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미더덕 / 남상진

 

 

너는 눈물 한 방울로 태어났다

 

보잘것없는 난생의 몸으로

막막한 물속 세상에서

파도를 견디며 살아내기란

눈물을 제 살 속으로 말아 넣는 일

짜디 짠 바닷물을 들이마시고

삼키지도 뱉어내지도 못하고 연명하던 시절

깊은 수심의 물속을 견디는 일은

스스로 빈틈을 여며 단단해지는 것

 

태풍이 몰려와도

바위의 멱살을 부여잡고 버티던 하루가

물속에서 눈물 한 방울로 맺혔을까?

 

누군들 제안에 눈물 자루 하나 키우며 살지 않을까

 

아름답고 붉은 석양은

수면 위만 비추는 멀고 먼 그림 속 세상

 

밀려오는 세파에 온몸으로맞서고

일렁이는 너울에 흔들리며 키워온

단단하고 둥근 집

 

껍질 한 꺼풀 벗겨

입안에 넣고 깨물면

툭!

숙성된 향기가

온몸으로 번지는 너는

깊이 발효된 맛으로

오래된 봉인을 푼다

 

 

 

 

현관문은 블랙홀이다

 

nefing.com

 

 

 

[수상소감]

 

ㅡ시에게ㅡ

어딘가에 꽁꽁 묶여 있다고 여겼습니다
아주 굵은 밧줄을 달고 부동의 자세로 정박해 있던 나를 가위에 눌려 깬 골목에서 낯설게 만나곤 할 때마다 그리 멀지 않은 풍경이 내 안에 들어서지 못하고 스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저 난감한 일이라 여기기엔 묶여있던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젠 놓아야지
이젠 벗어나야지
한 꺼풀 벗고 뱀처럼 매끈하게 가야지
당신의 모습이 목젖에서 맴돌다 삼켜지는 하루
어둠에 꼬리 잡힌 짐승처럼 가르릉 거리던 밤에도
세상은 내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쓰고 지우고 쓰고 버렸습니다

서러울 때마다
입을 꾹 다물고 석축을 쌓듯 당신을 내 안에 쌓았습니다
비 오는 날이나 바람 부는 날에도 당신은 내 안에 가지런히 쌓였습니다
손금보다 더 깊이 처마 끝 풍경소리보다 더 아름답게 나를 에워싼 당신은
나를 두른 완벽한 성입니다
계절을 건너온 바람과 성벽을 휘감아 도는 안개에도 젖지 못한 나는
당신의 색깔로 채색되고 내 안에 나는 없고 당신으로만 가득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젖은 옷을 염려하기보다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시절에도 당신은 거부할 수 없는 또 다른 나이자 심중의 고향이었습니다
고통도 즐거움도 당신을 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부질없어도 당신은 내 안의 고귀한 신이고 종착역입니다
빗방울이 모인 계곡의 물처럼 청량하게 내 안을 흐르는 당신으로 나는 매일매일 젖고 행복합니다
이제 나는 당신을 벗어날 수도 쏟아 낼 수도 없습니다
아름다운 계곡에 뿌리내린 자귀나무 꽃술처럼 당신을 가꾸어 가겠습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당신 속으로 더 깊이 나를 밀어 넣을 것입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당신을 기도 할 것입니다
나를 어루만져 주는 당신 품 안에서 평화를 이루겠습니다
내게 남은 시간
당신을 더 섬세하게 섬기며 살겠습니다
손 등에 돋아난 솜털처럼 내 안에 뿌리 박힌 당신을
영원히 가꾸며 살아가겠습니다

일어서야지
떨치고 일어서야지
부질없는 이승의 티끌을 잡고 당기는
아둔한 줄다리기의 시간들
이젠 놓고 바람처럼 매끈하게 가야지
몇 천 겁을 걸어도 닿지 못할 고향이 내 안에 있었구나
한 뼘도 되지 않는 내 안의 우주를
왜 여태 모르고 살았나
잘 살펴라
눈을 크게 떠서
고도 없고 애도 없는 집에서 넌출넌출 살아가기를
이 새벽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부디 바람의 대 자유를 그대 안에 들이소서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 당신의 우주에 들 시간입니다
부디,
다시 평화롭기를

코로나 19로 인해 지친 심성으로 모두가 어두운 한낮입니다.
부디 힘내시고
보잘것없는 시를 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의 품에서 더 열심히 놀고 아파하라는 격려로 알겠습니다.
시 앞에 더 바짝 엎드리겠습니다.

 

 

 

 

철의 시대 이야기

 

nefing.com

 

 

 

[심사평]

 

2020년이 참으로 잔인하게 지나가고 있다. 코로나19, 폭우, 태풍 삼중고에 일상이 무너지고 경제는 물론 사회전반에 걸친 일반적인 행동이 제약을 받았고, 문화생활의 범위는 더 좁아졌다. 이러한 사실이 내 년, 아니면 내 후년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에 앞이 더 아득하기만 하다. 벌써부터 코로나 이후의 경제와 문화를 걱정하는 학자들이 예측을 하거나 대책을 연구하기도 하는 것 같다.

 

어려운 시대나 시기일수록 시는 희망과 극복의 메시지로 역할을 다하여 왔고 또 그렇게 쓰면서 시인들 또한 버텨왔다. 그래서 애지문학회에서도 그간 쓴 좋은 작품을 모아 애지작품상을 심사하여 코로나19에 지친 독자들이나 회원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다. 올해는 코로나19 여건으로 운영위원들이 모임을 갖지 못하고 온라인 상으로 예심에서 올라온 10여 편을 두고 최종 후보작 3편을 선정하였다. 남상진 시인의 「미더덕」과 최혜옥 시인의 「블랙 스완」 그리고 유계자 시인의 「붉은 맨드라미 아래」가 바로 그 해당 작품들이다. 공교롭게도 3편 모두가 올해 발간한 애지사화집에 수록된 작품들이다. 세 작품이 모두 작품성이 뛰어나 투표를 해준 회원들이 조금은 고민했을 법도 하다.

 

이번에 올라온 후보작품들은 사물에 대한 비유나 이미지를 갖고 시적자아를 확장해나가는 방식이 담대하고 진정성이 뚜렷해서 선자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았으리라고 본다. 9월 7일부터 21일까지 2주간 회원들의 투표를 마친 가운데, 박빙의 차이로 2020년 제7회 애지작품상은 남상진 시인의 「미더덕」에게로 돌아갔다. 남상진 시인은 2014년 애지로 등단하여 첫 시집 『현관문은 블랙홀이다』와 두 번째 시집 『철의 시대 이야기』를 상재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는 단점보다는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시인인 듯하다. 그의 시세계는 어느 한 곳에 편향되어 있지 않고 다양성에 대한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 예를 들면 「맹그로브」에서는 요양병원 복도를 걷는 맹그로브 뿌리같이 수척한 아버지를, 「사막의 내력」에서는 사막과 아내라는 교집합에서 서걱거리고 건조한 발자국의 아내를, 그리고 애지작품상에 오른 「미더덕」 또한 “미더덕”을 통해 드러내는 신산한 삶에 대한 껍질을 발효된 맛으로 풀어내는 것 또한 사물을 대하는 다양성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너는 눈물 한 방울로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첫 행은 이 시의 서론이자 결론이다. 도저하고 강인한 결론을 지어놓고 그 결론을 풀어가는 그만의 시적태도가 사뭇 진지하고 단단해 보인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다양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사물에 대한 분별력을 잃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다양성의 상실 이유는 감각이 획일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시인들뿐만 아니라 남상진 시인도 마찬가지로 감각이 획일화되는 것을 경계하여 독자들의 감성을 무미건조하게 만들고 왜곡시키는 것을 경계하길 바란다. 최종 후보작에 올라 좋은 작품으로 선전을 해주신 최혜옥 시인과 유계자 시인에게도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아울러 지난 4년간 저를 믿고 따라주신 애지문학회 회원 여러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심사위원 일동(심사평 회장 권혁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