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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이다 / 박종국

 

 

스멀스멀 기어오른 벌레 같은 어둠이 능선을 갉아먹는 소리, 놀라 뛰는 노루 뒷발에 채인 나뭇가지 찢어지는 소리, 암노루 궁뎅이가 희끗희끗 산기슭을 적시는 저녁나절이다

 

그런 틈새에 살아가는 것들, 어슴푸레한 빛 속 어둠이 몰고 오는, 견디기 어려운 푸석거림, 가엾은 마음을 사르는 능선이 붉은 저녁나절이다

 

어둠이 빛을 지우는 부적 같은 한 장의 그림이 드러내 보이는 숲 속에는 꽃과 잎들이 떨며 진주 같은 이슬방울 떨어뜨리고, 껍질을 하나하나 벗는 산봉우리, 장엄한 시간을 알려주는 저녁나절이다

 

잃을 것도 없는 것을 잃을까 봐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저녁나절

어둠이 능선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어둠에 익숙한 하늘은 밥풀 같은 별 몇 알 오물거리고 있다.

 

 

 

 

누가 흔들고 있을까

 

nefing.com

 

 

 

출판사 천년의 시작은 제8회 시작문학상에 박종국 시인의 시집 누가 흔들고 있을까’(천년의 시작)를 선정했다고 3일 밝혔다.

 

천년의시작에서 발간하는 계간문예지 시작에서는 매년 시작에 발표된 신작시 중 뛰어난 시를 뽑아 시작작품상을 수여해 왔으나 올해부터는 내부 발표작에 한정하지 않고, 시문학계 전체를 대상으로 가장 우수한 작품집을 뽑기로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9월까지 1년간 출간된 모든 시 작품집을 대상으로 했으며 이와 함께 상의 명칭 또한 시작문학상으로 개명했다. 최종심에는 최승자의 빈 배처럼 텅 비어’, 함명춘의 무명시인’, 황인찬의 희지의 세계’, 송찬호의 분홍 나막신등이 올랐으나, 최종적으로 박 시인의 누가 흔들고 있을까가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은 이 시집에 대해 외연적으로는 경험적 구체성을 통해 농사 체험을 채집하고 그를 긍정의 눈으로 바라본 미학적 성과물이라며 다른 한편으로는 존재론적 시원을 발견해가는 마음의 우주다고 언급했다.

 

박 시인은 1997년에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집으로 가는 길’, ‘하염없이 붉은 말’, ‘새하얀 거짓말등의 시집을 냈다. 수상 시집인 누가 흔들고 있을까는 이전 시에서 보이는 형이상학적 비의에 대한 탐구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의 경험을 통해 존재론적 시원을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상식은 오는 129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다목적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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