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 / 박은형
주남지 왕버들이 연두를 시동 겁니다
넌짓한 마음을 단숨에 뜯어내는 승냥이 떼 같습니다
늦으면 늦은 대로 연두를 따라붙으려
두툼하게 녹이 난 슬픔이나
생애 첫 연서의 무용한 형식에 대해 고심합니다
일몰의 긴 회랑이라면 눈부신 졸음
폐역의 늦은 당신이라면 단팥죽 한 그릇
빈 식탁이라면 먼지를 보여 주는 흑백 한 문장
다발로 묶어 연두를 실어 갈 당나귀 어디 없을까요
당신과 나의 담장에도 뭉개질 만큼만 놓아기르기로 해요
연두가 그저 몇 걸음의 눈 배웅에 관여하는 거라면
나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해서 꼭 살겠습니다
전승된다면 사랑
죽음이라면 끄덕끄덕 자장가까지
저수지 너른 고독에 찔려 신접의 병상처럼 에는 것
내 마음을 따라잡는 연두였다고 중얼거립니다
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맴맴’ 매미들이 합창하는 이맘때면, 우리지역 시인들에게 초유의 관심사가 되는 상이 있다. 올해로 17회를 맞는 김달진창원문학상이다. 경남 출신 또는 거주 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상은 구체적 지역가치의 실천과 전망을 제시해 주는 문학에 대한 격려와 선양을 취지로 기성·신인 제한 없이 매년 개최되고 있다. 상금이 1000만원으로 큰 데다 역대 수상자들이 걸출해 여러 문인들이 탐내는 상으로 평가받는다.
2021년 제17회 김달진창원문학상의 영예는 창원에서 활동하는 박은형(사진) 시인에게 돌아갔다. 수상 시집은 ‘흑백 한 문장’(파란.·2020년)이다. 박은형 시인은 2000년 ‘경남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에서 황선하 시인의 가르침을 받은 박 시인은 경남여류문학 회원으로 활동하며 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2013년 문예지 ‘애지’ 신인상으로 재등단한 시인은 식물의 생명력을 지닌 시를 짓고 있다. 특히 이번 수상이 눈에 띄는 점은 첫 시집으로 수상했다는 점이다.
심사를 맡은 이숭원 문학평론가와 배한봉 시인, 장만호 시인은 심사평에서 “수상작은 섬세한 감각과 시선의 참신함이 돋보였다. 또 시에 대한 깊은 고민과 경험을 오래 삭혀 성실하게 자기만의 언어로 만들어내는 역량을 높게 평가했다. 시적 지평의 확대를 위해 긴 시간 고투해온 점도 높이 평가했다”고 평했다.
동이 트지 않은 강가에서 여자가 디아를 내민다// 속눈썹이 가장 깨끗할 때의 갓 난 잠을 껴안고/터지지 않는 천둥 장전한 눈매를 건넨다// 나는 이 어린것에게 무엇을 해도 될까요?// 젖은 캥거루같이 강가를 헤매는 몸피에/모성과 가난의 중력을 압정처럼 박은 여자는// 꽃불을 들고 세상의 가파른 기도를 대변한다 -(‘디아’ 일부)
박은형 시인은 “크고 너른 손바닥으로 내 시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려주는 것 같아 무한 기쁘면서도 한편 더 나은 시를 써야 한다는 책임감에 무거운 마음도 든다. 내 시들은 여타 주변의 식물들에게 빚졌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나무와 풀과 꽃들의 사계를 어정거리다 마주친 푸른 저녁들. 죽음과, 시간과, 고독과, 사랑과, 사람과 슬픔 그리고 존재에 대한 질문들이 식물의 생멸을 좇으며 감각되다가 시가 되곤 했다. 은사이신 고 황선하 선생님과 심사위원, 새로 태어난 삼십삼 년 인연의 이수문학회, 문우들,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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