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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박미숙

 

 

귀신 귀신 저 귀신들 바람에 놀아나는 노랑 분홍 하양 저고리 퀴신들 저고리 앞섶 연신 올라간다 젖가슴 눈부셔 팔은 마냥 하늘로만 쳐들고 뿌리뽑힌 하늘 젖꼭지 핥느라 눈도 코도 퍼렇다 바람이 분다 개울, 바람의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푼다 바위틈 화들짝 놀란 가슴 또 하나 부풀어오른다 부풀어오른다 봄은 바람의 장난감 맑은 앞치마 서둘러 두른 봄비 안하무인 봄바람의 뺨을 때리고 연두빛 치마 끌어 당겨 꽃의 아랫도리를 감싼다 바람은 휘청거리는 다리를 끌어 모아 허둥지둥 새둥지로 숨어든다 빈 둥지 속 은밀한 미소를 사글사글 굴리며 볼 안 가득 휘파람을 모은다 봄은 귀신들의 천국 귀신들의 파장 무도회 귀신들의 저고리 갈가리 찢겨 휘파람 타고 논다 휘파람 소리에 파다닥 새가 날아간다 자전거가 날아간다 자동차가 날아간다 집이 둥실 떠오른다.





[당선소감]

 

시를 보내놓고는 집안에 들어앉아 소설책만 읽었다. 재미있었다. 내게 있어 고통이며 동시에 희열인 시를 잠시 잊으려는 방편이기도 했다. 그렇게 겨울잠을 자듯 엎드려 있다가 봄이 되면 그리운 친구를 만나듯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를 만나리라 마음먹었다.

당선전화를 받고는 한동안 꿈인가 싶었다. 그래서 기뻐해 줄 이들의 얼굴만 떠올린 채 선뜻 소식을 전할 수가 없었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서성대는데 하필이면 더러워진 창문이 눈에 띄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오래도록 창문을 닦았다. 가슴 한가득 푸르름이 안겨왔다.

하늘은 언제 보아도 시들지 않은 싱싱함으로 내게 다가온다. 살면서 덕지덕지 마치 제 살인 양 들러붙은 찌든 때를 벗고 원시의 동굴로 돌아가 하늘 닮은 시를 낳고 싶었다.

굳어만 가는 몸의 감각들을 끊임없이 깨워 시의 속살을 보여주신 작가콜로퀴엄의 박재열 교수님, 그리고 자신 없어 하는 내게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힘을 실어주신 박미영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이 크다.

오래오래 우정을 나누고 싶은 문우들, 나보다 더 좋아하며 축하해 주실 부모님, 그리고 사랑하는 희언이·희정이에게 오늘의 이 기쁨을 다 주고 싶다.

보일 듯 잡힐 듯 늘 저만큼에서 나를 유혹하는 시를 생각하면 나의 그물은 아직도 너무나 허술하기만 하다. 그런 내게 시의 문을 열어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과 영남일보에 보답하는 길은 좋은 시를 향한 끊임없는 열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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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최종심에 오른 열 한 분의 시편들은 그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이 살펴져서 쉽게 우열이 가름되지 않았다. 이들 응모 시의 전체적인 특징이라면 주제의 진지함과 습작의 깊이가 인상적이라는 것이며, 공통의 과제라면 수사적 과잉을 지적할 수 있겠다. 흔히 신춘문예 응모 시라면 남들보다 더 돋보이게 하려는 일념만으로 지나칠 정도로 수사와 기교에 매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수사적 집착은 결국 장식일 뿐, 좋은 시란 꿰맨 자취도 그 흔적도 나타나지 않는 법이다.

선자(選者)들은 마지막까지 이여명·김희주·이호기·박지현·박미숙씨 등 여러 분의 작품 사이에서 고심을 거듭했다. 이여명씨의 ‘돌 속에는 거북이 살고 있다’는 석공예의 창조성을 묘파하는 활달한 시선과 화법이 느껴졌으나, 다른 응모 시들이 이 작품의 수준을 뒷받침하지 못하였다.

김희주 씨의 ‘파리’는 관찰과 묘사의 끈질김과 수월성을 엿보게 했으나, 역시 한 편만으로는 그의 시적 재능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박지현 씨의 ‘충주 박씨 종갓집’ 등은 설화의 안팎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너무 잡다한 이야기로 행간을 채워서, 그 다변함이 오히려 시의 보폭을 느리게 하고 말았다. 이호기 씨의 ‘끝물 꽃 어머니’ 등은 삶의 간절함을 담아내는 서정적 행간이 아름답게 읽혔다. 그러나 이씨 역시 수사적 과잉으로 시의 파장을 스스로 잠재우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박미숙씨의 응모 작품들은 대상을 집중시키고 고양시키는 시선이 발군이었다. 응모 시편의 고른 수준 또한 선자들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선작으로 뽑힌 ‘봄’은 약동하는 새봄의 기운을 몸 속의 바람으로 불러내고, 그 위에 감각이 감지하는 리듬을 실어, 생명의 약동과 부푼 기대를 시의 탄력으로 제대로 살아나게 하였다. 이만한 기량이라면 앞으로의 작품들도 기다려진다.

- 심사위원 강은교·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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