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나는 문경새재의 저녁으로 눕는다 / 황종권
이것은 곰의 갈비뼈 속으로 난 길이다
저 억새풀이 곰의 털이라는 것은 바람만이 안다
뻣뻣하지만 구불거리는 나무는 곰의 이빨
돌부리에 넘어진 무릎만이 비로소 신발 끈을 매고
첩첩 뿌리로부터 멀어지는 꽃들이 곰의 위장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발자국을 밀어올리는 것은 길이 아니라
곰의 숨소리, 으스스 별자리가 돋는 것도
제 등허리를 바위에 긁은 까닭이다
발목이 늘 벼랑인 사람들이 있다
떨어지지도 주저 않지도 못하는 힘으로
아비가 될 사람들은 발목에 불씨를 지폈으리라
아니 발바닥에 물집 잡히는 힘으로
신열 들키지 않게 제 짐을 산맥에 맡겼으리라
문경새재, 산적도 피해 가는 길
피처럼 붉은 달, 곰의 내장을 밝혀준다
울 수 없어 노래하고 노래할 수 없어
발목으로 저녁을 불러들였을 나의 아비들
젖은 눈썹을 지닌 사람은 저 고원이 고향이다
바람마저 곰의 뼈를 빌려 노래하는 문경새재
흙바닥에 나의 이마가 찍혔다
달밤은 춥고 나는 닳도록 걸어야 할 길이므로
목 길고 허리 가는 억새꽃밭의 저녁으로 눕는다
[우수상] 문경새재 / 최재영
억새풀 우거진 고갯길에 달빛이 휘황하다
조령과 주흘을 곁에 둘러앉히고
굽이굽이 넘어 온 길을 둘러보는데,
달빛을 가득 품고서야
비로소 환해지는 옛길이다
새들은 벌써 다 건너갔을까
오래된 그리움들이 폭설처럼 쏟아지고
막사발은 천년의 비경을 품고 고요하다
수백리 물길을 여는 초점(草岾)*에 이르러
새재를 넘던 옛사람을 생각한다
물굽이 시퍼렇게 일으켜 세워도
못다 이룬 꿈이었을까
아슬아슬 벼랑길을 비껴가는 바람은
계곡마다 눈물꽃을 피워내느라
허기진 산기슭 한사발은 들이켰으리
먼 후일 가슴 뜨거워진 내가 찾아와
다시 맨발로 천년을 거슬러 오르리니,
달빛이 슬어놓은 푸른 전설이
아직도 구슬픈 아리랑곡조로 흘러가는
아, 문경새재
* 초점(草岾): 낙동강 발원지 중 하나 (태백 황지, 영주 순흥, 문경 초점)
[우수상] 문경새재 / 심강우
문경에서 나는 박달나무는 홍두깨가 되었지요
주흘산 조령산을 넘어온 구름이 보자기란들
사시장철 굽잇길 다듬잇돌을 시늉하던 걸음
성황당 고개에서 비손을 하던 여인,
자드락자드락 해동갑으로 잇대던 구김살
어이 다 싸맬 수 있을까요
때까치 울고 오목눈이 직박구리 추임새에
저 멀리 조령관 너머 수안보 지나 한강으로
신수 훤한 도포자락을 언제 또 보려는지,
옷고름에 젖은 사연 낙동강 굽이마다
새재라 새재, 눈 밝은 새들의 기별도
마애비로 남아 하인의 옹심도 선비의 큰마음도
가루를 자청한 기와 조각이 되었지요
새재에 불던 바람은 길이 되었지요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한 줄로 꿴
오르막 내리막 패랭이 쓴 장꾼이 걷던 길
넘으면 시름이요 앉으면 푸념이라던
질경이 바랭이 억세게 핀 황톳길
가도 가도 첩첩산중 애옥살이 닮은 길
어이 다 지울 수 있을까요
새재를 넘어도 새재
새재에 못 미쳐도 새재
사람살이 천길만길 다함없는 발짝으로
문경에 가면 우리 한세상 닮은 새재가 있지요
경사를 들을 날 있다고 문경聞慶
계절이 빗장을 걸고 새들이 문지기를 서는,
새재가 있어 문경이 완성된 그런 곳이 있지요
[심사평] 재 넘어가는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들
문경은 주흘산, 황장산, 희양산, 대야산 등 수많은 명산이 솟아있고 가파른 고개 문경새재가 있는 곳이다. 새재 길 구비에는 문경새재아리랑 가락이 박달나무 푸른 잎새를 흔들고,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선비의 못 다한 꿈은 여궁폭포 흰 물줄기로 흘러내린다. 문경 전통 찻사발에 담긴 말차의 연둣빛은 마음을 헹구어주고, 붉은 보석 오미자와 문경 꿀사과는 우리의 몸을 정화시킨다. 이렇게 문경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풍성한 특산품으로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시를 통해 이곳 문경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문경새재를 전국으로 알리고자 문경새재문학상을 제정하여 공모하였다. 작년에 개최한 문경새재 창작 시 공모를 좀 더 문학적인 성취도가 있는 좋은 작품을 얻고자 문경새재문학상으로 승격시켰다. 응모기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총 178편의 많은 작품이 투고되었고 작품 수준도 향상되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심사를 하면서 아쉬운 점 몇 가지를 우선 지적하고자 한다. 한 편의 시가 위대한 건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은 세계가 이웃과 가족처럼 통하는 시대이다. 인터넷으로 문경과 문경새재를 검색하면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접하는 시대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정보는 정보일 뿐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시는 단순 정보가 지니지 못한 감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검색 한 번에 다 보이는 정보를 짜깁기해서 만든 시는 시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또한 시는 시인만의 눈으로 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문경새재가 판에 박힌 활자 속의 장소가 아니라 무궁무진한 상상속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시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시가 가진 힘이다. 여기에 낭송을 통한 소리의 힘이 더해지면 그 감동의 폭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일부의 시들에서 안일하게 단순히 정보의 짜깁기로만으로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저것 문경에 대한 것들을 이어 붙여 도무지 내용이 연결이 되지 않았다. 문장도 하나의 생명체이다. 앞 뒤 흐름이 있고 전체적인 조화가 있어야 한다. 함축된 시어라 해도 불구의 문장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또 어떤 시들은 시작은 좋았으나 마무리가 허술해서 안타까움을 주었다. 마치 덜 그린 그림 같이 좋은 색감과 바탕으로 시작했으나 마무리를 안 하고 끝낸 느낌이었다. 그리고 가장 심사위원들이 안타까워했던 점은 응모자의 무성의한 태도이다. 공모 요강이나 공모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아무 관련이 없는 시들을 보내오는 경우이다. 적어도 문학상에 공모를 한다면 공모 요강을 꼼꼼히 훑어보고 공모를 하였으면 한다.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은 시를 쓰지 않는다는 철칙을 가진 시인들도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문경새재’에 관한 시를 쓰면서 ‘문경세재’라는 오자는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자신이 쓰려고 하는 소재나 제재에 대해 이름도 정확히 모르면서 어떻게 그곳에 대해 쓴 시가 감동을 주겠는가. 그것은 정말 사랑한다고 외치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대상은 황종권의 「나는 문경새재의 저녁으로 눕는다」 로 돌아갔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문경새재의 표면적인 풍경을 그리는 것에 그쳤다면 황종권의 작품은 시각이 달랐다. 문경새재를 품은 깊은 골짜기와 산들을 곰으로 형상화한 점이 굉장히 신선했다. 저녁이 오도록 높고 험한 고개를 넘어 길을 떠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아비들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나 또한 그 길을 닳도록 걸어야 함을 담담히 말한다. 주흘산 영봉을 지나 뒤를 돌아보면 봉우리들이 곰이 돌아앉은 형상이라는 점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거대한 곰의 위장 속으로 난 길을 따라가며 발자국을 밀어 올리는 숨소리를 듣고 곰이 긁어 만든 별자리를 본다는 것은 문경새재를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또 단순한 하나의 고개에서 누구나 걸어 넘어야 하는 생의 고개로 확장되는 시의 전개가 훌륭했다. 대상 작품으로 손색이 없었음을 밝힌다.
우수상은 최재영의 「문경새재」 심강우(본명:심수철)의 「문경새재」 두 편으로 선정되었다. 공모 요강에 공지된 것처럼 문경새재문학상은 문경새재시낭송대회와 함께 개최된다. 당선작은 다음 낭송대회의 지정 시로 지정이 되어 낭송이 된다. 그러므로 낭송시로서의 적합성을 함께 본다. 리듬감과 전달력이 있어야 하고 너무 장시이거나 단시이면 곤란하다. 이 두 편의 작품은 그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최재영의 「문경새재」는 달빛 속의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느껴지는 감흥을 잘 표현했다. ‘달빛을 품고서야 가득 환해지는 길’처럼 세밀한 관찰과 새들도 넘기 어려웠다는 험한 고개를 어찌 오갔을까에 대한 의문을 ‘새들은 벌써 다 건너갔을까’ 라는 물음으로 아우르고 있다. 가파른 초점에 이르러 느낀 그 옛날 청운의 꿈을 안고 이 고개를 넘어갔을 옛사람에 대한 연민을 ‘바람이 눈물꽃으로 피워내느라 허기진 산기슭을 들이켰’다고 풀어내는 점도 좋았다.
심강우의 「문경새재」는 문경새재를 넘던 사람들의 애환을 우리가 한 세상 살아가는 모습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좋았다. 과거보러 떠나는 선비의 꿋꿋한 꿈도 비손하던 여인의 간절함도 길 위에서 생을 다 보내는 장꾼의 발걸음도 이제는 모두 한 줄기 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세상만사 많고도 많은 사연과 일들도 시간이 가면 다 바람이 되고 단단한 마음도 세월 앞에서는 가루가 되어 흩어짐의 필연성을 말하고 있다. 험한 고개 가로막고 있어도 사연 깊은 강물 놓여있어도 천길만길 걸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생과 새재의 공통점을 시로 잘 나타냈다.
문경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보내주신 많은 작품들이 있었으나 모두에게 당선의 영광을 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다. 당선되신 분들에게는 축하를 다른 분들에게는 다음 기회의 기약을 드린다
<본심에 오른 작품>
<순례의 길 / 최형만> <문경새재를 걷다 / 양소은> <문경새재의 봄 / 강수화> <문경새재 / 한춘화><아직은 주흘산이 / 김국현> <새재의 밤 / 길덕호> <문경새재에서 / 이생문> <문경새재 / 박덕은><문경새재, 바람따라 / 박진옥> <문경새재 / 서희정> <새재여, 문경새재여 / 박영원> <말하는 나무 / 조긍><과거길의 화법 / 홍경흠> <먼데서 오고 있을까요 / 이 훈> <꽃바람 / 길덕호> <토끼비리 / 최정희><박달나무 숲에는 메아리가 산다 / 이원규> <붉은 꽃, 오미자 / 김국현>
심사위원 : 엄정옥, 도명희, 황봉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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