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 김점순
나뭇잎이 흔들릴 때
가만히 그 속으로 따라가 본다
이파리가 흔들리기까지
먼저 가지가, 줄기가
뿌리를 묻고 있는 저 땅이
얼마나 많은 날을 삭아내려야 했는지
가볍게 흔들리는 것 뒤에는 언제나
아프게 견딘 세월이 감춰져 있는 것을
푸르게 날을 세우고 있다고
외로움이 없었겠는가
허공으로 길 하나 내기 위해
초승달 돋은 하늘에 가슴을 풀어놓고
얼마나 몸서리를 쳤는지
돌아앉아 숨 고르는 소리에
발 아래가 술렁거리고, 서쪽 하늘로
수만 마리의 새가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그러면서 나무는
제 한숨을
나이테 속에 꼭꼭 태워 넣고 섰을 뿐
4월, 어느 날
사라지는 것의 눈부심을
이 길에서 보았네
머리 위로 어깨 위로
한 발 앞서 내려 밟히는 낱낱의 벚꽃잎
어느 해 봄 가로에서
노을이 쏟아지는 한 곳으로 키를 세우며 달려가던
가랑잎의 군무를 본 이후
이런 빛부심은 없었네
태어나는 것 치고 찬란하지 않은 것은 없다지만
내려앉는 발걸음의 아름다움을
오늘 여기에서 들었네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이름 모를 향내와
깨어나는 새들의 날갯짓
그 위로 깔리는 꽃이파리
하
르 르
하
르르
환한 낙하
자기응시에 얼마나 솔직했으면
저렇듯 소리 없이 무너질 수 있을까
기꺼이 깨져
타인의 가슴에 불을 켤 수 있을까
나뭇가지 가느다란 품에서 꼬물꼬물
이파리들의 기지개소리 들으며
나 처음으로 깨달았네
부서지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방울새 연신 날아오르는
4월의 길에서
[심사평] 전국서 응모… 작품 수준 신춘문예보다 높아
10회 지용신인문학상을 심사하면서 늘 놀라는 것은 응모작품이 전국 각 곳에서 고루 들어온다는 점이다. 또 수준도 어느 신춘문예보다도 높다. 올해도 마찬가지여서, 처음부터 수준 높은 작품이 여러 편 발견되면서, 심사자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심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장경수의 <여우야 여우야> 외 시들은 지금까지 우리 시가 가지고 있지 못하던 날렵함과 경쾌함을 가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가령 <여우야 여우야> 같은 시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내용에 한 같은 것이 담겨 있는데도 그 가락이 조금도 청승맞지가 않다. 최용진의 <만삭>은 아기를 뱃속에 가진 젊은 엄마(아마 초산일 듯)의 심경을 그린 소재 자체가 특이한 시다. “숱진 눈썹도 검은 눈자위도 내게서 받아쓰지 말고/ 세상에 나와 나와 내 흔적이 될 생각일랑 아예 말아라?” 같은 진술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출산을 앞둔 엄마의 불안심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으로, 이 시의 호소력을 높여 준다. <안개섬>도 남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재미있는 발상으로 이 시인의 역량이 상당한 수준에 와 있음을 말해 준다. 손병걸의 <어둠이 환하다>와 <아침> 같은 시에서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으려는 의지가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접 보거나 만져 보며/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못하며 살아왔다”라고 전제한 다음 “돌이켜 보면 나의 생은/ 얼마나 많은 확인을 강요당하며 살아왔는가” “어둠이 환하다”하는 진술은 그의 장애인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는가를 알게 하는 대목이어서 자못 눈시울이 뜨겁다. 시의 전개도 무리가 없으며 시어 선택도 무난하다. 그 밖의 작품도 크게 쳐지지 않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시 공부를 해왔음을 말해 주는 것인데, 소재가 좀 단조롭다. 유재숙의 시 중에서는 <보그뜨 산에 내리는 아침>이 가장 돋보인다. 주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보그뜨 산은 몽골의 수도를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이 시는 그곳을 찾아갔을 때의 감동을 노래한 기행시라 말할 수 있겠는데, 기성시인이 쓴 경우라면 훌륭한 기행시라 할 수 있겠으나, 신인의 작품으로는 힘이 약하다는 비판을 면하기가 어렵다. ?만장굴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잘못된 대목을 꼭 집어낼 수 없이 무난하다는 것이 이 시들의 단점이 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점순의 <나무는> 시들은 맑고 깨끗하다. 찬이슬을 손에 담뿍 묻혔을 때의 상쾌함 또는 더운 여름날 깊은 산골에 들어가 차디찬 샘물을 떠 마셨을 때의 시원함, 한 마디로 이것이 이 시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다. 그렇다고 시의 구조가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나뭇잎이 흔들릴 때/ 가만히 그 속으로 따라가 본다/… 가볍게 흔들리는 것 뒤에는 언제나/ 아프게 견딘 세월이 감춰져 있는 것을”같은 대목은 이 상쾌함 또는 시원함에 이르게 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운 도정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시에 억지가 없고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도 이 시들이 가진 엄청난 미덕이다. 이른바 시창작 강좌에서 얻은 해독이 전혀 없다는 증좌다.
이상 다섯 사람의 시를 놓고 검토한 끝에 심사자들은 쉽게 김점순의 <나무는>과 <4월 어느 날>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하였다. 이 역량 있고 참신한 시인을 찾아내면서 심사자들은 여간 기쁘지 않았다.
심사위원 유종호, 신경림 시인
열 돌을 맞은 지용신인문학상에 김점순(43·천안시 두정동)씨의 시 ‘나무는’외 1편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김씨는 수상소감에서 “너무나 큰 상을 받아 아직까지 가슴이 떨린다”며 “지용신인문학상을 받은 것에 부끄럽지 않게 더 열심히 시작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점순씨는 경북대 국어교육학과를 나와 10여 년 동안 중학교 국어 교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2001년부터 천안문화원에서 시 습작을 해왔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충북대 교육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심사위원을 맡은 신경림 시인은 심사평에서 “김점순(‘나무는’ 외)의 시들은 맑고 깨끗하다”며 “찬이슬을 손에 담뿍 묻혔을 때의 상쾌함 또는 더운 여름날 깊은 산골에 들어가 차디찬 샘물을 떠 마셨을 때의 시원함, 한 마디로 이것이 이 시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다”고 밝혔다.
또 “시에 억지가 없고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도 이 시들이 가진 엄청난 미덕이다”며 “이른바 ‘시창작 강좌’에서 얻은 해독이 전혀 없다는 증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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