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뱃사공 / 김면수
갈잎의 노래로 자란 바람이 구름에게로 가 입김을 불면
입김의 무게 만큼 쏟아지는 햇살을 한 올 한 올 모으고
저녁 강가에 산란을 하며 물이 든 노을은
수심 깊은 바다로 가 유년의 추억이 된다
밤이면 낡은 목선에도 훤히 불 드는 전구
그물마다 달과 별과 스무 살 꿈이 싱싱하게 꿈틀거린다
세월은 어머니 이마에 주름진 햇살 눈부시게 그려 놓고
갈잎의 노래로 손을 든다 이제 나는 깨어나는 바람이다
[당선소감]
새벽에게 물어 물어 詩에게로 갔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다시 멀어지던 詩에게서 절망을 느끼고
새벽이면 다시 물어 절망을 주섬주섬 모으고
내 안의 스승처럼 아침 빛 다 새어 들도록 詩에게로 가 눕고…
잠들기 전 내 끝내 내뱉지 못하고 절망이 되어 버린 詩들을 찾고…
당선 소식을 접하고 얼마의 기나긴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몇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이미 지친 몸을 마음이 다독거려주었고
詩 세계로 몰입할 때, 내 이상국은 가까운 곳에 존재함을 보았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사람을 위해 詩를 쓰면서 애인을 사랑했다.
갑자기 싫어진 詩를 보면 애인은 나에게로 와 집 하나 지어 주고
그 안에 세월 그 무엇으로도 퇴색될 수 없는 사랑을 심어 주었다.
詩人이란 천명의 주제로 하여금 좀 더 나은 발전과
매사 성심으로 정진할 수 있는 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애인 문미정에게 사과 반쪽을 나누듯 당선의 영광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순간 펜을 꺾어 갈잎의 노래로만 재우려는 내게 도약할 수 있는
힘과 열정을 보이지 않게 배로 승화시켜준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바람과 뱃사공’ 미학적 성취감 돋보여
1500여 편의 응모작들 가운데서 일차로 40여 편을 고르고 다시 10편, 또 다시 5편을 고르는 방식으로 최종까지 남은 작품은 김면수씨의 <바람과 뱃사공>과 강란숙씨의 <상수리 나무의 우듬지를 보며>였다. 이 두 편은 특별히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으나 시도 예술의 한 분야라는 것을 감안해서 메시지 전달력보다 미학적 성취감이 돋보이는 <바람과 뱃사공>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바람과 뱃사공>은 길이가 매우 짧은 단시이다. 그래서 무언가 크고 난해하고 문제적인 것을 높이 평가하고자 하는 우리 문단의 풍조로 에서는 언뜻 소품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시란 가능하면 짧은 진술에 함축된 철학과 단단한 형상력을 지닐수록 좋다. 그러한 의미에서 당선작은 최근 우리 시단의 유행이라 할, 쓸 데 없는 사변 중심의 신경증적 시에 대해서 충분히 경종을 울릴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햇빛처럼 반짝거리는 감각적 이미저리, 잘 짜여진 구성력, 하나도 흐트러짐 없는 언어의 조사, 참신한 상상력이 하나로 결집되어 이루어진 참으로 보석같은 작품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마지막 시행의 ‘이제 나는 깨어난 바람이다’와 같은 시행은 인생에 대한 시인의 내적 성찰이 예리하게 드러나 있다.
<상수리나무의 우듬지를 보며> 역시 한편의 시로서 나무랄 데가 없는 작품이다. 생활에서 발견한 시인의 인생론적 진실이 감동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을 높이 샀다. 그러나 형상력에서 다소 미흡하고 신인으로서의 패기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고로 최후선까지 오른 분들의 작품으로는 강현자씨의 <종발자국>, 주영국씨의 <아내의 푸른 손>등이 있었다.
심사위원 김종해 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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