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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보리굴비 / 박찬희
깊은 곳, 동안거에 들 날이 가까워지면 옆구리가 가려웠다
수년을 가로거침 없던 길 없는 길이 아른거리기만 하고
바싹 말라버린 감정이 압착된 채 눌어붙어 겉보리 색깔이다
꼬아 내린 새끼줄이 미명을 건져 올리는 때마다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억, 잊은 물질의 기법을 유추해
켜켜이 돋워 꿰면 아가미에서 배어 나오는 소금기
바람이 낙관을 찍고 갈 때마다 입술이 들썩거리고
항아리 깊은 속에서 오장육부를 비워내면
아가미를 통해 내통하는 바다와 육지
숨이 찬 시절이 건조되는 동안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흘러 빠져나가는 너울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음께를 바람이 변주하면
뭉툭하던 허리를 조여 맨 상처가 껍데기에서 바삭거린다
잠이 깰 때 아무 느낌이 없게 될지도 모르는 귓속말을
차곡차곡 채우면
봄 건너 가을에 이른 연록의 찻잎이 움 트는 게 보이고
긴 호흡으로 너른 바다를 마시고 뱉던 간절기의 촉감이
비워낸 속에 사분사분 채워진다
무뚝뚝한 등대의 시선이 흘리고 간 은빛 주단 위를
미끈하게 흐르다 누워 동경했던 뭍을
응달을 비집고 든 볕에 기대어 다시 찍어내는
데칼코마니
오랜 기억이 바람에 말라가면
허공에 박제되는 바다의 냄새
동안거를 마친 날엔 점점이 찢겨도 좋다며
그만큼 찢긴 바다가 청보리밭을 덮는
그 하나로 가뿐해지는 몸이
시간의 변곡점 속으로 너끈히 헤엄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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