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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미용실 / 조선이

 

 

우주역 1번 출구엔 가위질하는 달이 떠 있어요.

 

해질녘이면 실눈이 열리는 유리 캡슐

야간 시술, 꼬리별 속눈썹 가능

눈웃음에 부서지는 하루를 마감하고

낮과 밤의 눈을 바꾸고 싶으면 찾아가는 곳.

 

미용사는 거울에 비친 머리를 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려요.

손님, 머리 모양을 보름달처럼 바꿔볼까요?

 

그녀는 달의 둘레와 지름까지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자 같아요.

달빛을 흔들어 분화구를 찾아내고

암모니아 냄새를 맡고 새치를 골라내기도 하지요.

 

저 멀리 계곡에선 북두가 어렴풋이 물길을 열어요.

솜누스*가 출렁이면 달의 뒷면에서 은하수가 쏟아져요.

헤어캡에서 터지는 기포소리

토끼가 달팽이관에서 고개를 내밀기도 해요.

 

그녀는 다시 만날 걸 약속이나 하듯

달그림자를 지우며 복숭앗빛 매니큐어를 발라요.

헤어캡에서 부적 같은 손톱달 하나씩을 꺼내줘요.

 

창밖으로 보이는 우주역 앞에는

갈 길 모르는 지구인들이 웅성거리고 있어요.

암스트롱이 살다간 집을 그들은 찾을 수 없어요.

 

툭툭 잘라낸 속눈썹이 전갈자리 같아요.

애인과 함께 안드로메다로 떠날 그날을 생각해요.

 

* 잠의 신

 

 

 

 

[당선소감]

 

벚나무에 봄비가 맺혀있는 오전 이삿짐 사다리가 올라갑니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의자는 치워지고 누구의 의자는 채워집니다. 지난달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와 출근 준비하던 중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겹벌이하고 있었습니다. 불안한 생활 앞에서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가 또 다른 세계에 한 발 내딛습니다. 늦게 공부를 시작했기에 남들보다 두서너 배 더 노력해야 했습니다. 새벽이 올 때까지 단어를 찾고 문장을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좌절과 끈기로 버텨온 시간에 첫 번째 봄꽃처럼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봄비처럼 언 땅에 낮은 자세로 더욱 정진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위안과 희망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기택 교수님의 찰진 회초리가 무서웠지만 그게 보약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울음나무문우님들 채율, 재순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남편이 고맙고, 두 딸 수연, 수아 사랑한다.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신 박덕규 교수님과 김흥기, 최대순 시인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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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통과해 올라온 작품을 또 한 번 거르고 나니 <돌고래> , <노이즈마케팅> , <맑은 엄마> , <중심> , <새벽틀> , <오늘의 운세> , <골목에 스위치를 켠다> , <목화> , 그리고 <달밤미용실> , <바지랑대> , <파릉> , <책장 다비(茶毘)> 외 등 12인의 응모작이 남았다. 전반적으로 일정한 수준에 올라 있어서 여러 차례 다시보기를 했다. 그 결과 뒤에 남은 4인 작품으로 좁혀졌다.

 

<책장 다비(茶毘)>는 낡은 책장에 있던 책들을 버리는 내용이 새로워 보였는데 비워야 비워지는 것들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필연적 과정이 부족해 보였다. <파릉>파릉등 봄작물을 경작하는 광경이 실감나게 그려졌지만 시상의 일관성이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바지랑대>젖어 늘어진 생의 무게를 떠받치는바지랑대의 형상이 볼 만했지만 언어의 중복이 심했다.

 

<달밤미용실>은 직장인을 위해 야간에도 문을 여는 미용실의 분위기를 우화적으로 형상화한 시다. 그 미용실이 우주역 1번 출구에 위치한다는 공간설정, 미용사가 달을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자 같다는 직유, 솜누스(잠의 신)가 출렁일 때 달의 뒷면에서 은하수가 쏟아진다는 환유 등이 단순히 재치에 그치지 않고 삶을 긍정하는 해학에 맞닿아 있었다. 미용실을 들어갔다가 나오기까지의 경과를 흐트러짐 없이 형상화한 데서 만만찮은 역량이 느껴졌다. 함께 보낸 시 <움푹 들어간 곳> 등도 안정감 있는 시였다.

 

<달밤미용실>을 당선으로 올리고 축하의 말을 전한다.

 

- 심사위원 박덕규(시인·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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