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얼굴 / 성찬경
남한에서 나무가 연간 빨아들여 간직하는 물의 양이
150억 톤은 된다고 한다.
큰 저수지 여러 개가 저장하는 물의 양과 같다고 한다.
크고도 착하구나 나무가 하는 일.
그렇기나 하니까 나무의 자태가
저렇듯 늠름하고 멋있는 거지.
들에 솟은 몇 그루 나무의 시정(詩情).
보라 나무의 집단 저 숲의 위용을.
수목의 바다 센 바람이라도 불면
출렁이는 잎의 파동 웅혼한 율동.
저런 나무를 마구 학대하니까
세계 곳곳에서 물난리가 나는 거지.
보아서 좋은 것은 본질도 곱다.
착한 모습은 착한 마음의 거울.
무섭다 독을 품은 버섯은 역시 독버섯.
절대 어김없다 사기꾼 얼굴은
나는 사기꾼이요 하고 말하고 있다.
판독을 잘못하여 더러 속긴 하지만.
풀밭에 둥실 뜨는 달빛처럼
모습을 칠하는 본질.
안과 밖 이 조응(照應)이 큰 신비다.
늘 푸르고 천연한 나무여.
[심사평]
올해로 시력(詩歷) 반세기를 맞는 성찬경 시인은 전통적인 서정시나 역사적 현장성의 사회의식의 시가 주류를 이뤄온 한국 시단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시학의 이단아인데, 따지고 보면 공초 선생 또한 근현대 시단의 한 이단아였다. 이단이어서 좋다는 뜻이 아니라 두 시인이 추구해온 역정은 다른데도 도달점에 가까워지면서 이렇게 닮을 수가 없다는 점이 새삼 소중하게 평가받은 것이다. 가히 한국 현대시단에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특이한 ‘시학적 개성’이 돋보인다는 뜻이다.
공초 선생이 불교를 중심한 동양사상의 주관적 인식론에서 출발했다면, 성 시인은 가톨릭적 가치관으로 자연과학적인 존재론에서 시적 형상화 작업을 시작했다. 전자가 인과응보에 의한 존재의 총체적인 인식론에 자리했다면, 후자는 약간은 난삽한 과학과 문학이 혼음한 듯한 존재의 분석론에 치중해 왔다.
공초의 시가 서정적 감성만으로는 근접하기 어려운 불교와 동양사상의 합성 위에 펼쳐지는 오묘한 사유의 언어라면, 성 시인의 시세계는 모더니즘 이론만으로는 근접이 어려운 요인을 간직한 ‘광물성’적인 미의식의 결정체로 구축돼 있었다.
그런데 성 시인은 최근 시집에서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둔 탁류 속의 은둔자였던 공초의 시세계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그는 가톨릭과 불교는 물론이고 과학과 문학, 식물학과 광물학까지도 핵 융합시켜 모든 존재의 진실을 인식하는 방법론을 터득한 것 같다.
시 ‘마음과 얼굴’은 바로 이런 성찬경 문학의 한 꼭짓점을 이루고 있다. “보아서 좋은 것은 본질도 곱다./ 착한 모습은 착한 마음의 거울”이라고 외모만 보고도 속내의 가치를 판단하는 비의를 전수하는 이 시는 가히 화엄의 세계에 이른 시인의 원숙함이 스며 있다. 설사 “판독을 잘못하여 더러 속긴 하지만/풀밭에 둥실 뜨는 달빛처럼/모습을 칠하는 본질”이라는 구절에서 존재와 본질이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임을 깨닫는 선시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런 단계에 이르기까지 이 시인은 우주율(宇宙律), 밀핵시(密核詩), 요소시(要素詩), 반투명 이론이라는 숱한 관문을 거쳤다. 그 미학적 고행이 시인으로 하여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우주를 장난감으로 만들 수 있다는(시집 ‘거리가 우주를 장난감으로 만든다’를 연상하시라) 터득을 가져온 셈이다. 실로 반세기만의 득도로 이룩된 이 시집은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세대에게 두루 읽힐 수 있는 명상시의 오롯함을 간직하고 있다. 즐거운 상상 여행길 같다. 문단 선배에게 드리는 공초문학상의 의의가 여기에 있다.
- 심사위원 이근배·임헌영·천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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