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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빌레*의 소(沼)로 간 소 / 안시표

 

 

섬 노을이 바다를 펼치면 다락빌레 벼랑 속으로

거친 숨결 하나, 하늘로 간 沼에 소가 있었지

도시의 아파트 한 채처럼 송아지를 분양받은 큰어머니

차양 넓은 햇살이 작은 어깨에 내려앉아

들판의 하루가 감투로 숨 차오를 때

다락빌레 한가운데 沼의 잘근잘근 대는 소리에 잠시 쉬어가고는 했지

하양 떠밀려 오는 벼랑 파도 소리가

무성한 파동을 이끌고 수초의 혼을 빼놓을 때

개구리 숨죽이며 알 낳은 소리, 공기 방울로 터져 나오고

진흙 물뱀 꼬리는 바람의 온기를 감추며 저물어 갔지

어디선가 장수풍뎅이 물가에 지문 찍듯 沼 지천을 쿵쿵 울리며

소의 발굽 소리 다가올 적, 겁 없이 손에 쥐어진 버들 막대 하나

물가에 비친 늙은 호박 같은 엉덩짝을 찰싹 내리치고는 했어

목을 축이는 소의 울음 곁, 하얀 목덜미를 씻는 큰어머니의 환한 하루가

이렇듯 흘러가는 어진 눈매에

느려도 천 리를 가는 황소의 콧김으로

점점 沼와 뜨겁게 맞닿던 어느 여름날이었어

꿈결 沼에 비친 낮달을 사각사각 베어 물다

생이가래 속으로 툭 떨어진 이빨을 찾으려 손을 집어넣던 딸애

간질대는 물뱀에 울면서 깨어난 다락빌레엔

종일 비가 내렸고

웃자란 풀을 쫓다 벼랑 아래로 큰어머니의 황소는 별안간 떨어졌지

바다는 굵어지는 빗소리에 큰어머니 상혼(喪魂)의 궁핍을 남기고

그 해, 무른 콜타르 감정이 다락빌레 沼를 자르니

쭈욱 뻗어나간 신작로에 소금 핀 마른 눈물만 번져갔어

서쪽 돌 염전 따라 빌레의 명치끝을 밟으면 다락쉼터 표지석을 만날 수 있어

바람 부는 날 이곳에 서면 수평선 너머로 간 큰어머니의 황소가

아직도 沼의 잘근잘근 대는 소리를 씹으며

바다로 터져나간 신음을 삼키는 것 같아 먹먹해지고는 해

 

*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마을의 "다락쉼터" 옛 지명을 뜻한다. 

 

 

 

예스이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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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무한 사랑 어머니 삶 새기며 시인 길 걸을 것"

 

초등학교 1학년 가을, 제주 시내에서 고내봉 오름 아래 낮게 펼쳐진 농어촌 마을로 전학 왔습니다. 매일 눈 뜨면 파도 소리에 마을은 분주히 움직이고 골목엔 어린 꼬마와 대문도 없는 집을 지켜내던 개들이 전부였던 시절. 그 사이를 빠져나온 나는 가끔 굽이진 해안 길을 걷다가 오래된 초등학교로 걸어가는 꿈을 꿉니다. 만지면 잡힐 듯한 선생님의 음성, 뭐가 그리 좋은지 마냥 까르르 웃는 친구 얼굴, 하나하나가 그리운 연말입니다.

 

이 연말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걸 축하드립니다" 문자와 전화를 받고 떨리듯 기뻤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당황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나의 직업은 항만 공사의 건설사업관리 기술인입니다. 지금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제주 섬을 빠져나왔지만, 여기에서도 바다는 나를 껴안고 있습니다. 바다를 보면 막연하고 꿈틀거리는 기억들이 어느 날, 내 안을 헤집어 놓습니다. 멋도 모르면서 SNS에 낙서하며 무미건조했던 삶이 2년 전 뭍으로 나오면서 "이제는 낙서가 아닌 시를 써봐라" 용기를 주신 조성국 선배님 덕분에 진솔한 삶의 성찰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란 무엇일까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왜?, 왜?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무한 사랑을 주셨던 어머니 마음이 다 같은 시가 아닐까요? 어긋나지 않도록 가르쳐 주신 삶, 그거 하나면 시인으로서 가는 길은 아름답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매주 금요일 화상으로 '시와 문화' 시 창작 배움에서 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사랑을 구체적이고 명징한 이미지로 그려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정적인 관념의 틀에서 벗어난 시의 방향을 가르쳐 주시는 박몽구 선생님, 함축적 언어의 깊이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주선미 선생님, 그리고 시 창작 배움 여러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미숙한 시를 뽑아주신 무등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께도 시인으로서 용기를 갖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끝으로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지만, 감수성을 키워준 나의 고향 '고내리'와 사랑하는 가족들, 애월 초등학교 친구들 덕에 감히 시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 기쁩니다.

 

 

 

 

[심사평] "상상력의 참신성 초점…당선작 시의 미덕 돋보여"

 

올해 응모작들의 가장 큰 특징은 서정성의 회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시대의 불안의식으로부터 제법 사이 띄기가 된 것인지, 몇 해 동안 보이던 어둡고 우울한 감상성이 어느 정도 걷혀 있는데다 전반적으로 수준도 높아진 것 같아 반가웠다. 좋은 시는 능란한 기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적 대상과 세계를 끊임없이 응시하고 통찰하는 자기 성실성에 의해 산출된다. 좋은 시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시'가 되어야 한다. 시가 언어를 몸체로 하는 한, 언어에 대한 성찰을 뒤로 한 채 자기 감상에 먼저 포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인으로서의 기본에 충실한 시, 그러면서도 상상력의 참신성과 가능성을 갖춘 좋은 시에 주목하였음을 밝혀둔다.

 

응모작 중 심사자의 손에 끝까지 남은 작품은 네 편이었다. 이 작품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시품을 갖추고 있어서 한 작품만을 당선작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김미향의 '속도의 풍장'은 버려진 자동차를 통해 인간 삶의 의미를 제시하고 있는데, 담담한 어조가 오히려 독자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호소력으로 다가왔다. 박행신의 '지워질 줄 알았다'는 어머니와 목기에 얽힌 서사적 모티프를 산문시형으로 구성하면서도 끝까지 서정적 긴장을 놓치지 않은 뚝심이 돋보였다. 최서정의 '풍경사(寺)'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삶의 정경들을 풍경의 사찰로 응시하는 독특한 상상력과 성찰의 언어가 눈길을 끄는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최종 당선작의 자리에는 안시표의 '다락빌레의 소(沼)로 간 소'를 올리기로 하였다.

 

'다락빌레의 소(沼)로 간 소'는 시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미덕들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소(沼)와 소(牛)의 동음이의어로 교직하고 있는 상상력의 확장성, 장소 체험으로 환기하는 그리움의 서정성, 소환된 기억을 늪에 사는 생물들로 구체화시키는 예민한 감각, 한 편의 시를 마치 언어로 그린 수채화처럼 보여주는 이미지의 선명성 등이 그것이다. 표현이 난삽해지거나 의미에의 집착을 범할 수 있는 시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억지스럽지 않게 아우르고 있다는 점은 범상치 않은 능력이라 할 수 있겠다. 시인으로서 큰 발전이 있기를 기대하며 축하의 말을 전한다. 또 아깝게 선택되지 못한 분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 심사위원 : 김동근 문학평론가·전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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