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 / 기혁
자동차 트렁크에 실린 소나무가
허공으로 뿌리를 내밀자,
지상도 지하도 아닌 나라가 생겨났네.
그 나라 시민들은 블랙 러시안이나
화이트 러시안 표정을 지으며
허공에 허파를 만들고
심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네.
몇 번의 눈사태와 크리스마스가
달궈진 아스팔트 아래 묻히는 동안,
독재자를 연기하는 배우를
지도자로 추대하기도 했네.
그 나라의 모든 병명은 비유였으므로
의사는 처방전 대신
시를 적어 내밀곤 했지.
엘리베이터를 천사라고 부르게 된 건
그 나라의 돌림병 때문이었네만
하늘을 나는데
꼭 혁명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네.
천사를 타기 위해 필요한 중력을
사람들은 서로를 껴안으며 마련했고
그것을 적분해
사랑이라 부르기도 했었네.
떠돌이 악공의 연가가 끝나 갈 무렵
+에서 -로 전류가 흐르는 건
기타 줄만이 아니었다는군.
잊었는가? 소나무가 뿌리내린 곳에는
사철이 없다는 걸 말일세.
여름이 끝나고 드라마가 찾아오고 있다네.
천사가 지나간 자리는 모두
그들의 박수일 따름이었네.
출판사 민음사와 계간 '세계의문학'이 주관하는 제33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기혁(35)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 외 51편으로 지난 19일 시집으로 출간됐다.
심사위원들(김혜순·김기택·서동욱)은 "시집 전체를 통틀어 자신의 시 스타일을 끝까지 견지하고 한 편 한 편에서 긴장을 놓지 않았다"고 평했다.
기씨는 2010년 '시인세계'에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201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평론)로도 등단했다.
'국내 문학상 > 김수영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5회 김수영문학상 / 안태운 (0) | 2021.07.04 |
---|---|
제34회 김수영문학상 / 황유원 (0) | 2021.07.04 |
제32회 김수영문학상 / 손미 (0) | 2021.07.04 |
제31회 김수영문학상 / 황인찬 (0) | 2021.07.04 |
제30회 김수영문학상 / 서효인 (0) | 2021.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