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만유인력 / 양승수

 

 

한 알의 사과가 저문다

잘 여문 것 좇아 줄기와 가지 따라

억지로 삼키던 몇 모금의 물 따라

바쁘게 걸어온 길에서 폴짝 뛰어오른다

느껴지지 않던 중력이 어느 순간 무거워져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날아오르는 것이다

떨어질 때가 된 사과는 서서히 붉어지는 것이고

떨어지고 난 사과가 여전히 싱싱한 것은

사라지지 않은 관성, 따르다 남은 습관 탓이다

사과의 단맛은 그런 식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과를 가졌을까

하루에도 몇 개의 사과가 공중으로 날아오를까

저로부터 최대한 멀리 뻗어

그러나 고작 몇 발자국 사과를 배웅 나갔다가

휘어졌던 가지가 그 탄력으로

복원되는 궤적을 그리며 돌아온다

돌아오는 가지 하나 횡단보도를 건넌다

걸음 재촉하는 신호등

가던 길 멈추고 고개 돌려 옆을 보았다면

중력이 늘 같은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거나

받아들이거나

도로에는 각자 서로 다른 중력으로 달려온 것들

잠시 멈추어 서 있다

그러나 멈추었다는 것을 아는 자동차는 없다

아무도 시동을 끄지 않는다

떨어진 낙과의 단맛 같은 엔진소리

정지선에 닿기 전 이 곳은 공중이다

바람이 지나온 커브길에서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뻗어나간 잎맥의 갈림길 따라

빨아들인 햇빛 같은 후회

꽃 피었다가 졌던 시간 흘러가지 않고 멈춰

오래 서성이던 발자국이었다가

흘러갈 곳 없는 소리들 엉켜있던 것이라 한들

사과를 두고 무슨 오해라 할까

 

 

 

 

[당선소감] "민슬기, 권미양별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아델이라는 영국 가수가 컴백 콘서트를 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닌가싶었다고 한다. 너에게서 내가 모르던 나를 발견하고 너의 상처가 나의 용기가 되고 너의 용기가 나의 기쁨이 되고 네가 지나친 너를 귀띔해준다. 너로 하여 시간이 휘고 거리도 사라진다. 우리는 우리를 먹이로 먹고 사는 종족인가. 어떤 슬픔으로 벌어진 입은 잘 닫히지 않는다. 입맛을 쩍쩍 다시며 어쩌면 영원히 닫히지 않는다. 우리는 그 벌어진 입을 그곳에 버려두고 다른 입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벌어진 채 버려진 입에 와 닿는 것들의 맛을 느끼게 된다. 아니 그보다 벌어진 입들이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달고 걸어간다. 도망치려고 뛰어가면 그 소리가 더 커진다.

 

살금살금우리가 하나의 영혼을 공유하던 때가 언제였을까. 그 사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기를 읊조린다. 내 상처에 아무리 약을 발라도 낫지 않던 것이 너의 상처를 어루만져 나아가는 임상을 겪으며 어디가 상처였는지 깨닫게 되기를 밤 하늘에 흩뿌려본다. 알 수 없음과 실패라는 축복까지. 나는 기억하지 못해도 별은 기억해주리라. 어둠은 속삭여 주리라.

 

별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내 친구 민슬기 뚜벅뚜벅 권미양 김병용 모스부호 노치성 김희섭 김경수 신애영 박경만 환한 서영채 최두섭 임철우 최수철 주인석 높은 먼먼 나희덕 안도현 박남준 복효근 이희중 가파른 장창영 한정화 최기우 미소 짓는 김의수 뜨끈한 전성진 섬세한 꾸준한 튼튼한 함한희 이정덕 예리한 윤중강 조명환 멋진 박윤지 빛나는 별들을 올려다본다. 맑은 비스듬한 화사한 포근한 숯검댕이 먹먹한 그렁그렁한 무던한 칼칼한 글썽글썽한 부르지 않아도 서운타 않을 빛이 빚임을 안다. 길이 아직 식지 않았다.

 

 

 

 

떠리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뉴튼 사과와 이 시대 일상 적절한 시적 거리로 밀당

 

시는 언어예술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언어가 박제된 문장으로만 남아서는 시가 되지 않는다. 언어는 화자의, 그리고 시인의 목소리가 실린 ''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말이 살아 독자를 향해 나아갈 수 있고, 독자의 시가 될 수 있다. 시는 언제나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것이지만, 시인이 되고자 꿈꾼다는 것은 또 언제나 이 언어와 말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 사람의 새 시인을 찾기 위해 1,000편이 넘는 응모작을 만났다. 코로나시대의 불안증이 시 쓰기에도 가위 누르기를 한 까닭일까, 전반적으로 활기차고 패기 넘친 작품보다는 사색적이고 관조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또 상투적인 언어와 생경한 이미지의 나열로 인해 박제화 되어버렸거나, 최소한의 형상화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기억과 일상을 그대로 진술하고 있는 응모작도 적지 않았다. 이들을 일차 걸러낸 후 남은 작품들을 다시 꼼꼼히 읽었다.

 

심사자의 감식안을 시험한 응모작에는 오랜 숙련의 흔적이 뚜렷하게 보이는 작품도 있고, 새로운 감각으로 세상을 읽어낸 작품도 있었다. 홍여니의 를리외르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책 제본 과정에 빗대어 쓴 작품이었다. 그 상상력이 흥미로웠지만 묘사와 진술을 중첩시킨 어법에서 몇 군데 억지스러운 이미지가 정서적 몰입을 약화시킨 측면이 있었다. 고경자의 끈의 방식은 직장인의 삶의 방식과 애환을 진솔하게 담아내면서 체험과 사유를 잘 조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마무리 부분에서 시적 긴장이 유지되지 못한 채 느슨하게 풀려버린 아쉬움이 남았다.

 

마지막까지 심사자의 손에 남은 응모작은 최형만의 새들의 삽화와 양승수의 만유인력이었다. 두 작품 모두 당선작으로 삼아 무방할 시품을 갖추고 있었다. 새들의 삽화는 언어를 다루고 시상을 직조하는 능력이 대단히 숙련되고 단단하였다. 굳이 흠을 잡자면 그 단단함 때문에 오히려 신인으로서의 활달함이 덜 느껴졌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만유인력을 당선작으로 선하였다. 거기에는 인간 존재의 무게와 삶의 부피를 응축시키는 상상력의 힘이 있었다. 뉴튼의 '사과'와 이 시대의 '일상'이 적절한 시적 거리로 밀고 당기고 있었다. 특히 꽤나 긴 호흡으로 끌고 간 작품인데도 끝까지 시상에 흐트러짐이 없었다는 점이 앞으로의 시적 성취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였다. 당선인에게는 축하를 드리며, 아깝게 선택되지 못한 분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심사위원 김동근(전남대 국문과 교수)

 
 
728x90

 

 

붕어빵 안에는 배고픈 고래가 산다 / 조효복

 

 

아이의 웃음에선 생밀가루 냄새가 났다

접시 위에 수북이 담긴 고기를 자랑하는 아이

가쁜 숨을 내쉬며 조그마한 얼굴이 웃는다

콧등을 타고 오른 비음이 아동센터를 울린다

해를 등지고 앉은 언니는 아빠를 닮았다

그늘진 탁자에는 표류 중이던 목조선 냄새가 비릿하게 스친다

구운 생선을 쌓아두고 살을 발라낸다

분리된 가시가 외로움을 부추긴 친구들 같아 목안이 따끔거린다

흰 밥 위에 간장을 붓고 또 붓는다

짜디짠 바람이 입 안에 흥건하다

훔쳐 먹다 만 문어다리가 납작 엎드린 오후

건너편 집 아이가 회초리를 견딘다

튀어나온 등뼈가 쓰리지만 엄마는 버려지지 않는다

매일 다른 가족이 일기 속에 산다

레이스치마를 입은 아이가 돈다

까만 유치幼齒를 드러낸 아이가 수틀을 벗어난 실처럼 돌고 있다

귀퉁이를 벗어난 아이들이 둘레를 갖고 색색으로 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뱃구레 속에 고래가 산다

골목은 높낮이가 다른 파동들이 그려놓은 바다 놀이터

제자리가 두려워 아래로만 내달리는 모난 고래들

풍덩 골목 아래로 제 몸을 던진다

가라앉은 먼지위로 고래가 헤엄친다

팥물 묻은 고래 비탈을 구른다

천막 아래 등이 굽은 엄마가 붕어빵을 굽는다

 

 

 

 

[당선소감] '시작'이라는 언어의 무게 가늠

 

추워진 날씨에 눈이 올 것만 같은 날. 가르치던 아이들의 그림 전시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점검 중에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 놀라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전시장을 서성거렸습니다. 그림들이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액자 없이 나란히 걸린 아이들의 그림이 더 정겨워집니다. 낯선 공간에서 처음 만난 그림들은 서로 스며들어 이야기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용한 전시장 안은 수런거리며 끝나지 않을 동화와 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림 속엔 부족하고 아팠지만 다정하고 따뜻했던 어린 시절의 저와 친구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소외된 곳의 아이들을 만나면서 좀 더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림 안에서 만나 서로 밑그림이 되기도 하고 덧칠이 되어 다독였던 시간들. 그런 시간들이 시가 되어 안겼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빈 손 안에 언어의 온기를 소중히 담아내겠습니다. '시작'이라는 언어의 무게를 다시 가늠 해 봅니다. 끊임없이 질문하며 쓰겠습니다.

 

사물을 보는 통찰력과 명징한 언어의 결을 일깨워주신 조정인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코로나 시기에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부모님께 당선 소식을 알리게 되어 기쁩니다. 한결같은 자세로 시 쓰는 일에 매진하라고 격려해 주신 계간 '시로여는세상'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수요문학회문우들, 곁에서 묵묵히 응원을 해 주신 김성병 씨와 아들 도연, 재연, 형제들과 이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시 앞에 설 수 있도록 튼튼한 다리를 놓아 주신 무등일보사 관계자님들과 저의 어눌한 언어의 손을 잡아 주신 노철 심사위원 선생님께 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정진하겠습니다.

 

 

 

 

떠리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상처와 희망 공존 진실 통찰의 힘 돋보여

 

전국에서 응모한 1천100여편이 넘는 시를 읽으면서 삶과 진솔하게 맞서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과거의 회고에 치우치거나 르포처럼 서술된 작품이 많았다. 지금 여기의 삶과 마주하는 긴장이 아쉬웠다. 또 다른 경향은 상상력을 발휘했지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시어가 모호한 경우다. 바꾸어 말하면 시어가 모호한 것은 창작자의 생각과 감정이 정확하지 않거나 지나치게 수사를 따라갈 때 발생한다. 시의 언어는 모호한 것이 아니라 적확하다는 기본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어를 정확하게 구사하는 작품이 기대보다 적었다. 이 가운데서 시어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여백 속에서 정서와 의미를 생성하는 시의 본디를 갖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고민한 끝에 조효복의 '붕어빵 안에는 배고픈 고래가 산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이 작품은 삶의 굴곡을 상상력을 통해 묘사하면서도 상처와 희망이 공존하는 진실을 통찰하는 힘이 있다. 궁핍이 가져온 상처를 그리면서도 상처를 넘어서는 순수한 삶의 활달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실을 참신한 감각으로 묘사하면서 입체적으로 조형하는 능력을 갖추어 앞으로 창작될 시를 기다리게 한다.

 

아쉽게 당선작이 되지 못한 이미영의 '디스코 팡팡'도 활달한 언어로 사실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힘이 있었다. 다만 시 세계가 사실을 넘어서는 삶으로 확장하는 진폭을 늘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 다른 작품으로 노수옥의 '감당'은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통해 삶의 진실을 포착하고 있었으나 마무리가 아쉬움을 주었고, 김태훈의 '애인의 애인'은 감각적 묘사력이 돋보였으나 언어를 꽉 채우다보니 주제가 뚜렷하게 전경화 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김영의 '뼈를 추리는 바람'은 사물에 인간의 심성을 부여하는 감수성을 갖추었으나 군데군데 수사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당선작을 포함한 위 작품들은 감수성과 언어를 다루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어 시인으로서 태도를 갖추었다. 모두가 꾸준하게 창작할 때 신진 시인으로서 빛을 발휘하리라는 믿는다. 하나 덧붙이자면 답답하고 때로는 울분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시대에 당대의 시인으로 독자들에게 예리한 충고와 따뜻한 위로를 주는 위의를 세워주길 바란다.

 

심사위원 노철 전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728x90

 

 

나의 나침판 / 하미정

 

 

풀잎하고 부르면 화살표가 나옵니다 당신이라는 낭떠러지는

나를 늘 그런 곳으로 이끌어 세웁니다

 

잠시 방위를 빌려보기로 하자 방향에 굴하지 않고

유연하게 나아가는 선택의 길에서 나는 늘 진로를 망설였고

우리의 목표는 정말 높고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후 3시가 목표라면 그 안을 보는 일에

그는 늘 바깥 방향을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한번은 밀어내고 한번은 끌어당긴다

자성 강한 잡념들도 나의 몸이 끌어당긴다

누군가를 밀어내면서 누군가의 어둠을 끌어안는다

어둠의 강한 자성에 내 방은 결국 자력을 잃었고

나는 그의 자기장에서 일 년을 붙어살았다

 

기울어진 힘점이 있다

나는 하루에 한 번 넘어지며 균형을 잃는다

힘점에서 나를 빼냈다 공평함이 사라졌다

힘점에서 기울어진다는 건

누군가를 믿지 못한다는 증거

 

복잡한 머리를 용서하면

나의 좌표는 간결해질 수 있다

여행은 마음의 풍경을 향해 가는 것

저녁의 산책이 걸음을 이해할 때

나침판은 내 가슴에 와 박힌다

 

 

 

 

[당선소감] “끝없는 탐색·질문…앞으로의 길 모색”

 

시를 쓴다는 것은 자발적 괴로움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타인에 의한 것이라면 차라리 덜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한없는 기다림과 초조함 속에서 당선통보를 받았습니다.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함께 기뻐해줄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저를 응원해 주고 행운을 빌어 주었던 분들이 있었기에 이런 행운이 온 것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무작정 책을 읽었고, 책속을 끝없이 방황하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젠 이 길을 가야지 하고 다짐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소란과 어둠 속에서 외톨이가 되어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였습니다. 이젠 더 이상 늦기 전에 이 길을 흔들리지 말고 가기로 했습니다.

 

이런 영감과 희망을 주었던 김영남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확실한 나침판을 찾았으니 더 많이 탐색하고 질문하며 가려던 길을 가겠습니다. 그간 나의 시야를 가렸던 안개는 사라질 것입니다.

 

영원한 나의 반쪽, 시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용기를 주고 응원해준 상정씨!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시를 쓴다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해도 스스로 씩씩한 모습이 되어준 희주와 성현, 고맙고 사랑해.

 

제 시를 뽑아주신 노철 선생님과 무등일보사에도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맛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내면 진술하면서 객관화 신진으로서 패기 엿보여"

 

전국 각지에서 응모한 1천여 편의 시를 읽어가면서 독자를 사로잡는 시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기존 시의 발상과 소재를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 많았다. 어디서 읽은 발상과 소재를 반복하는 것으로는 신진시인으로서 자격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또 하나 주목되는 현상은 내면의식을 서사화 하는 산문적 경향이다. 최근 유행을 따라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적확한 형식인지 찬찬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언어를 끌고 가는 힘이 부쳐 호흡이 끊기거나 상상력이 빚어내는 언어의 탄력성을 갖춘 작품이 드물었다.

 

그 가운데 하미정의 ‘나의 나침판’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은 자신의 내면을 진술하면서도 객관화 하는 힘이 주목됐으며, 언어가 수사에 끌려 다니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말을 과감하게 펼치는 점이 신진으로서 패기를 엿볼 수 있었다.

당선작은 아니지만 주목할 만한 작품도 있었다. 한 작품은 언어가 정확하면서도 탄력적인 것이 돋보였으나 마무리가 조금 아쉬웠으며 신진다운 패기가 더 있었으면 싶었다. 또 다른 작품은 발상의 재미가 있었고 언어를 끌고 가는 힘이 상당했으나 가끔 수사가 우세해 상이 흐려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당선작을 포함한 이들 작품들은 모두가 감수성과 더불어 시를 써온 내력이 적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래의 시인으로서 능력을 갖추었다 할 만했다. 다만 꾸준히 시를 쓰다보면 시적 대상의 확장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다 폭넓은 확장을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노철 전남대 교수

 

728x90

 

 

경운기를 부검하다 / 임은주

 


그는 차디찬 쇳덩이로 돌아갔다

움직이지 못할 때의 무게는 더 큰 허공이다

돌발적인 사건을 끌고 온 아침의 얼굴이 쾡하다

피를 묻힌 장갑이 단서를 찾고 일순 열손가락이 긴장한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망치와 드릴이 달려들어

서둘러 몸을 빠져나간 속도를 심문한다

평생 기름밥을 먹은 늙은 부검의 앞에 놓인 식은 몸을


날이 선 늦가을 바람과 졸음이 각을 뜨는 순간,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진흙탕과 좁은 논둑길이 나타난다

 

미궁을 건너온 사인死因에 집중한다

붉게 녹슨 등짝엔 논밭을 뒤집고 들판을 실어 나른

흔적이 보인다 심장충격기에도 반응이 없는 엔진

오랫동안 노동에 시달린 혹사의 흔적이 발견되고


탈, 탈, 탈, 더 털릴 들판도 없이 홀로 2만Km를 달려 온 바퀴엔

갈라진 뒤꿈치의 무늬가 찍혀있다

 

가만히 지나간 시간을 만지면

그 속에 갇힌 울음이 시커멓게 묻어나온다

소의 목에서 흘러나온 선지 같은 기름이 왈칵 쏟아진다

 

임종의 안쪽에는 어느새 검은 멍이 튼튼히 자리 잡았다

길이 간절할 때마다 울음이 작동되지 못하고 툴툴거린 흔적이다

죽어도 사흘 동안 귀는 열려 있다는 말을 꼭 움켜쥔

얼굴의 피멍이 희미한 눈빛부터 쓸어내렸다

 

이제 습골(拾骨)의 시간이다

정든 과수원 나무들이 마지막 악수를 청했는지

뼈마디마다 주저흔이 보인다고 기름 묻은 손이 넌지시 일러주었다.

 

 

 

 

사라진 포도월

 

nefing.com

 

 

 

[당선소감]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뜻밖의 선물"

 

덧없는 희망과 함께 성탄절을 흘려보내고,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는 시기에 전화선을 타고 달려온 맑은 목소리와 또 한번의 과분한 칭찬에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 뻔 했습니다. 당선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포식자를 피해 십 수 년을 기다리다 나온다는 주기성 매미의 울음으로 오랫동안 기다리던 순간이었습니다.

 

처음의 시는 아버지와 함께 왔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농촌에서 밀려나 한쪽 구석에 나무토막처럼 버려진 경운기의 풍경과 농사일로 고생하던 아버지의 주름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마당 한쪽에 버려진 경운기가 불쑥 따뜻한 손을 내밀었습니다.

 

하늘에서 지켜보시는 부모님 같아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이 당선이라는 선물을 저 허공을 유영하는 동박새 한 쌍으로 지나가신 노을 위로 올려드립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제 글이 낙심해서 주저앉아 있을 때 특별히 격려해 주신 박남희 선생님과 동국대 일산캠퍼스 동문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항상 마라톤처럼 쉼 없이 도전하는 월간'시와 표현'의 식구들, 그리고 박무웅 선생님과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늘 지지를 아끼지 않는 가족에게도 기다려 주어서 힘이 되었다는 말을 남깁니다.

 

시는 늘 벗기려 할수록 손톱 밑을 가시로 찔러 피를 내는 밤송이이지만, 햇살 쪽으로 창문을 열어두고, 잘 여물 때까지 키워내겠습니다.

 

끝으로 부족한 글을 많이 칭찬해 주시고 손잡아 주신 무등일보사와 관계자 분들 그리고 고재종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심사평] 시적 진정성 돋보여

 
2019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출품한 시는 총 369명 1426편이었다. 꽤 높은 응모 율이었다. 한데 양적인 투고에 걸맞게 작품들의 수준도 그 감각과 사유, 표현력에 있어서 고투를 보여주는 작품이 많아 기뻤다.

 

세계와 존재의 비밀을 캐고 인식에 충격을 주는 시, 사회의 현안문제들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시, 무엇보다도 삶과 사랑에 대한 여러 감정과 담론을 펼쳐 대며 공명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시들에 가슴이 먹먹했다.

 

이 중 시적 표현력의 진수를 보여준 '몰골'의 김길전, 화려한 상상력을 가진 '지느러미 떼라피'의 김휼, 인생 이해의 감각적 진술이 돋보이는 '붉은'의 최재영, 그리고 서정과 인식, 공감 그 어느 것에서든 자유로운 '그 그림은 아무 것도 낳지 않았다', '경운기를 부검하다', '오래된 그릇'의 임은주가 최종적으로 겨뤘다.

 

여기 네 사람 누구를 당선으로 밀어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다만 김길전은 시 전체의 유기적 통일성 확보에 실패했고, 김휼은 이미지들이 삶에 천착하지 못했으며, 최재영은 잠언 투의 문장이 거슬렸다.

 

결국 위 문제점들을 잘 극복한 임은주로 결정되었는데, 당선작 '경운기를 부검하다'는 어느 날 사고로 박살난 경운기를 수리하며 그 경운기를 운영했을 농부의 죽음을 유추해내는 솜씨가 사유나 감각, 적확한 표현력에 있어 그 재능과 숙련도를 충분히 보여줬다.

 

한데 이 시인의 다른 두 작품이 신춘문예용으로는 더 적합할 것도 같았는데, 나는 시적 진정성이 돋보이는 이 작품을 최종 당선작으로 밀었다.

 

축하드리며 아쉽게 된 김길전, 김휼, 최재영도 금명간에 시인이 될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알려드린다.

 

심사위원 고재종 시인

 

728x90

 

 

수목원 / 전진자

 

 

오월이 세상에 길을 놓고 있다

악보도 없이 나무들이 몸관악기를 연주한다

피톤치드 피톤치드 바람에 추임새가 들린다

방문객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며 들꽃들이 수다를 떤다

당신은 어디서 왔는가

송화가루 음율이 간절하다

나만 빼고 모두 봄이라 한다

시린 생각을 저들에게 들키고 말았을까

내안에 있던 머뭇거림이 슬쩍 빠져나가려 한다

당신은 어디까지 갔는가

오전의 나뭇잎과 오후의 나뭇잎의 태도는 다르다

길어진 만큼 어떤 것은 짧아진다

멧새소리와 멧새소리가 모여 떼울음 이 되려한다

당신도 듣고 있는가

귀를 닫고 눈을 닫아도 길은 더 선명해지고 있다

오월엔 나무들처럼 천천히 걸어와도 좋다

그리움이 잔뜩 우거진 당신의 숲을 향해

 

 

 

 

[당선소감] "엄마를 만나러 가는 과정을 담은 비망록"

 

며칠간 농업연수를 다녀왔다. 익숙지 않은 향신료에 관한 교육을 받으면서 많이 지쳐있었다. 여기저기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문자와 '톡'이 날아왔다. 그러나 나는 자꾸 어딘지 모를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여독이 풀리지 않아 들여다보고 답할 기운조차 없었는데, 그야말로 완전히 방전된 상태였는데 무등일보에서 긴급문자가 왔다. '수목원'의 당선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보고픈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된 듯 한참을 울컥했다.

 

3년 전 엄마 아빠를 1년에 한 분씩 떠나보냈다. 고향 선산에 모시려 했다. 그런데 선산이 국립묘지로 지정되어 법적으로 묘를 만들 수 없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그 선산에 수목을 하기로 결정했다. 생전에 늘 함께 했던 나무들, 새와 곤충, 해와 달, 구름과 바람 그리고 흙과 어우러져 사계절을 호흡하시라고 익숙한 삶의 터전 위에 묻어드렸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수목원'은 창작됐다. 순전히 엄마를 만나러 가는 과정을 시 속에 녹여냈다. 그렇게 마음 곳곳에 남아있던 엄마가 운명처럼 오늘 당선소감을 듣게 만들었다.

 

감사드려야할 분들이 너무나 많다. 사랑하는 엄마를 생생하게 눈앞에 데려와주신 무등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님, 옆에서 게을러지지 않게 애정 어린 눈빛으로 채근해 주신 신안문인협회 회장 박선우 시인님,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항상 마음을 열고 같이 공유해 준 윤인자 시인님·김네잎 시인님 ·김민주 시인님 그리고 많은 문인협회 동료들, 마지막으로 시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을 때 경험이 풍부한 향토성을 장점으로 살려서 실감나게 감각적으로 써보라고 가르침을 주신 하린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나에게 매일 존재의 이유를 되새기게 해준 가족들 너무너무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시의 고향으로 자리한 압해도는 농촌과 어촌이 공존하는 곳으로, 그야 말고 시의 보물창고다. 나는 이곳에서 농어촌정서를 실감나게 시로 옮기는 작업을 해 나갈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내공'있는 시인이 될 때까지 성실하게 '나의 길'을 묵묵히 갈 것이다. 내안에 있는 나를 꺼내는 일로 하루가 다 간다.

 

 

 

 

맛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열린 세계관으로 자연과 인생 조명" 

 

예년과 다르게 많은 응모자와 응모작품이 우선 선자를 기쁘게 했다. 내용도 사드문제, 세월호, 노마드('떠돌이'로 표현되는 현대 직업사회의 군상들), 디아스포라(국내로 들어오는 고려인 혹은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가족들), 사랑과 평화, 자연과 인생, 노동문제, 농촌과 공동체 사회의 붕괴,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개인적 정서와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스펙트럼 속으로 '불나비'처럼 날아드는 각양각색의 문제를 포착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그와 반면에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만들어지는 디지털사회를 반영하는 속칭, '컴퓨터詩'가 너무 범람하는 듯하여 염려스러웠다.

 

시가 쓸 데 없이 너무 길고, 우리말 한글 맞춤법도 무시하는(또는 문법적 지식을 갖추지 않는) 어휘실력과 속어·비어가 출몰하는 체팅 언어가 흠이라면 큰 흠이었다.

 

시(운문)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시는 짧고 산문(소설 등)은 길다"라는 사실이다. 시는 짧기 때문에 은유 등 갖가지 비유와 상징이 요구되며...마치 예리한 비수처럼 혹은 한 송이 꽃처럼 빛과 향기를 두루 갖추면서 '순간에서 영원으로'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으로 남은 작품은 김로경의 '새'와 김종숙의 '불시착' 그리고 최우영의 '생선'과 전진자의 '수목원'이었다.

 

먼저 밀려나간 시는 '새'였는데 시의 전반부가 거의 산문에 가까웠고 나머지 작품도 지나치게 설명에 의존하고 있었다. '불시착'은 당선작으로 밀어도 좋을 만큼 시의 구성과 '현대시의 미학'을 갖추고 있어 신뢰를 주었다. 문제는 같이 응모한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들쑥날쑥했다는 사실이다. 아깝지만 더 공부할 기회를 주는 수밖에 없었다.

 

최우영의 '생선'외 2편과 전진자의 '수목원'이 선자를 고민하게 했다. '생선'과 '수목원' 중에서 어느 작품을 당선시로 올려도 괜찮았다. 고심한 나머지 '생선'을 뒤로 젖히고야 말았다. "나는 젖은 나무 위에 누워 / 조용히 칼을 받아들인다....(중략)...갈라진 살 사이로 소금이 들어와도 / 나는 아프지 않다 / 아직 살아있다 / 세상은 아직 푸르다"는 절창이었다.

 

그러나 이 시를 쓴 응모자는 다른 작품에서도 시가 너무 '단형(單形)'이었다. 이 단형에 너무 맛들이면 우선 다른 시들도 지나치게 '애매함(ambiguty)의 미학'에 빠지고 시를 이끌고 나가는 에너지, 대범성, 추진력이 쇠하게 되어...시작에 노쇠현상이 빨리 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을 깊이 깨달을 때 '생선'의 시인은 '좋은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최후의 당선시를 '수목원'으로 확정했다. 시에 대한 연치(年齒)가 만만치 않다. 우선 열린 세계관을 갖추고 있으며 시에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부여할 수 있는 힘과 배짱과 풍성한 정서를 갖추고 있어서 좋다.

 

이 한편의 시에서 선자는 그의 자연관과 인생관, 시적 대상인 사물과 세상을 참신하게(초록색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단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괴테나 셰익스피어에서 보듯이 위대한 시인은 그 나라 말의 문법을 지키고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더욱 용맹정진하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김준태 시인

 

728x90

 

 

버튼홀스티치* / 권성은(본명 권옥희)

 

 

이 길은 올 풀린 기억이 삐져나오지 못하도록 팔순의 노모 허리 꺾어 기역자로 걷는 길이다 따라서 이 길은 더 이상 직선으로 갈 수 없다 불안에서 탄생한 ㄱ은 처음 나온 구멍 근처에서 자주 멈춘다 구멍은 길 위에서 흔들리는 실밥 같은 손짓을 안으로 쟁인다 늘 뾰족한 시간은 구멍을 향하여 한 땀 길 떠난다 마지막 좁은 바늘 길 둥글게 휘돌아 간다

 

기역에서 기억으로 난 길이 춥다 더 이상 갈 수도 없고 멈출 수 없는 매듭의 위태로운 실의 시간을 허리 굽은 늙은 겨울이 걸어간다 최후의 바늘이 단추의 목을 감싸는 순간 길은 기억으로 둥글게 말린다

 

그러므로 길 위에서 바늘의 행방을 묻지 말 것 마지막 길을 떠나는 허기진 물음표들, 억압과 자유, 셀 수 없이 많은 고통의 순간이 찾아와도 언제나

 

구멍을 향하여 바늘로 질문하는 한 땀의 생

 

구멍은 늘 춥다

 

*버튼홀 스티치 [buttonhole stitch] 주로 단춧구멍이나 가장자리의 실이 풀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휘갑쳐 뜨는 방법

 

 

 

 

[당선소감] 시는 고통의 계곡을 나는 한마리 붕새

 

낯선 선물인 듯 불쑥 당선 전화를 받았던,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그 날이 제게는 꿈처럼 아련합니다.

 

정말 이제 기뻐해도 되는지 제 자신에게 되물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의 행간에서, 무려 열여덟 해 전 어느 신춘문예 심사평 귀퉁이에서 보았던 제 시의 주소가 떠올랐습니다.

 

그 이후 저는 NGO활동을 하면서 시 쓰기는 사치라는 오만에 빠져 시와 멀어졌습니다. 쉽게 잊혀질 줄 알았던 시가 제 옆구리를 찔러댈 때면 사회정의 가치실현을 핑계로 제 게으름을 정당화 하였습니다.

 

그러다 2006년에 NGO 단체 대표님으로 원로시인 여민 이기형 선생님을 모시게 되면서 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와 함께 세상의 부조리를 외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 보여주셨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다시 한걸음씩 시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는 제 부족한 마음의 행간을 보고 계시는지요?

 

시는 제게 끝없는 상상의 날개를 달고 험한 고통의 계곡을 날고 있는 한 마리 붕새입니다.

 

지금 광장에서는 수많은 촛불이 어둠을 향하여 정의를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시를 쓰고 읽어야 할 시대입니다. 지속되는 불면과 반성의 겨울 밤, 그 고통과 극한의 사막에서 뜻밖에도 당선이라는 오아시스를 만났습니다.

 

먼저 부족한 시에 힘을 실어주신 무등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언제나 시를 놓지 않도록 질책하며 지도하여 주신 박남희 교수님과 동국대평생교육원 일산캠퍼스 행복한 시창작반 교실 아름다운 문우님들, 그리고 고양작가회의 여러분들과 2017년 탄생 100주년을 맞는 통일시인 이기형 기념사업회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구순의 나이에도 어린 아이처럼 함께 기뻐해 주시는 하회댁 울 어무이와 가족들, 여리고 철없는 에미를 묵묵히 감내해준 소중한 아들, 멀리 타국에서 열심히 응원하여 주는 착한 딸내미에게, 한없이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애드픽 지식마켓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참신한 시적 발상과 사유의 깊이가 돋보여

 

지난해는 비상식적인 인간들의 국정농단으로 현실이 문학보다도 더 많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요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올해 신춘문예에는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작품이 접수되었다. 시 부문만 해도 응모자가 250여명, 투고작이 1천이 넘었다. 투고작이 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비정상적인 시대상황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 마냥 기뻐할 수만 없는 노릇이었다.

 

응모작 중에서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일기예보」, 「아버지의 못」, 「버튼홀스티치」 등 세 작품이었다.

 

「일기예보」는 장마가 온 어느 여름날의 추억을 노래한 시로 “가난이 갈라진 벽의 각막을 적셨다”와 “라디오의 안테나가 연신 기침을 해댔다”와 같은 감각적인 표현은 뛰어났지만 주제를 집약하는 힘이 부족하고, 시적 이미지를 만드는데 있어 너무 산문적이라는 점에서 언어의 절제력이 아쉬웠다.

 

「아버지의 못」 은 도배하는 날 낡은 벽지에 드러난 선명한 ‘못자국’에서 시상을 발아하여 ”허름한 점퍼와 바지“가 걸린 못에서 ”아버지의 날지 못하는 날개“을 발견하는 깊은 통찰을 보여 주었다. 일상에서 시적 대상이나 상황을 발견하는 힘이 좋고 시상전개도 안정감이 있어, 시인으로서 충분한 역량을 갖추었으나 화법과 언어의 새로움이 부족하여 오랫동안 망설이게 했다.

 

「버튼홀스티치」는 단춧구멍과 바늘땀을 통해서 삶의 비의를 읽어 내는 참신한 시적 발상과 시적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유의 깊이가 돋보인 작품이다.

 

일상의 소재인 실과 바늘과 단춧구멍이 여러 겹의 언어의 층위를 이루면서 다양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어 이 시를 읽는 동안 한 겹 한 겹 껍질을 벗기는 언어의 맛을 느끼게 한다. “최후의 바늘이 단추의 목을 감싸는 순간 길은 기억으로 둥글게 말린다”나 “ 구멍을 향하여 바늘로 질문하는 한 땀의 생”에서 보여주는 감각적 언어와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높이 평가하여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심사위원 김경윤 시인

 

728x90

 

 

비가 오고 이팝꽃이 떨어지고 진흙이 흘러내리고 / 지연

 

 

무덤 자리에 기둥을 세운 집이라 했다

 

비가 오고 이팝꽃이 떨어지고 진흙이 흘러내리고
나는 당장 갈 곳이 없었으므로
무너진 방을 가로질러 뒤안으로 갔다
항아리 하나가 떠난 자들의 공명통이 되어 여울을 만들고 있었다
관 자리에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던 일가는 어디로 갔을까?

 

한때 그들은 지붕을 얹어준 죽은 자를 위해
피붙이 제삿날에 밥 한 그릇 항아리 위에 올려놓았을 것도 같고
그 밥 그릇 위에 달빛 한 송이 앉았을 것도 같은데
지금은 항아리 혼자 구멍 뚫려
떨어지는 빗방울의 무게만큼
물을 조용히 흘러 보내고 있었다

 

산자와 죽은 자의 눈물이
하나가 되어 떠나는 것 같았다 어디를 가든
이 세상에 무덤 아닌 곳 없고
집 아닌 곳 없을지도
항아리 눈을 쓰다듬으려는 순간
이팝꽃이 내 어깨에 한 송이 툭 떨어졌다
붉은머리오목눈이 후두둑 그 집을 뛰쳐나갔다

 

비가 오는 날 내 방에 누우면
집이기도 하고
무덤이기도 해서
내 마음은 빈집
항아리 위에 정화수를 올려놓는다

 

 

 

 

건너와 빈칸으로

 

nefing.com

 

 

 

[당선소감] 질긴 가죽 같은 시를 쓰고 싶었다

 

 가죽을 자른다. 재단 칼을 잡고 힘주어 긋는다. 가죽에 물 분무기를 뿌린다. 물분무기를 뿌리는 것은 죽은 소에게 허락을 구하는 일이다. 잉크가 나오지 않는 볼펜으로 가죽에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질긴 가죽 같은 시를 쓰고 싶었다. 아이들도 시도 세월의 손때가 묻어서 물빛이 나면 좋겠다.

 

내 마음을 붙들고 있는 낡고 허름한 것들 아직 뻣뻣하다. 가죽에 그린 소쿠리, 채반, 절구, 옹기 위에 염료를 바른다. 둥글게 가장자리부터 굴린다. 색이 빠지면서 다른 색을 껴안는다. 시도 삶도 그럴 것이다. 언제 들어왔는지 아이들이 우당탕 배고프다고 냉장고를 덜컹거린다. 엄마가 되고 보니 배고프다는 말이 사랑스럽다.

 

부모님이 생각난다. 짝재기 신발을 신고 다니시며 나중에 내 자식 크면 호강할 날 있을 거라며 웃으시던 어머니, 자전거 뒷자리에 나를 태우고 마실 다니셨던 아버지, 한 번도 호강시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당신의 배보다 자식의 배를 사랑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병원에 누워 계시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신 시어머니 김정애 님 고맙습니다. 창문 너머로 어머니 손을 흔드실 때마다 마음이 뻐근하였습니다.

 

시의 순정으로 인도해주신 김동수 교수님, 시의 가죽에 십자 모양으로 바늘을 꽂아야 함을 느끼게 해주신 문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어둠을 함께 두드렸던 글벗 식구들, 소심한 마음을 다독여주는 시산맥 식구들 감사합니다. 작고 낮은 곳에 더 낮게 엎드리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시를 잡아주신 무등일보와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질기고 철없는 마음을 망치로 두드리며 시를 쓰겠습니다. 머리가 아둔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열심뿐이니 열심히 걷겠습니다.

 

 

 

[심사평] 죽은 자와 산자의 공명통인 항아리 참신

 

 우선, 왜 아직도 시가 쓰이는지 다시 확인했다.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삶에도 그 속에는 사람들의 온기가 스며있다. 그 온기는 다시 사람으로서 주어진 생을 살아가게 하는 어떤 의지 같은 것으로 전환된다.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그 어떤 의지 중에 시를 쓰는 것이 한 자리 차지한다면 지나친 의미 부여일까. 고통스런 세상이지만 생의 의미를 탐색하고 자신을 위로하며 수많은 다름과 연대하게하는 공감감정의 지렛대로서 시 쓰기가 작동하고 있음에 마음이 뻐근했다.

 

꽤 많은 작품이 투고되기도 하였지만 작품마다 순순히 넘어가기가 수월치 않았다. 한 이미지가 눈길을 사로잡아서 오래 만지작거리기도 하였고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작품에서는 그냥 한 권의 작품집으로 직접 상재하는 것도 좋았겠다는 느낌에 생각이 머물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타자와 관계하면서 생기는 불화와 불온의 서정에 더 주목하고자 하였다.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하여 이해불가의 관념세계에 갇히기보다는 연약하더라도 괴물 같은 세계와 대결하는 소통적 공감 서정이 아직도 시를 써야 할 이유가 아니겠는가에 천착하였다.

 

최종적으로 다섯 분의 작품을 놓고 고심하였다.

 

유쾌하고 명랑하며 웃음을 선사하는 시는 절로 즐겁다. ‘포장마차 왕국’은 작은 동네에서도 사람의 품격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대통령 노릇을 할 수 있는지를 전하는 소식에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너무 익숙한 소식이다. 빅뉴스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소식에 가슴이 울렁거리는 기쁨을 자아내기에는 부족했다.

 

‘꽃피는 콤바인’이 전하는 즐거움도 작지 않다. 힘들고 피곤한 농사일을 거뜬히 해내는 콤바인은 참으로 귀한 존재이다. 콤바인은 온갖 꽃들을 이미 내장하고 있다. 농사일의 일상을 ‘꽃피는 콤바인’으로 소소하게 관찰하게 하는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그런데 아쉽게도 꽃을 피우는 콤바인만 덩그렇다. 시가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촉발시켜 작품 속의 위치에 서서 동일과 동등으로 느끼고 바라보게 하는 진경이라고 한다면 콤바인은 그냥 콤바인일 따름이었다.

 

‘비가 오고 이팝꽃이 떨어지고 진흙이 흘러내리고’는 죽은 자와 산 자들 사이는 물론, 떠난 자와 남아있는(새로 들게 된)자들의 공명통인 ‘항아리’가 참신하다.

 

어떻게든 살아남은 자들은 그가 거처할(하는) 집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공간이며 미래의 누군가의 집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에 가득 채워놓으면 안된다. ‘빈집’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공명통을 울게 해야 한다. 거기에서 꽃이 지고 새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비가 오고 이팝꽃이 떨어지”는 때 “진흙이 흘러내리”는 집을 찾아서 “항아리” 하나가 “공명통”으로 집의 내력을 이야기하고 있는 “빈집”에 가보고 싶은데 “정한수” 보다는 술 한 잔 괴어 놓고 귀 기울이다가 그 공명통을 박살 내버리는 것은 어떨까. 정답 같은 마무리가 아쉽다는 얘기이다.

 

두 분의 작품이 더 있었다. 그러나 논외로 하였다. 이미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분들의 작품이라 여겼다. 그 분들의 문단 이력에 굳이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한 줄을 더 써넣게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비가 오고 이팝꽃들이 떨어지고 진흙이 흘러내리고’를 당선작으로 내민다. 이미지의 참신함에 사회적 성찰을 적극화하여 내적으로 단단한 시의 집을 지어나갈 것을 사족으로 붙인다

 

심사위원 조진태 시인

 

728x90

 

 

잉카 염전* / 나루

 

 

바람이 누웠던 빈 둑마다

산이 뱉어놓은 통증이 하얗게 널려있다

 

내 어미가 바다가 아닌 산 이라니

소금은, 몰래 다듬어온 은빛 칼날로

자신을 가두었던 산의 자궁을 찌르고 싶었다

 

적막이 달빛처럼 침식해 들어와

점점 빙하를 닮아가고 있었다

산을 벗어나는 법을 모르기에

정해진 몫만큼 매일 하늘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새들이 물고 온 파도냄새가 두려울 때마다

몸을 낮춰 바람과 관계를 맺었다

소금을 잉태하던 순간부터, 산은

빗물을 붙잡아두기 위해

다랑이 밭에 둑을 만들었다

 

의붓자식 같은 저것들,

그 안에서 구름 족속들과 뒹굴면

바다 따위는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쓰라려도 품지 않을 수 없는

단단한 고요를 깨뜨리기 위해

저희들끼리 엉기며 서로 핥아주어야 했다

 

바다의 기억은 남아있지 않지만

짜디짠 그리움은 어쩔 수 없었다

 

바람이 누웠던 잉카의 골짜기마다

억겁의 생채기가 눈보다 눈부시다

 

* 잉카문명이 남긴 유물로 해발 3천 미터 산 속에 계단밭으로 형성된 염전.

 

 

 

 

[당선소감] 문득 반가운 추억을 만난 듯

 

언제나 시작은 떨리고 어렵다.

 

묵은 빚을 갚아버린 듯한 홀가분함과 가슴 벅차게 솟아오르는 설렘과 막연한 긴장이 혼재된 감정을 안고 막상 시인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첫 발걸음은 떨리고 어렵다.

 

초등학교 3학년쯤 한 어린이신문에 동시가 실린 적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왠지 죽을 때까지 시를 써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운명 같은 느낌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시는 나에게서 표류하는 조각배처럼 자꾸 멀어지다가 서른 즈음엔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그 후로 그것은, 아무리 달려도 발이 떨어지지 않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악몽이었다. 내 속에서 와글거리는 언어들은 시가 되지 못했고 밖으로 나오지 못한 시어들은 흰 개미떼가 되어서 내 감정을 파먹었다.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뒤이어 엄마까지 보내면서 내겐 위로가 필요했다. 어느 날 아이들 참고서를 사러 서점에 갔다가 내 눈이, 아니 너덜너덜하게 소멸되어버린 내 감정이 시집을 집어 들었다. 수십 권의 시집을 내 속에 담다가 어느 날부턴가 시는 울음이 되어 쏟아져 나왔다. 슬픔을 다 토하고 나니 다른 삶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더 이상 시는 악몽이 아니었다. 마음먹으면 달릴 수 있었고 소리도 지를 수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아득하게 들려오던 믿기지 않던 당선 소식!

 

낯선 곳을 헤매다가 문득 반가운 추억을 만난 듯 주변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앉은뱅이 서랍 속에 가둬둔 아버지도, 내 머리카락에 유전인자로 남아있는 엄마도 와락 달려들어 축하를 해주시는 것 같다.

 

새로운 꿈을 꾸게 해주신 무등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바쁜 가운데서도 시의 끈을 놓지 않고 격려와 채찍을 아끼지 않으신 시옷동인들과 긴 시간 시를 보듬을 수 있게 해주신 이용헌 시인님께도 감사하다.

 

퇴근길에 보라색 꽃다발을 안겨준 남편과 뜨거운 포옹으로 축하해준 두 딸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짝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시가 내게 손을 내밀어주어서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애드픽 지식마켓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활달한 상상력과 참신성 높이 평가

 

신춘문예는 새 봄의 문학이다. 눈 속에 핀 매화처럼 혹한을 이기고 봄기운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이다. 그래서 참신하고 개성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작품을 기대하며 응모작들을 읽었다. 이번에 선자에게 넘어온 응모작은 모두 500여 편이 조금 넘었다. 대부분의 작품이 문학적 열정은 높았지만 절제와 균형이 부족했고 산문적 요설이나 추상적 관념의 나열로 흐르는 경향이 많았다. 몇몇 작품들은 세월호 사건 등 우리 시대의 당면 문제를 다루고 있었으나 적절하지 못한 은유와 생경한 표현으로 독자의 공감을 얻기가 힘들었다. 또 응모 작품의 수준의 편차가 심해 한 편만을 선뜻 고르기가 어려운 작품도 있었다. 무엇보다 대상을 주의 깊게 보고 새롭게 표현하려고 하는 자세가 부족해 보였다.

 

시인이란 보이지 않은 것까지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진 자라고 한다. 그래서 좋은 시는 삶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개안(開眼)을 보여준다. “시는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는 옥타비아 파스의 말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신인에게는 늘 창조적 상상력과 패기가 요구된다.

 

응모작 중에서 마지막까지 선자의 눈길을 붙잡은 작품은 '소금꽃'(황보림), '고욤나무'(하상수), '잉카 염전'(나미화) 등이었다. 이 세 분의 작품은 각각의 개성과 장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1%의 아쉬움 때문에 오랫동안 망설이게 했다.

 

'소금꽃'은 안정된 언어 구사력과 연륜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바다가 퉁퉁 불은 젖을 수유하고 있다는 표현 등이 눈길을 끌었으나 시적 발상이나 화법이 유형화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고욤나무'목수의 신산한 삶을 고욤나무에 비유하여 대팻날은 천성을 깎아 구불구불한 날들을 울컥울컥 토해냈다고 표현할 만큼 생에 대한 깊은 시선은 느껴졌지만 전체적인 형상화 능력과 주제의식의 상투성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잉카 염전'은 잉카의 유물 살리나스(Salinas)염전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참신한 시적 발상과 여성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소금을 산이 뱉어놓은 통증이라고 표현한 대목에서 여성적 삶의 운명적 고통이 느껴지고, 여성성의 상징인 바다와 자궁의 이미지가 잉카 염전으로 치환되면서 눈부신 억겁의 생채기로 빛나는 아름다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다만 화자의 시점이 흔들리고 대상과의 거리감이 불안정한 점 등이 눈에 띄었으나 오랜 고민 끝에 안정된 언어 구사나 주제의식보다 활달한 상상력과 참신성을 더 높이 평가하여 '잉카 염전'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앞으로 쓰게 될 미지의 작품들이 부족한 점들을 충분히 극복하리라고 믿는다. 당선자는 부단히 정진하여 한국문학의 중추가 되길 기원한다.

 

심사위원 김경윤 시인

 

728x90

 

 

바람의 징후 / 최지하

 

 

붉은 헝겊 같은 노을이 살다갔다 
죽은 나무에 혈액형이 달라진 피를 돌려야 할
심장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기다림의 대상이, 그, 무엇이었던 동안 
더 이상 풀빛은 자라지 않았다 
대신에 동구 밖의 삼나무들이 푸른 잎을 마쳤다
가두어 놓았던 귀를 풀어 놓자마자 
귀가 아니라 입이었다며 우는
야행의 고양이와도 같았던,
그것은 단순히 후회에 관한 피력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소문처럼 스쳤다가 간 걸음 속을 따라가다 보면
오래 전에 내렸던 눈이나 비가 다시 내계(內界)로 
돌아갈지 모른다

당신이 보낸 전령사들, 그, 후로
당신이 직접 와서 지나간 자리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게 할 가능성은
방향에게 기대어 목을 꺾거나 
내게로 오는, 그, 동안을 하르르 밟아주는 일이었다

당신은 증명하지 않고
증명되지 않는다
바람의 채집사를 자처해 보았을지도 모르는
전생보다 더 멀리서 걸어 왔던 세월 동안 
뒷모습 쪽에만 대고, 훨씬 전에 지나간 유행가 같은, 낡은, 
셔터를 겨누어 보기도 했을 거라는

가장 처음일 때 오고
가장 나중일 때 닿았던 
당신의 징후에게, 더 이상 생의 손가락 하나를 
걸어보는 행위를
파란이라거나 파탄이라는 이름으로 치유하지는 않겠다.

 

 

 

 

[당선소감] 건실한 언어로 시인의 길 걸어갈터

여수에 간 적이 있다. 기차는 너무 먼 길을 에도는 것 같았고 저녁이 오고 있었다. ‘미리내’라는 단어 한 알을 알사탕처럼 입 안에서 굴려 보았다. 남도의 달빛, 여수 바다의 파도 소리는 하얀하고도 섬세했다. 분명 바다의 바닥에서 기인한 것만 같았으리. 귀에서 작은 풍금소리가 울렸다. 그새 태어나지 않았던 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눈물이 났다. 머리칼이 아니 갈기가 마냥 헝클어진 아프리카의 검은 말(馬) 한 마리가 에티오피아의 커피향을 내뿜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시는 여전히 내게 아프리카의 들국 떨기들이었고, 에티오피아의 우물이었다. 검고도 검었던 날들이 내게서 나를 바닥으로 내려놓아 주었다. 두통의 아침이면 “두통, 두통” 새 한 마리 울다가 가곤 했었다.

오늘 나는 무언가를 영원히 잃어 버렸고, 무언가가 다시 내게로 왔다. 초긴장과 같은 이 시간을 나는 가장 건실한 언어로 받아 수첩에 옮길 것이다. 무등일보에 절한다. 

 

 

 

쿠팡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시는 그렇다면 기록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한 기록일까

적지 않은 투고작들을 빼놓지 않고 들추어내던 와중에, 한 때 왕성한 시력을 문단에 선보였던 이 지역 출신 시인의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이라는 시집의 제목이 하나 떠올랐다. 비문(非文)이었다. 그렇다면 저 문장의 속내는 해가 지지 않을 때까지의 쟁기질 정도를 이르는 말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이라는 생뚱맞은 문장은 시적인 어법의 환기 속에서 나름대로의 매력과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시는 그렇다면 ‘기록’이상의 혹은 그 너머의 기척이며 기미까지를 비끌어 매야하는 난항과 고투와의 대면이자 확인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실 작금 시단의 기류는 그런 정도를 넘어서서, ‘읽혀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읽히기’의 방식으로까지 세를 넓혀버렸다. 그런 사이 기존의 시들은 이미 전설이 되었거나 물을 건너버린 꼴이다. 요즘 따라 부쩍 시를 읽는 일이 무거워져 버렸다.

투고시의 대부분들은 자잘한 일상의 담론들에 그쳐 있었다. 뉴스는 신산스러운데 시들은 평안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을까? 뱀이 살아요(박평숙). 늪(곽성숙), 뿌리는 닫힌 문이다 (남상진) 보고서(한영희) 꿈의 각(박순옥) 어느 일요일 오후 (홍유나) 씨 등의 시들과 함께 조유희(앵무새의 난독증)과 최재하(바람의 징후)가 마지막까지 남았다. 두 사람의 작품은 당선권에 무난했으나, 진술의 뒤에 남겨진 여운은 “바람의 징후”가 더 깊어 보였다. 다시 또 일어나 앉아 끝장이 날 때까지 “쓰는 자”만이 시인일 것이다.

 

심사위원 정윤천 시인

 

728x90

 

 

고로쇠 옆구리 / 김정애 

 

 

뚫어야만 다스려지는 상처가 있다

뭉툭한 옆구리에 핏물을 가두고

거친 호흡으로 살아가던 나무가

잎사귀의 언어로 조용히 말을 걸어올 때

꿈의 밑동에서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세상에 저문 울음들을 끌어안고

복수腹水를 다스리는

노모의 시간

 

살갗 밑으로 가는 뿌리가 자라나고

산을 들어 올릴 듯 무거워진 몸으로

때론,

내 것의 체취도 조금은 빼내고 살자며 옆구리를 들춘다

콸콸콸 쏟아내는 물속에는

어머니의 깊은 한숨과 불면의 시간들이 우러나 있고

혈관을 따라 울려 퍼지는 피의 음악이 스며 있어

꿀떡 삼킬 순간을 놓치고 숲에 안겨본다

바람을 휘저으며 폭포를 향해 뻗어가던 기상과

쇳물을 다스리는 철의 여인 같던 고집이

명치 한복판을 뚫고 뼈의 무늬로 흐르고 있다

우글거리는 잎사귀를 향하여

응달을 다스리고 있다.

 

 

 

 

꽃을 번역하는 저녁

 

nefing.com

 

 

 

[당선소감] "깊은 한숨과 불면의 시간을 밝혀주는 새해 첫날 같은 시 쓰고 싶어"

한 그루 나무가 제 가슴속에 부리를 묻고 있는 아침, 옆구리를 들추는 노모는 싱싱한 잎사귀를 어루만지며 가슴속에 살고 있는 바람들을 놓아 주고 몸을 바꾼다.

오래 쳐다 본 그 나무, 그늘을 베풀어 주고 답답할 때 말 걸어 주던 그 나무,

나무가 새의 몸을 빌려 울듯 노모의 몸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 뼈의 무늬를 만들면서 어둠을 다스렸고 생각이 깊어지고, 가슴에 멍이 든 이름들을 불러 보았고 이른 봄날 혼자 착해지기도 했다.

미칠 듯 기억 하나 꺼내 들고 물소리보다 먼 세월을 바라보는데 쉼 없이 어루만졌을 물의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혀있다. 물살의 굳은 흔적으로 깊은 한숨과 불면의 시간들을 밝히고 오랜 응달의 시간을 다스리는 새해 첫날 같은 시를 쓰고 싶다.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는 이웃 같은, 그래서 더욱 살가운 시를 쓰고 싶다.

생각나는 얼굴들이 많다.

빈약한 시를 올곧게 붙들어 주신 심사위원님, 방향 없이 헤매는 것들을 가능성으로 옷 입혀주신 스승님, 시 쓰기에 한 없이 게으르다 싶으면 울컥 해질 때까지 껴안아주고 함께 위로 받던 문우들, 청춘의 소리를 가슴으로 새겨듣겠다는 소리와 민철, 가까이 있으면서 먼저 좋아하고 기뻐하는 가족들이 겨울햇살처럼 환하게 다가온다. 쓰자마자 휘발되는 것 말고 뭉근히 피어나는 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볼 참이다.

 

 

 

[심사평]

 

올해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투고된 작품수는 400여 편이 조금 넘었다. 전국 각지에서 응모한 120여 명의 예비 시인들의 작품을 읽는 일은 흥미롭고 긴장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투고된 작품들은 아직도 시가 개인적인 고백의 양식이라고 생각하거나 낭만적인 감정의 표출 정도로 생각하는 구태의연한 시들이 많았다. 또한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한 작품들도 대체적으로 발상 자체가 보편적이거나 산문적인 경향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보게 하는 경험을 선사해준 좋은 시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언어적 세련미나 시적 완결성보다는 시적 치열성과 참신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시란 삶과 현실에 대한 성찰과 열정의 산물이다. 시적 치열성이 없이는 좋은 시가 나올 수 없다. 사소한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시를 발견하는 시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좋았다. 그 중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최재호의 '자두나무 변성기', 김재홍의 '빈센트 반고흐의 낡은 구두 한 켤레', 김정애의 '고로쇠 옆구리' 였다.

 

세 작품은 모두 시적 역량이 뛰어나고 다년 간 습작기를 거친 흔적들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자두나무 변성기'는 꽃 피는 자두나무와 사춘기 소년를 비유한 작품으로 감성이 풍부하고 '햇살 한 무리 잉태한'이라든가 '우람한 목피 속에 바람의 숨결' 같이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세련됐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의미구조가 모호하고 주제의 응집력이 약하다는 것이 흠이었다.

 

그리고 '빈센트 반고흐의 낡은 구두 한 켤레'는 고흐의 그림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작품이다. 낡은 구두를 통해 삶의 애환과 삶의 무게로 인한 고통를 노래하고 있는데, 그림이 주는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보였다. 또 시상을 끌고 가는 힘이나 언어 구사력은 뛰어난데 알맞은 내용을 알맞은 분량으로 압축하는 절제의 미덕이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고로쇠 옆구리'는 고로쇠 나무를 '세상에 저문 울음을 끌어안고' 살아온 어머니의 삶에 비유한 작품으로 자신의 삶의 주변에서부터 우러나온 경험을 형상화하는 시적 능력이 뛰어났다. 평이한 시어로 삶에 대한 깊이을 들어내는 깊은 안목을 가지고 있으나 마지막 부분에서 긴장이 좀 풀린 감이 있었다.

 

이 세 작품을 갖고 숙고한 결과 최종적으로 김정애의 '고로쇠 옆구리'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구조의 완결성 면에서 다소 부족한 점은 있지만 함께 응모한 '섬진강을 굽다'와 '꽃잎을 번역하다'에서 보여준 뛰어난 언어감각과 사물과 삶에 대한 이면을 성찰하고 탐색하는 태도가 녹록하지 않음을 높이 평가하기로 했다. 좋은 시를 당선작으로 뽑게돼 기쁘다. 보다 치열하게 정진하여 한국문단을 빛내는 좋은 시인이 되길 바란다.

 

끝으로 최재호, 김재홍 두 분께도 격려를 보내며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기원해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김경윤 시인·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