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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광고지(發狂高地) / 서윤후

 

 

버려진 산소호흡기를 핥다가

어린 고양이 입김 서리는 것을 본다

 

무언가 닦아내면 어떤 것이 사라질 것만 같다

이를 모든 것이라고 부르는 아른거림만이

유일한 궁금증

 

, 또 지리멸렬한 날씨

 

무너진 성곽이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

잘 닦아놓은 미래가 있었다

모두가 돌아오게 되는 반환점으로

숨 쉬는 것을 가여워하게 되는 전개를 펼치고

그 사이사이의 안개

 

오리무중의 발진이다

 

창광하는 밤벌레들처럼 거리로 나온

아침 인간의 얼굴을 구경한다

전망할 수 없는 표정들에 휩싸여 있으면

어린 고양이의 숨 같은 건 별로 중요해지지 않는다

 

, 또 어두워지려는 심장

 

들리지 않는 것을 어둡게 하면

꿈 밖으로 나와 소리치는 빛

환호는 환희의 별미라도 되는 듯이

인간을 재주넘는 (영혼, 마음 다음에 생각나는 것)의 취미활동

 

무덤가의 구구절절한 침묵을 듣는다

이곳 사랑은 절판된 기억으로 세워져 있다

그들은 모두 옛사람 같다

세련된 스카프를 해도, 영어로 된 개 이름을 불러도

 

죽음이 신간처럼 여전히 새롭다는 사실은

새로울 게 없다

푯말의 역사를 읽는다든지

소문이 눈앞 미래로 유인한다든지 하는

 

장례식장에 막 납품된 수육의 뜨거운 김

아무도 배고프지 않은 곳에서 해치워나가게 되는

 

무엇이 신비로운 감옥을 짓는가

그 안에서 알고 싶어 하게 된 것은 무엇인가

 

, 또 아름답기 위해 사라지는 것들

어제 입었던 옷을 입는다

이변이 없는 한 오늘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다

몇 개의 부음을 화면에서 쓸어 넘긴다

 

열몇 개 와이파이 중에

비밀번호 들어맞는 게 없다

매일 두절되어도 끝나지 않는 것이 있어

 

가장 어두움 중에 가장 어둡지 않은

그런 머리색을 가진 학생이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전속력으로 달려 나간다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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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아마도 이 글을 단정하게 써내려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지 않을 것이며, 기쁨도 슬픔도 모두 공평하게 나눠 갖게 될 것입니다.

 

서윤후는 저의 필명입니다. 이제는 누군가 필명을 불러도 자연스럽게 뒤돌아보게 됩니다. 이 이름이 새롭게 각인된 몸, 영혼, 마음은 이제 이름을 받아들였습니다. 고지서에 적힌 이름, 예비군 훈련 통지서에 적힌 이름, 은행원이 집배원이 오랜 동창이 불러주는 이름과는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번 박인환문학상은 저의 새 이름을 각별하게 불러준 일입니다. 저는 뒤돌아보고 있으며, 지금은 멀리 오지 않았지만 갈 길을 어림잡아보는 머쓱한 뒤통수입니다.

 

처음 다니게 된 회사를 그만둘 때, 저는 사장에게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엽서를 사직서 대신 제출했습니다. “시를 쓰고 싶습니다. 제 글을 쓸 시간이 필요해서 떠나고 싶습니다. 그 마음을 오래 두고 보았는데 변하지 않아 이렇게 엽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좋은 핑계였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생활 전선에서 한 달을 벌어 한 달을 쓰는 일은 각박했습니다. 나에 대한 호기심을 짓이기는 일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돌보지 못한 채로, 살고 있는 집과 매 끼니 걱정과 사소한 선물과 빚지지 않는 일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육체에겐 꽤 괜찮은 일이었으나, 영혼이 있다면…… 인간이 영혼을 꿈꿀 수 있다면 아마도 그때의 제 선택은 옳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어디에서나 시를 생각하고, 시를 씁니다. 내가 느끼는 것을 다시 궁금해 하고, 내가 포장한 것을 애써 벗기면서 오늘 도착한 나를, 오늘 도착한 나로 두지 않습니다. 내가 편안해지는 것이 두렵습니다. 마음은 끝없이 충돌을 빚습니다. 그 충돌을 지켜보는 일을 잘 하고 싶습니다.

 

이번 상으로 저는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저는 저의 약점이나 나약함을 무거운 것으로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사라졌다고 잠시 착각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부족함에 기나긴 모험을 권하는 뱃사공의 손을 잡고, 끊임없이 노를 저으며 가고 있습니다. 이 강이 여기저기에 뻗쳐 마르지 않게 하는 것은 저의 시를 읽어주는 독자들과 친구들, 가족들, 함께 시를 쓰는 동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선가 스치듯 만나겠지만 끝끝내 자신의 물길을 찾아 떠나갈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계속 가보는 것입니다. 좋은 아득함입니다.

 

시를 쓰고 싶다는 저의 단순한 마음을 벌거벗은 것처럼 창피하게 만드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입니다. 문학이 휘두를 수도 있는 칼과 창을 투구와 방패로 바꾸고 싶습니다. 바깥에는 부러진 화살들이 많고, 아직 날 선 화살들이 남아 있으며, 끊임없이 싸움은 지속되고 악한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약한 사람들의 어둠을 함부로 인용하며 살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의 눈먼 창문을 잠깐 두드리며 기다리는 일을 하겠습니다.

 

저의 용기를 기꺼이 받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시현실에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계속 어두워지지 말라고 온 마음으로 먼 곳에서 저의 불씨를 대신 품고 있는 엄마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자주 생각합니다. 천둥벌거숭이의 마음에 늘 형광등처럼 켜져 있는 저의 동생에게 모자란 사랑을 전합니다.

 

저는 그럼에도 계속 쓰겠지요. 쓰면서 천천히 허물게 되는 것들, 이로써 견고해지는 것들을 살피겠습니다. 부상당한 인간들이 병원에서 되돌아 나와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모를 때, 꺼내주고 싶은 것을 가슴 안쪽에서 쓰고 있겠습니다. 언젠가의 슬픔이 오늘의 반듯함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내일엔 다시 망설임이 되겠지만요. 헤매는 동안 제 이름을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무겁게 안겠습니다.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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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거쳐 심사위원들에게 제출된 응모작은 5인의 작품 총 51편이었다. 일반적인 문학상의 진행 방식과 달리 이번 박인환 문학상은 공모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때문에 심사위원들 역시 저자에 대해 아무런 정보 없이 원고만 받아서 심사를 진행했다. 공모 형식 탓인지 본심에 오른 다섯 명 가운데 대부분이 젊은 시인들임은 작품을 읽으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으며, 얼굴을 맞대고 앉은 자리에서 심사위원들의 의견은 순식간에 두 사람에게로 모아졌다. 서윤후 시인과 이혜미 시인이 그들이다.

 

두 사람 모두 개성적인 스타일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시인이므로 누가 수상자로 결정되어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물론 세밀하게 읽으면 두 사람의 시적 문법에 작지 않은 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혜미의 시가 행과 행, 연과 연 사이의 연속과 단절을 이미지를 통해 변주하는 스타일이라면, 서윤후의 시는 진술과 이미지를 불연속적으로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그것들 간의 긴장관계에서 하나의 세계가 드러나는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은 대체로 이혜미의 시가 안정감을 획득하면서도 새로운 어법을 지녔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서윤후의 시에 대해서는 익숙한 진술 방식이 아니라 낯선 이미지들의 병치를 통해 세대적 감각을 드러낸다는 평가를 내렸다. 굳이 나누자면 이혜미의 시에서는 구심력이, 서윤후의 시에서는 원심력이 조금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우면서도 매혹적인 자기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시인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었으나, 낯선 시 쓰기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음에도 읽는 이의 감각을 사로잡는 이미지의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흔쾌히 서윤후 시인을 제19회 수상자로 결정하게 되었다.

 

시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문학상에는 항상 문학적 경향성 논란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많은 문학상들이 저마다의 지향과 심사 방향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초심을 지키지 못하는 까닭은 시인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19회 박인환 문학상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들 또한 이러한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박인환이라는 이름은 우리 시사(詩史)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 것일까? 굳이 밝히자면 이번 심사위원들은 박인환이라는 이름을 낯설고 도발적인 언어가 남긴 시의 힘이라는 맥락에서 읽은 듯하다. 시에서 언어와 이미지가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을 터. 수상자로 선정된 서윤후 시인의 문운(文運)을 기원한다.

 

심사위원 : 김기택(시인), 고봉준 (평론가, ), 김윤정(평론가)

 

 

 

 

휴가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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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전문지 시현실(발행인 원탁희)은 제19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자로 서윤후(29) 시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서윤후 시인은 명지대학교 문창학과를 졸업 2009년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어느 누구의 모든 동행]이 있다.

 

이번 박인환문학상 수상작품은 발광고지(發狂高地)이다.

 

박인환문학상은 30세에 요절한 천재적 작가 박인환 시인의 문학정신을 높이 선양하고 후진 발굴 양성을 위해 시전문지 시현실이 1999년 제정한 문학상이다.

 

박인환문학상은 젊은 시인들이 명예롭게 받고 싶어하는 권위있는 문학상으로 해마다 시상하고 있으며 이번 시상식은 11월에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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