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대(輪藏臺) / 김성신
삼월 삼짓날은 윤장대*를 돌리는 날
풍경소리 곱발 세우고
산자락은 그늘을 등지고 좌정한다
108배 올리던 법당에서
굽은 허리와 무릎 뼈 석탑처럼 일으켜 세우고
윤장대 돌리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묵은 발원이 한 각씩 깊어진다
상현달 달무리 지는 밤
아이의 울음소리 희미하게 살아나고
안간힘을 토해내던 흑백의 한 생
몸속 경(經)이 된 통증을
한 올 한 올 부풀리니
저만큼 솔바람에 가슴 쓸리기도 해
앞뒤 없는 회한과 갈망은
두 손 맞잡고
배웅하듯
한 곳을 바라보니
이마 위로 맺힌 땀방울
눈물의 동의인양 하염없이 흐른다
더 두툼해질 법문의 책장에
줄 맞추어 반듯하게 들어가 있을
어머니의 비워낸 몸을
나는 가만히 부축하여본다.
* 경북 용문사 내 소재 보물 제684호.
[당선소감] 쉰 넘은 나이 ‘우공이산’ 도전 평생 시 쓸 용기와 자신감 얻어
아주 천천히 내 가슴을 누르며 걷는 발자국. 아버지의 숨소리. 응급실 침대에 눕혀드린 뒤 당선소식을 전하니 아버지, 작은 수국처럼 웃으셨다. 오늘 하루는 다행이다. 나의 시작(詩作)은 쉰이 넘은 나이에 우공이산(愚公移山)처럼 다소 무모하고 불가능한 도전. 안으로 삭이며 감내한 나날들의 삶이 시가 되어 나왔을 때 갈등과 방황이 여과 없이 맺히기도 하였고 이름 없이 숨었던 꿈들이 서성이며 꿈틀거렸다. 여러 번의 낙방으로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절차탁마의 노력으로 끊임없이 퇴고한 윤장대. 이번 당선은 평생 동안 시 쓸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에 한 치의 부족함이 없다.
신춘문예 당선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일궈낸 열매가 결단코 아니다. 마음의 깊은 은혜와 동시에 빚을 진 분들이 많다. 시에 입문해서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가르침을 주고 너무나 일찍 우리 곁을 떠나신 고(故) 송수권 교수님을 비롯해 주저앉은 손을 잡아주며 섬세한 퇴고를 가르쳐주신 감태준 교수님, 수업시간 열강과 용기로 힘을 북돋아주신 광주보건대 사회교육원 정윤천 교수님, 새벽마다 메일로 시를 확인하며 희망을 심어주신 한국동시문학회 회장 이준섭 은사님 등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부모님의 쾌유를 간절하게 빌며 늘 저를 응원해준 남편과 우리 가족들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내 시에 마음 내어주신 심사위원과 불교신문사에 큰 감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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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불교정서·고의조차 벗어던져 신인답지 않은 맵시 녹아있어
예선으로 온 시조들은 희귀하다. 단 한편 ‘밤비’가 평시조의 율격을 그런대로 지켜냈으나 내용은 안이하다. 시조가 시보다 성공하기 더 어려운가. 아니 시와 시조는 다 함께 손쉬운 표현형식이 아니다. 시 쪽의 대부분은 서술의 엉성한 나열이 눈살을 짓게 한다. 현실의 어느 관점이나 이미지에 대한 성실한 포착이 잘 안 보인다.
좋은 작품에 대한 애초의 기대는 작품 하나하나를 살피는 동안 그 기대의 높이가 낮아진다. 설레는 마음이 목마른 마음으로 바뀐다. 신춘문예란 한 해의 수확 가운데서 어떤 기념의 의미를 찾아내는 일과 새로운 해를 앞두고 어떤 삶의 각성을 내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격려도 위로도 인사치레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낙선된 작품도 다시 쓰기를 통해 훨씬 우수한 작품이 될 수 있음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번 당선작은 첫 눈에 정해졌는데 ‘윤장대’가 그것이다. 신인답지 않은 유려한 묘미를 터득하고 있어서 창작의 연륜을 짐작케 한다.불교신문 신춘문예라는 특수성에 호응하는 불교적 정서를 담는 고의조차 냉큼 벗어나고 있다. 시의 맵시가 녹아있다. 앞으로 다른 작품들도 이만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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