일이 위궤양과 불면의 밤을 불러올지라도 지금은 잠시 기뻐하겠습니다.

어린 달이 자라나듯 시가 자라기를 기원합니다. 물처럼 색이 없지만 모든 빛으로 물드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경계 너머와 이곳의 겹침을 믿으며 세계의 아름다움과 비정함을 견디기 위한 노래를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시가 이끄는 대로 끝까지 가보라던 김근 시인과 자신이 가진 목소리 그대로의 시를 써도 좋겠다는 격려와 함께 적확한 묘사, 첨예한 문장을 쓰도록 독려해주신 조정인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수줍고 어눌한 목소리가 가진 간절함을 듣고 손 잡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두렵고 기쁜 마음으로 정진하겠습니다. 시의 곁을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 준 시하늘과 시몰이, 길담서원 책여세, 산과 자연의 친구 우이령사람들과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준 남편 재욱 씨와 혜림, 정호, 지연에게 감사하며 기쁨과 영광을 나누고 싶습니다. 목소리 없는 존재의 말을 전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모든 생명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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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불교시의 미래 열어가길 기대”

올해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대한 사부대중의 관심이 뜨거웠다. 반조(反照)의 시편들이 다수였고, 인과와 무상, 적멸을 노래한 시편들이 많았다. 그만큼 불자들의 응모가 많았다는 점은 뚜렷했다. 신행의 두터운 지층으로부터 돌올하게 솟은, 푸르고 서늘하고 생동하는 깨달음의 노래가 곧 불교시(詩)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마지막까지 살펴본 작품들은 ‘만다라화 어머니’, ‘파종’, ‘천 권의 책을 귀에 걸고’, ‘가로수 아래서’, ‘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였다. 구태여 각각의 구실을 찾고자 할 뿐이지 이 작품들은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다.

‘만다라화 어머니’는 처염상정의 꽃인 연꽃을 어머니의 생애에 견준 시조 작품이었다. ‘예토’, ‘화엄’과 같은 시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파종’은 아름다운 서정을 담은 산문시였다. 한 알의 씨를 뿌릴 구덩이 그것이 곧 우주 생명 세계라는 인식에는 공감을 했지만, 파종의 풍경이 가족사와 연결되는 대목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천 권의 책을 귀에 걸고’는 아버지의 돋보기 그것을 연륜과 지혜의 안목 자체라고 바라본 작품이었다. 좋은 작품이었지만 앞에서 뒤에 이르는 동안 시행이 반복된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가로수 아래서’는 인연이 된다면 후속작들을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고심 끝에 ‘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삶의 열기를 식혀주는 찬 돌에 대한 생각을 섬세하게 담되, 옛일을 함께 회상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앞치마’에 묻어 있는 것이 불과 바람의 냄새뿐만 아니라 ‘놀란 목소리’라고 쓴 대목은 감각 내용의 확장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러한 경계가 없는 감관의 활용은 대체로 신예가 갖기 어려운 덕목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게 했다. “깨진 돌”을 달의 빛 속으로 방생하는 대목도 지극히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 불교시의 미래를 열어가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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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방 / 차진주

 

 

사방으로 흐르는 하이얀 잉크에
투명한 창을 내고 시를 쓴다
바람을 묶어 단단히 메어두고
그 시로 난 길에 청보리밭
청명한 내음이 입속에 오도독 씹힐 때
영원으로 가는 내밀한 계단이
나직이 나를 부를 때
그 손 잡아 여여히 흐르는 강으로 회양목을 돌아
고이 들어앉은 앉은뱅이 숲
오래된 서커스처럼 안개 같은 향이 피어 오른다
영혼을 견인하는 차 야곱의 사다리
스톡홀름 증후군
콰지모도 콤플렉스의 아가씨들
영원을 향한 길목에서 자유를 찾은 소녀들의 밤
인생의 복락 삶의 뒤안길
수를 셀 수 없는 생의 명과 암
시간을 잊은 고독의 방
파두의 라틴어 원류가
깨어 있는 영혼으로 침묵을 두드리며 춤을 춘다

아서라,
영겁의 향기 부처님 자비가
고독을 빛으로 가득 채운다

 

 

 

 

[당선소감] 부처님 넉넉함처럼…시는 나의 오랜 친구

아침 산책을 마치고 오니 당선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처님의 자비가 눈처럼 내려앉은 날이다. 따스한 햇살이 편백나무에 부딪혀 빛이 아름답게 비치는 날부터 신춘문예 준비를 했다. 행복하기도 하고 고독한 시간들이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여서 아름다운 시간이기도 했다. 때로는 의구심이 들 때에도 있었지만 신의 자비하심으로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진실한 시간으로 저와 시의 세계를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었다.

시를 쓰고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세상에 진실해야함을 의미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의 진실을 붙잡고 마주한다. 그리고 진실한 나와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바로 글과 시로써 말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을 찾는 과정에서 많은 질문들과 씨름해야만 했다. 삶의 의미와 가치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신과 종교에 대한 갈망은 해가 거듭될수록 계속 되었다. 누구나 신을 찾고 갈증을 느끼는 때가 있다. 그리고 우리 삶에서 가장 근본적인 고민들인 종교와 신의 존재에 대해 많이 고민해 왔다. 수많은 학자들이 신에 대해 연구하고 정의내리고 있지만 신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 넘는 분이다. 우리는 매일 신의 기적을 체험하는 행운아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멈추고 자신안의 자비와 평화 고요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 순간을 글로 쓴다는 점은 참 행복한 일이다. 모든 것을 다 받아주는 부처님의 넉넉함처럼 시 또한 나의 가장 오랜 친구다.

요즈음 문학이 설 자리를 잃어간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럴수록 문학과 시가 많이 필요한 세대다. 우리를 진실로 살게 하는 것은 영혼을 고양시키는 아름다움이다. 성인들은 물론 시와 문학을 우리 아이들이 더 많이 접하고 더 많이 향유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교의 아름다운 사상은 문학과 시로 노래하기에 무궁무진하다. 시인에게는 그 지혜가 아름다운 바다와 같게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고독 속에 분투하고 있을 많은 미래의 예술가들과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작은 등불이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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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응모작들의 높은 수준과 시적 풍요로움


본심에 오른 대부분의 작품은 일정 수준을 넘어섰으나 그 중 일부는 불교적 소재나 불교적 사유가 밖으로 드러나 어색한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숙고의 대상이 된 ‘안나푸르나’, ‘집에 들다’, ‘선잠’, ‘생각의 그늘’, ‘불일암 오두막’, ‘고독의 방’, ‘끝’ 등의 시편들은 상당 수준의 시적 공력을 엿볼 수 있었다. 시적 언어의 구사나 이미지의 형상화 능력 등에 있어서 오랜 수련을 알 수 있게 하여 응모작들의 높은 수준과 그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위에서 거론한 작품들 중에서 마지막까지 심사자의 손을 떠나지 않은 것은 ‘집에 들다’, ‘선잠’, ‘생각의 그늘’, ‘고독의 방’ 등 4편이었다. ‘집에 들다’는 비교적 간결한 시인데 ‘국수 꼬리 같은 나를 보았다’와 같은 독특한 표현이 주목되었으며 마지막에서 불교적 사유를 유연하게 보여주었다. ‘선잠’은 남편을 잃고 제삿날 시골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우회적 어법으로 잘 표현해 내었으나 불교적 소재가 유연하게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생각의 그늘’은 사물을 바라보고 이를 사유하는 과정을 시적으로 변용시키는 유연함을 보여주었으며 긴 시행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나가는 저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마지막 부분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지는 않았다. ‘고독의 방’ 역시 사변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일단 산뜻한 첫 부분의 시작과 “청보리밭 청명한 마음이 입 안에서 오도독 씹힐 때”와 같은 감각적인 표현이 인상적이었으며 중간 부분에서 시어의 열거로 약간의 흔들림이 있었으나 마지막 결말의 처리에서 탄력적인 긴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상의 시편들은 각각이 지닌 장단점으로 인해 우열을 정하기가 어려워 당선작을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다. 다시 작품을 정독하고 비교한 다음 다른 분들의 작품보다는 완결성을 지닌 ‘고독의 방’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결말 부분에서 ‘고독을 빛’으로 채워 부처님의 자비를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을 강점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편수의 시조가 최종심에 넘겨졌으며 이들 작품 또한 세심히 읽어 보았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편들이 너무 형식에 억매이거나 과장된 어법을 구사하고 있어서 당선작의 대상이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당선된 분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아깝게 탈락한 분들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드린다.


심사위원 최동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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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 이윤순

 

설마에 
속아 산 세월
어느 덧 팔십 여년
태워도 
안 타더라
끓여도 안 익더라
아파도 
끊기지 않는 너 북망산은 끊어 줄까

 

세상에 
질긴 끈이
천륜 말고 또 있을까
노구의 
어께 위에
버거운 짐 덩이들
방하착(放下着)
할 수 없으니 착득거(着得去) 할 수 밖에

 

 

 

 

나는야 퍼즐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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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도전의 맛은 꿀맛이다

 

2017 정유년은 내 생에서 말끔히 삭제해 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해였다. 어서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했었는데, 부처님은 결코 나를 버리시지 않으셨는지 뜻밖에도 나의 절실한 희망사항이었던,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이란 행운의 소식을 안겨 주셨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 하고 싶어 하는 관문이기에, 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해바라기하며 살아오던 중인데, 꿈같은 현실에 놀라 가슴이 두근거린다.

 

가방끈이 짧은 탓으로 사는 동안 난 늘 위축돼 있어서 글쓰기 취미는 있었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걸 잘 알기에 집에서 혼자서만 긁적거렸지 엄두는 내지 못했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바쁘게 살아 오다보니, 나이 칠십이 넘어 서야 이렇게 도전을 해 행운의 기쁨을 누려 본다.

 

이제 와서 생각 해 보니 올해는 끔찍한 비극의 해만이 아니고, 희비가 엇갈려 온 한 해가 된 셈이 되었다, 올 해로 9순의 어머님도 가셨고, 단짝이던 친구도 지인 형님도 세상을 떠났고, 칠십년 고락을 같이 하던 나의 밥통(위)도 나만 살겠다고 도마뱀 꼬리 자르듯 떼어 보내어 가슴에 멍든 이 정유년이, 막바지에 와서는 이렇게 나에게 큰 행운으로 마무리 하게 해 준 정유년의 대한 원망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힘들었던 전반전과 외롭고 아팠던 후반전을 거쳐 이제 막바지인생 연장전에서 병마를 벗 삼아 비위 맞춰 달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내 마음의 버팀목은 가족이 우선 이지만, 글 쓰고 시 쓰는 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며 버팀목 이다. 밤이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나에겐 지루 할 일이 전혀 없어 좋다. 날마다 아침이면 지인들과 카톡으로 주고받던 그 좋은 단어들을, 오늘 내가 한참에다 누리는 좋은 하루, 웃는 하루, 즐거운 하루가 되었다. 꿈은 꾸었지만 이루어지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 했었는데, 오늘 이 기분 그야말로 짱! 이다 평생 잊지 못 할 것 같다. 내 생에 대박사건이다

 

끝으로 졸작을 좋게 평가 하시어 뽑아주신 불교신문 심사위원님들과 불교신문 관계자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선견지명으로 나를 밀어주시고 용기를 주신 스토리문학의 김 순진 교수님과 편집장 전 명숙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카페 회원님들과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나의 가족 친지, 그리고 모든 지인 여러분들과 이 기쁨 이 감격을 함께 누리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불교신문 관계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당선 소감을 마칩니다.

 

 

 

 

[심사평] 다시 한번 심신 다하는 시의 길을 찾길

 

큰 기대 아니어도 기대가 기대로만 끝나는 일은 초라하다. 한 해를 보내면서 읽은 예선 80여 편은 읽는 자의 신세마저 일깨워주었다. 또한 기대 이상의 작품을 만났을 때의 흥건한 기쁨을 다음으로 미루는 애착도 일어났다.

 

먼저 응모작품 1천 여 편 가운데서 예선된 80편까지의 단계로 보건대 불교신문 신춘문예의 규모가 이제 문단의 차원으로 방대해진 사실은 놀랍다. 놀라운 한편 이런 양적인 응모현상이 어떻게 그 양을 책임지는 질의 수준의 높이는가를 걱정하게 된다.

시는 누구만의 것이 아니다. 시인은 어느 시대처럼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시의 진실과 감동은 그토록 아무나 이루어 낼 수 없다. 이 점에 대한 진지한 시인의식을 먼저 갖출 이유가 갈수록 절실해진다.

 

이상의 몇 마디 고언이 혹시 내년 내후년의 응모에도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무기명 번호 7번 ‘애(애간장)’과 12번 ‘시’ 그리고 1266번 ‘명조체’를 골라놓고 다섯 번 여섯 번을 읽었다. 지푸라기라도 건져 올리고 싶어서였다. 당선작으로 내세우는 결심은 쉽사리 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 해 농사를 빈털터리로 되는 것을 막아준 한 편의 시조 운율을 깔아 놓은 전 2연의 짜임새가 정갈했다. 완성도는 숱한 미완성이나 미숙성 바로 뒤에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한 구절로 말미암아 좀 부자연스러웠다. 시속의 화자가 80여 세 운운에 고개가 기울었다.

 

‘명조체’는 잘 다듬는다면 틀림없이 풍성한 것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번다한 설명조의 서술을 경계해야겠다. ‘시’는 첫 두 줄의 빼어난 묘사에도 불구하고 그 뒤는 진부하다. 누가 예선 결선 작품을 고르던 응모자의 정진 없이는 당선의 영예는 없을 것이다. 1천여 명 응모자와 80여 명 예선 응모자 그리고 최종 3명 결선 응모자 여러분이 다시 한 번 심신을 다하는 시의 길을 찾길 바란다.

 

심사위원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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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대(輪藏臺) / 김성신

 

 

삼월 삼짓날은 윤장대*를 돌리는 날

풍경소리 곱발 세우고

산자락은 그늘을 등지고 좌정한다

 

108배 올리던 법당에서

굽은 허리와 무릎 뼈 석탑처럼 일으켜 세우고

윤장대 돌리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묵은 발원이 한 각씩 깊어진다

 

상현달 달무리 지는 밤

아이의 울음소리 희미하게 살아나고

안간힘을 토해내던 흑백의 한 생

몸속 경(經)이 된 통증을

한 올 한 올 부풀리니

저만큼 솔바람에 가슴 쓸리기도 해

 

앞뒤 없는 회한과 갈망은

두 손 맞잡고

배웅하듯

한 곳을 바라보니

이마 위로 맺힌 땀방울

눈물의 동의인양 하염없이 흐른다

 

더 두툼해질 법문의 책장에

줄 맞추어 반듯하게 들어가 있을

어머니의 비워낸 몸을

나는 가만히 부축하여본다.

 

* 경북 용문사 내 소재 보물 제684호.

 

 

 

 


[당선소감]  쉰 넘은 나이 ‘우공이산’ 도전 평생 시 쓸 용기와 자신감 얻어

 

아주 천천히 내 가슴을 누르며 걷는 발자국. 아버지의 숨소리. 응급실 침대에 눕혀드린 뒤 당선소식을 전하니 아버지, 작은 수국처럼 웃으셨다. 오늘 하루는 다행이다. 나의 시작(詩作)은 쉰이 넘은 나이에 우공이산(愚公移山)처럼 다소 무모하고 불가능한 도전. 안으로 삭이며 감내한 나날들의 삶이 시가 되어 나왔을 때 갈등과 방황이 여과 없이 맺히기도 하였고 이름 없이 숨었던 꿈들이 서성이며 꿈틀거렸다. 여러 번의 낙방으로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절차탁마의 노력으로 끊임없이 퇴고한 윤장대. 이번 당선은 평생 동안 시 쓸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에 한 치의 부족함이 없다.

 

신춘문예 당선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일궈낸 열매가 결단코 아니다. 마음의 깊은 은혜와 동시에 빚을 진 분들이 많다. 시에 입문해서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가르침을 주고 너무나 일찍 우리 곁을 떠나신 고(故) 송수권 교수님을 비롯해 주저앉은 손을 잡아주며 섬세한 퇴고를 가르쳐주신 감태준 교수님, 수업시간 열강과 용기로 힘을 북돋아주신 광주보건대 사회교육원 정윤천 교수님, 새벽마다 메일로 시를 확인하며 희망을 심어주신 한국동시문학회 회장 이준섭 은사님 등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부모님의 쾌유를 간절하게 빌며 늘 저를 응원해준 남편과 우리 가족들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내 시에 마음 내어주신 심사위원과 불교신문사에 큰 감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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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불교정서·고의조차 벗어던져 신인답지 않은 맵시 녹아있어

 

예선으로 온 시조들은 희귀하다. 단 한편 ‘밤비’가 평시조의 율격을 그런대로 지켜냈으나 내용은 안이하다. 시조가 시보다 성공하기 더 어려운가. 아니 시와 시조는 다 함께 손쉬운 표현형식이 아니다. 시 쪽의 대부분은 서술의 엉성한 나열이 눈살을 짓게 한다. 현실의 어느 관점이나 이미지에 대한 성실한 포착이 잘 안 보인다.

 

좋은 작품에 대한 애초의 기대는 작품 하나하나를 살피는 동안 그 기대의 높이가 낮아진다. 설레는 마음이 목마른 마음으로 바뀐다. 신춘문예란 한 해의 수확 가운데서 어떤 기념의 의미를 찾아내는 일과 새로운 해를 앞두고 어떤 삶의 각성을 내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격려도 위로도 인사치레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낙선된 작품도 다시 쓰기를 통해 훨씬 우수한 작품이 될 수 있음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번 당선작은 첫 눈에 정해졌는데 ‘윤장대’가 그것이다. 신인답지 않은 유려한 묘미를 터득하고 있어서 창작의 연륜을 짐작케 한다.불교신문 신춘문예라는 특수성에 호응하는 불교적 정서를 담는 고의조차 냉큼 벗어나고 있다. 시의 맵시가 녹아있다. 앞으로 다른 작품들도 이만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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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한상록

 

 

보십시오. 내게 빈 하늘을 열어

가벼운 마음 옷차림으로 흙을 밟게 하십시오

어디선가 두엄 지피는 향내 그윽하고

새살 돋는 들풀의 움직임 간지럽지 않습니까

돌아오지 않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꿀벌의 잉잉거림 속에 묻어오고

겨우내 강을 건너지 못했던 나무들의 희미한 그림자가

아지랑이 실핏줄로 살아나지 않습니까

잃은 것이 있다면 내 뜰로 와서 찾으시지요

이제 내 뜨락에 샘을 내므로

흩어진 목숨붙이들 찾아 모으려 합니다

바람만 드나들던 수족관을 가셔내고 맑은 수면에다

튀어오르는 날빛 지느러미를 풀어놓으면

찰랑거리는 햇빛을 입고 내 생의 물보라 아름다울 겁니다

옥상에 내어걸린 빨래 나날이 눈부시어가고

누군가가 돋움발로 벗어붙힌 몸을 넘겨다 보면

산록의 묵은잠을 흔들어 놓을

아스라한 진달래향 더욱 곱지 않겠습니까

저 만치 다가오는 나무들의 길이 보이고

새순같은 배꼽을 드러낸 개구쟁이 아들놈

동화 속의 악당을 찾아 타앙 탕 말을 달리면

그 길목을 따라 몇굽이의 강이 흘러서

우리의 얼어붙은 꿈도 촉촉이 적셔지지 않겠습니까

 

 

 

 
[당선소감] 견뎌내기 힘든 나날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

 

동지를 몇 시간 앞두고 퍼져있는 겨울햇살이 온누리를 물들여 가고 있다. 그 햇살의 누리를 뚫고 겨울나무의 깡마른 우듬지가 마지막 남은 허공 몇 점을 어루만져 주고 있다. 우주가 품고 있는 넓고 깊은 섭리의 눈초리는 저 작은 매만짐 하나하나 마저 놓치지 않는 치밀함으로 가득해 있으리라.

 

당선통보를 받기 바로 전에는 내게 짐 지워진 삶의 녹록치 않음을 두고 마냥 한탄만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삶에 대한 내 나름의 고집이 있지 않으면 견뎌내기 힘든 나날이었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비루하기 짝이 없고 손대는 족족 막히기만 했던 내 인생의 나날 가운데 참고 견디다 보니 이런 엄청난 홍복까지 주어지는 날도 있다니, 이 당선소감을 쓰고 있는 이 시간까지도 얼떨떨하기만 하다.

 

이십 년 전에 나는 어느 문예지의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선소감문에 백의종군하는 마음가짐으로 오직 한 길만을 걸어가겠다고 힘주어 말한 적이 있다. 그 다짐이 있어서였는지는 몰라도 나의 글 쓰는 일을 가로막는 많은 악조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일념으로 견뎌냈다. 하지만 바늘구멍보다 뚫기 힘들다는 신춘문예 당선이 어디 일념 하나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란 말인가.

 

나는 이번 신춘문예 당선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이 없으면 결코 얻어질 수 없는 자리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 말이다. 끝으로 이번 당선을 통해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와 글 쓰는 일을 계속해나갈 명분을 안겨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불교신문사에 멀리서나마 큰절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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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재주 부리지 않고 평상심 거스르지 않았다

 

뽑는 자는 눈이 번쩍 뜨이는 작품을 바라는 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작품이 “여기 나 있소” 하고 나타나는 일은 쉬운 노릇이 아니다. 이번의 응모작 가운데서 나에게 뽑혀온 작품들을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들을 다시 골랐다. 네 번씩이나 읽은 나머지였다. 그것이 ‘검’, ‘나무의 모든 냄새들에 대하여’, ‘돌고래 정착기’, ‘물 위에 지은 집’, ‘단풍’, ‘남술이’, ‘연보라 제비꽃’, ‘귀공’, ‘느그는 좋겠다’, ‘봄’, ‘풍경’, ‘산사에 눈이 내리면’, ‘서울 아리랑’이었다. 이 가운데서 ‘봄’이 마지막까지 남았다. ‘봄’의 인상은 첫째 안정감이다. 들쭉날쭉하지 않다. 재주 부리지도 않는다. 언어에 무리가 생기는 일이 드물었다. 진부한 표현이 한 두군데서 걸렸으나 작품 전체의 평상심을 그다지 거스르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러나 이 작품 바로 다음에 ‘검’, ‘나무의 모든 냄새들에 대하여’가 아쉽게 뽑히지 못한 사실에 빚지고 있다.

 

심사위원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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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꿈 / 김희원

 

 

어릴 적 나는 스님에게도 꿈이 있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말없이 미소만 지으셨다

잠자코 비질만 하셨다

그 뒤로 꿈은 속인에게만 있는 것인 줄 알았다

꿈이 많아서 앓아눕던 나는

엄마한테, 내 꿈 좀 버려달라고 했다

늙어 다시 찾은 절에서

비질을 하는 젊은 스님을 본다

꿈이 있었을까

꿈을 버렸을까

마당을 비워내는 비질에서

한쪽으로 쌓이는 나뭇잎이 있다

딱히 쓸지 않아도 좋을 나뭇잎을

스님은 쓸어낸다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을 애쓰는 몸짓에서

스님도 무언가 매달려 있구나

늙은 손은 염주를 고쳐 잡고

비워지지 않는 빈 마당을 보며

저 은자의 꿈같은 것은 거두어가시라고

어미 마음으로 죽향이나 더 태웠다

 

 

 

[당선소감] 이제 고무신 탈탈 털고 늙은 마음으로 나서봐야지요

 

내세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길로 교내 대성전으로 향했습지요. 속울음을 삭힌 뒤에야 불가의 마음으로 유가의 전당을 찾았음을 압니다. 양가 모두 노여워마세요. 단지 속세만 아니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는걸요.

 

대성전 앞뜰에 쌓인 눈은 여전히 순결하였습니다. 구름의 그림자도 함부로 내려앉지 못했답니다. 저 역시 육욕이라도 번질까 누군가가 남기고간 발자국만 밟고 섰습니다. 정녕 가고 싶은 세계는 저쪽에 따로 두고서요.

 

제게 있어 시란 그러한 존재입니다. 가까이하고 쓰다듬고 싶으면서도 차마 마음을 먹지 못하는 세계. 저로서는 그 자체가 고귀하고 순결하도록 놓아두는 편이 좋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잘못 날린 머리카락 한 올에 인연이 될 줄은요. 여기(餘技)에 지나지 않을 붓질을 하나의 여백으로 보아주시니, 이 몸은 업을 지어도 단단히 지었습니다.

 

시력(詩歷)이라 할 것도, 시심(詩心)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온몸으로 시를 썼던가, 죽비만 휘두릅니다. 오늘일은 말의 절간에서 차 한 잔 잘 마시고 간다, 생각하렵니다. 이제 고무신 탈탈 털고 늙은 마음으로 나서봐야지요. 생의 여백은 주름진 데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침 탑 그림자가 비에 쓸립니다.

 

 

 

 

맛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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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당선 이후 뼈저린 단련 있어야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시절에는 그런 세월의 한 자국으로 하여금 새삼스레 인간의 예절이 있게 된다. 첫째 거친 말투가 없어야 한다. 서로 은근히 격려하고 상찬하는 아름다운 말씨가 살아나야 한다. 오랜 덕담이 바로 그렇다. 이런 자세로 이번 응모작 가운데서 뽑혀온 작품들을 읽었다.

 

어디 경전이 따로 있겠는가. 고대 동양에서는 시를 시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 응모작들도 그 밑바닥에는 사뭇 경전의 어떤 요소가 들어있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나 이것들을 대하는 동안 나에게서 결코 아름다운 말씨로 소감을 적을 수 없게 환멸이 늘어났다. 거의가 말을 비틀어내고 있다. 거의가 말이 삶에서 길어 올리기보다 꾀부리는 헛 장식으로 되기 십상이었다. 이런 것들을 읽어가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지난해나 지지난 해의 응모작보다 차이가 나는 원인이 뭘까 하고 생각했다. 아마도 막된 세태와 당대 삶의 부화뇌동 그리고 정서의 굴절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것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가작 수준의 작품이 거느린 소박한 서술전개가 돋보였다. 억지 복합은 단순 표백을 두드러지게 한다. <스님의 꿈>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작품 자체의 긍지보다 다른 것의 언어남용 속에서 눈에 띄는 환경의 덕택 삼아 당선작으로 삼는다. 당선의 기쁨보다 당선 이후의 뼈저린 단련이 있어야 비로소 한 시인의 초상을 이룰 터이니 스스로 채찍의 붓을 들 것.

 

다음으로 위의 당선작과 견주게 되는 <흰나비>는 장자 호접의 고차원을 그대로 복사한 것인데 그런 복사의 유추를 자기화하는 솜씨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장자 텍스트가 작자 자신의 텍스트로 환원되는 일은 도식적이면 안 된다. <소금꽃 사리>는 어머니의 장례를 통한 처연한 어머니의 일생과 그 일생의 결말을 깊은 애도로 그려내는데 주지적 서술보다 재래 심성의 어조였다면 그 완성도가 더할 뻔했다. 정진하면 제 그릇을 이루리라. <봄을 만나다>는 설명이 진실을 가려버린다. <철쭉제>는 시조의 자연스러움에 더 다가가야겠다.

 

심사위원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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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슬 / 심수자 

 

 

거미도 없는 빈 거미줄이 도처에 무성하다

초읍동 일층 단칸방에 살다가

얇은 요위에서 오년 만에 발견된

독거노인은 백골이다

산동네 좁은 골목길이 얼키고 설켜

커다란 거미 한 마리쯤은 키웠겠다

한 생을 다한 그녀는 거미 몸에 들어

자신을 갇히게 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풀어낸 실로 여리고 성을 쌓은 것이다

방 한쪽 구석엔 냄비와 그릇 두어개

빈 가스버너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녀, 한 겹 두 겹 아홉 겹 까지 껴입은 옷은

추위 멈추고 싶은 몸부림 이었겠지

무뎌진 낮과 밤의 경계에서

이끼는 바닥의 습기를 먹고 자라고 있었다

그녀가 백골이 되어 가면서

곤충들 더 이상 걸려들지 않을 때

거미는 자신을 걸어둘 장치로

바람 속에 집을 지은 것인지도 모른다

도처에 걸린 거미줄이 내 얼굴에 닿을 때

초읍동 반 마장 거리의 파도 자락은

이미 떠나고 없는 배의 후미인 듯

거미집 바람벽을 밀고 있었다

 

 

 

 

술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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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쓸쓸한 누군가에게 한 모금의 물을 건네라는 현몽인가 …

 

엊그제 집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뼈에 금이 갔습니다. 지난 밤, 절뚝이며 시인을 꿈꾸는 문우들과 송년모임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눈을 만났습니다. 눈 오는 날이 흔하지 않은 도시에 살고 있는 나는 눈이 전봇대 아래 내다놓은 연탄재들을 꽃무덤으로 피우는 고뇌의 순간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눈이 덮은 것은 연탄재이거나 한생을 다한 여러 쓰레기들이란 것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것입니다. 몇 걸음 더 옮기는 곳에서는 눈의 무게에 눌린 측백나무도 안타깝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아무 말 없이 눈을 받아내는 모습이란, 시를 생각하는 내게 길안내를 친절하게 해주는 밤 이었습니다.

 

머지않아 눈은 녹겠지요. 버리기 위해 내다 놓은 것들도 더 측은해 지겠지요. 나무의 뿌리는 갈증의 목을 축이겠지요. 다리가 부러질 땐 헛꿈을 꾸지 말라는 계시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눈이 남은 아침에 나는 당선연락을 받았습니다. 이 또한 세상의 어지러움을 손발과 정신이 시리도록 하얗게 문질러서 서럽고 쓸쓸한 누군가에게 한 모금 물을 건네라는 계시로 받아 들여야겠습니다. 늦은 나이지만, 늦었다는 생각도 지우겠습니다. 사는 일에 골몰하다 미루어둔 문학의 꿈을 이루도록 물가로 인도하느라 애써주신 대구시창작원 박윤배 선생님과 뒤를 묵묵히 지켜봐주신 가족에게 감사드립니다.

 

형상시 문우들 먼저 신춘 문을 열게 됨에 왠지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뽑아주신 선생님들의 건강을 늘 잊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애독하는 불교신문사의 번창을 기원 드립니다.

 

 

 

가시나무 뗏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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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이 시대를 실감케 하다

 

또 이 일을 맡았다. 가는 해 끝자락에서 만난 시가 새해의 시로 태어나는 일에 나도 설레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많은 응모작들을 예선이라는 체로 걸러서 나에게 온 것들도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숨찼다.

 

작자는 멀리 칠레까지도 가 있고 오세아니아의 어디에도 가 있는 화자(話者)로 등장한다. 지난 시대의 상습적인 고향타령은 이제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것이 시의 깊이보다 넓이 쪽으로 기울어지는 함정이 되기로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쪽의 경향들이 더 바람직할 가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시의 길은 세상 안에서나 자아 안에서나 쉬운 노릇이 아니다.

 

예선작의 소감이 더 있다. 첫째 어떤 작자의 태도가 자신의 언어를 불손하게 다루고 있는 사실이다. 토속말로 우자부리는 수작이었다.

 

이런 현상 말고도 의식과잉이 자주 보였다. 그 과잉이 현학적인 기분이나 내고 있을 때는 눈살을 찌푸리게 될 만하다. 20세기 모더니즘 공과론에서 과(過)쪽에 속할 것이다. 지적인 분식은 어떤 경우에는 시 속의 죄악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월과 백석으로 돌아가라는 정서소급을 위한 독려가 옳다는 것도 아니다.

 

이것저것 고르고 고르다가 6편이 남았다. ‘일출역동기’, ‘꿈의 잔영’, ‘내 데칼꼬마니’, ‘어머님, 그 해 가을은 행복했습니다’, ‘엇갈림’, ‘몸뻬바지’, ‘바람의 사슬’이다.

 

‘일출역동기’는 비교적 탄탄한 구문으로 되었다. 하지만 시가 표현이 아니라 해설이 될 위험이 있다. 긴 호흡은 장점이다. ‘꿈의 잔영’, ‘내 데깔꼬마니’는 시의 맛을 터득한 작품이다. 앞으로 시인생활이 보장되는 그런 작품이다. 다만 치열성이 뒤따라야겠다. ‘어머님, 그해 가을은 행복했습니다’는 풍성한 울림을 가진 작품이다. 그리고 쉽다. 서정의 힘은 지식의 조각 나열 따위나 은유의 자폐증 따위를 벗어난다. 하지만 어딘지 빈곤하다.

 

‘엇갈림’과 ‘몸뻬바지’, ‘바람의 사슬’은 서로 겨룰만한 것들이다. 셋 중의 어느 하나를 고르기가 망설여졌다. 그럼에도 우리 동시대의 처절한 삶의 비극성 도출에 방점이 찍혔다. 물러선 두 편의 작자는 이번 말고 다른 기회에 세상의 문을 두드릴 것을 바란다. ‘바람의 사슬’의 실감이야말로 이 시대의 시적 절실성이다.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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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최길하

 

 

탑은 탑보다

탐 그림자가 더 좋다

그림자도 그냥 그림자가 아니라

물고기떼 집이 돼주는 물 속 그림자가 더 좋다

물 속 그림자도

뭉게구름 몇 장 데리고 노는

늙으신 탑이 더 좋다

아침마다 마당을 쓸어놓고

등불같은 까치밥 쳐다보는

우리 종손같은 탑이 더 좋다

 

 

 

 

녹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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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불교의 진리는 질량불변의 법칙입니다

 

제게 불경을 풀어놓은 책이 있는데 그것이 고등학교 교과서인 화학생물물리 등의 책입니다공고 화공과를 졸업하고 그것으로 지금까지 밥도 만들고 글도 만들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참 재미없는 책이 전공이었던 화학이었는데 졸업을 하고 어느 날 헌책방에서 일본사람들이 쓴 갈잎만한 크기의 자연과학문고를 만났습니다그 사람들은 물리 수학 화학 천문을 세상 이치와 비교하면서 너무 재미있게 풀어놓았더군요.

 

<화엄경>이 참 심오하고 좋다고 하여 그것만 터득하면 마음에 환한 꽃밭이 한 마지기 생기는 줄 알고 책을 사서 읽어보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그래도 심심하면 바람이 책장 넘기듯 뒤적뒤적하다 덮고 하기를 몇 십 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 화학책 내용 중에 질량불변의 법칙이 바로 <반야심경>과 한통에 붙은 배와 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그 때부터는 <반야심경> <화엄경>이 엉킨 실 풀리듯 술술 다 풀리는 겁니다.

 

<법화경> <화엄경>은 자연과학을 은유와 상징으로 세상이치를 말씀하신 자연과학책이었고화학 천문 물리 등은 경전에 그려놓은 법계를 수치로 정량계산 할 수 있도록 증명한 경전이었습니다가장 큰 발견은 등호(=)입니다모든 수학은 좌변과 우변을 평등 즉 균형을 이루게 하라는 것이잖아요균형이 되면 정답이고 어느 쪽으로 기울면 오답입니다.

 

이 세상의 이치인 성주괴멸 이것은 산화와 환원인데 항상 동시에 이루어지며 좌우가 질량불변균형을 유지합니다요즘 정치사회의 화두가 통합이고 통합의 방법으로 격차를 줄이자는 것인데 층의 높낮이차를 낮추자는 것도 등호(=)의 세상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시조를 쓰고 있습니다성을 쌓고 스스로 성에 가두어진 성주와 성 안에 백성이 있는 연방을 바라보면서 소외자가 치고나갈 방편으로 시를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신문사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리며 결코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심사평] “번잡 벗어도 결핍은 없었다

 

또 묵은 인연으로 <불교신문새해의 시를 만나게 되었다. 500인의 응모작 가운데서 나에게 온 92인의 작품들을 읽기를 거듭했다우선 소재의 폭이 넓다.

 

절간 해우소와 노모의 응가에도 시의 시야가 꽂혀 있다쓰레기 분리수거와 환경미화원의 미덕에도 가 있다찜질방에도 가 있다멀리 아프리카 수단에서부터 스페인 그라나다도 지나친다.

 

물론 <불교신문응모이므로 산사나 불교정서에 발걸음을 상습적으로 하는 것도 적지 않다하지만 시조쪽이 저조한 반면 자유시 쪽의 역량은 그야말로 당당한 군웅할거(群雄割據)이다자유시의 경우 그 지적인 표현능력의 수준이 놀라울 정도였다.

 

월식은 착실하다어머니의 내실 반지고리에 성장과정의 향수가 밀집한다. ‘호미로 새긴 금성모자’ 역시 농경사회의 한 정경이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사상(事象)을 구현한다. ‘농점 6’ 역시 벼농사의 첫 사례가 정교한 공감을 자아낸다농업적 지성이 여기에 있다. ‘궁극의 시간은 청각언어의 묘미를 재미나게 살리고 있다우리말의 의성어로 궁극의 의미를 포착하는 재치가 있다.

 

은 번잡을 다 벗어나 있다그렇다고 결핍은 눈에 띄지 않았다단호하고 단정하다참 경지가 엿보인다다만 이것과 다른 작품의 수준에 차이가 나서 이것이 의외적이다. ‘노도서신은 서포 김만중을 통한 강개가 절절한 궁중언사가 묘미를 더한다유장하다. ‘둠벙에게 물어봐는 고향에서의 유년체험이 성숙한 의식에 대해서 근본에의 환원을 일깨운다시다운 시다.

 

배꼽이다는 이만한 현실감각에서의 깊은 자의식은 기성시단에서고 귀중한 현상이다하지만 의식의 노출이 감동보다는 충돌하는 기호의 역설에 기울어지고 있다이런 나머지 으로 당선작을 삼는다. ‘둠벙과 배꼽이 아깝다내 마음으로는 셋을 한꺼번에 뽑고 싶었다.

 

심사위원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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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에 홀로 앉아 / 박상주

 

 

날 좀 때려주오

천년고찰 범종 치듯

안으로

다져놓은

전탑(塼塔)언어 청태(靑苔)눈물

빈 골짜

다 쏟아 붓고

나비 되어 가련다

 

 

 

 

 

백의(白衣)를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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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못다 한 말, 심장 속에 한 장 벽돌로 구워냈다아침에 비둘기 떼가 한바탕 원무(圓舞)를 추며 하늘을 쓸더니, 오후에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암자에 홀로 앉아’라는 작품이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기쁘나 슬프나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던 앞산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떡인다. 이미 처녀시집까지 펴낸 아내가 큰 눈을 반짝이며 축하의 손을 내민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찌 할 소리 다하고 흘릴 눈물 세상에 다 보일 수 있겠는가. 사람은 저마다 밤이 되면 못다한 말 덩이 덩이를 한숨으로 이겨서 뜨거운 심장 불 속에 넣어 한 장의 벽돌로 구워낸다. 그리고 그 벽돌을 차곡차곡 마음 한 기슭에 쌓아올려 전탑(塼塔)을 세우고 그 전탑 위로 혼자 흘린 눈물은 이끼로 피어나고 그 위로 날아든 풍경(風磬)소리는 푸름을 더해간다. 하루가 저물어 갈 때 들려오는 산사(山寺)의 범종(梵鐘)소리는 숙연한 기분을 자아낸다.

 

둥! 종이 울리고 한 동안 그 파동은 지속되다가 웅! 웅! 맥놀이를 거듭하다 서서히 종소리는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종소리가 울려온다. 마치 중생들이 생로병사(生老病死) 속에 억겁 생(億劫 生)을 거듭하며 쌓아온 모든 번뇌덩이를 모아 빈 골짝으로 쏟아버리듯. 곡마단 천막 안에서 무대가 보이지 않아 발뒤꿈치를 치켜들던 키 작은 소년같이, 아직 낮은 등고선에 머물고 있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법화경> ‘화성유품’의 ‘변화성(變化城)’으로 잠시 자리를 마련해 주신 그 배려와 믿음이 헛되지 않도록 정상(頂上)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백양산 선암사 저녁종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누가 날 때려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머리를 쳐본다. 어릴 적 심어둔 별 하나가 동지 밤을 치른 겨울 하늘에 돋고 있다.

 

 

 

 

[심사평] 청각.시각 대비 살려낸 ‘묘경1'

 

‘보시(1)-지렁이’의 담담한 고백체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눈물자국’도 덜 설명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제쳐두기 아까웠다. ‘회화나무’의 단단한 솜씨도 그랬다. ‘나를 흔드는 기억들’도 일상의 신산스러움을 냉철하게 그려내고 있다.이런 작품들을 지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세 작품이 시부분 ‘세월에 告함’ ‘분원의 강덴 노을의 소각장이 있다’와 시조부문 ‘암자에 홀로 앉아’였다.

 

그런데 이것들은 각각 다른 몇편과 함께 보내온 것이어서 그것들을 읽는 동안 그 실력의 속내가 밝혀지는 경험을 했다.결국 시조부문 ‘암자에 홀로 앉아’를 당선작으로 삼았다. 당선작 시조는 종소리와 ‘청태눈물’이라는 청각 시각의 대비를 살려내는 묘경을 이루었다. 다만 ‘때려라’라는 거센 표현이 산사 환경을 작위적이게 했다. 하지만 기승전결이 썩 좋았다. 아쉽게 된 시쪽은 중후한 음조 위에 참신한 언어구사를 한 작품이다. 그러나 한두군데의 휴지부가 거슬리는 현학취미를 자아내고 말았다.

 

편집국 벗들의 갑작스러운 부탁을 면전에 사절하기가 쉽지 않아서 이 심사를 맡았다. 바야흐로 흑룡의 새해 <불교신문> 창간시대의 인연을 떠올리며 낯선 선자가 되어 보았다.낙선의 작자들은 더 연마하기 바라고 당선자는 이번의 수준을 뛰어넘는 내일을 지향하기 바란다. 산중이 진언 ‘향상일로(向上一路)’가 왜 있겠는가.

 

심사위원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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