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장례식장 / 이영란
첫사랑의 이마를 떠올리다가 잠이 들었다
구름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내 이마를 만지며 잠에서 깼다
이미 흘러간 구름은 돌이킬 수 없는 나의 흔적처럼 멀다
육개장의 표면에 내 입술을 겹쳐본다
내 입술의 피부는 생생한 기억들
국화 향기는 왜 이리 시끄러운가
꽃잎 사이로 날아드는 나비의 몸짓
내가 펴지 못한 꿈같은 꿈이다
내 등에 피었던 꽃은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의 무릎이 쌓인 바닥
소리 없이 일어서는 표정들은 내일의 약속 같은 것
언젠가 죽었던 사람들의 기억이
한낮의 햇살처럼 탁자 위로 미끄러진다
돌아앉아 화장을 고치는 여자의 얇은 등이
거울 속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사람들이 벗어 놓은 신발들은 방향을 모르고
조의금 상자 안에 모인 사람들, 오래도록 말이 없다
영정사진 속 나는 꽃이 되는 꿈을 꾼다
의심되지 않는 내일이 걸어온다
[당선소감]
터널
나를 의심하는 날이 많았다
꽃기린을 보며 내 목을 만져보기도 했다
새해가 되면 공책을 샀다
공책아, 미안해
절망 대신 설렘을 쓸게
임승빈 교수님의 쓴소리가 달콤했다
‘너머’를 바라볼게요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인사 올린다
그늘진 곳에도 눈을 열겠다
구름이 걷히고 있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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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거쳐 최종 단계에 오른 심사대상은 도합 10명의 작품이다. 근자 우리 시단의 시적 ‘기질’이 발휘된 탓일지는 모르겠으나, 본심에서 논의된 작품들은 대체로 이른바 탈(脫)서정 혹은 다른 서정의 개념이 포괄하는 의미의 영역을 거침없이 횡단하고 있었다. 그만큼 전통서정시의 문법으로는 21세기적 삶의 정서와 체험을 온전히 담을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어법과 양식이 필요하다는 시적 자의식을 공유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런 경향은 기존 전통서정시의 평면성과 경직성을 거부하고 나름의 다양한 형식실험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분명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일부의 작품들은 여전히 자극적이고 파편화된 언어로 ‘실험을 위한 실험’의 시도, 즉 시류 추수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시와 언어철학의 상관성에 관한 고민이 모두에게 필요할 듯하다.
마지막까지 검토된 작품은 조은숙 씨의 <도미 레지스탕스>와 <똠얌꿍빛 과수원>, 김미연 씨의 <잉여의 습관>과 <손에 쥔 것>, 그리고 이영란 씨의 <꿈꾸는 장례식장>이다. 세분의 작품은 오랜 습작의 세월이 단박에 느껴질 만큼, 시적 구성이 안정적이고 견고하다. 또한 사유의 깊이가 감지되며 발전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다만 앞선 두 분의 경우, 오래 걸러진 말들 대신에 불필요한 언어의 노출이 이번에 간혹 없었는지, 조심스럽게 질문하고 싶다.
이영란 씨의 <꿈꾸는 장례식장>은 비교적 소박한 시어를 구사하면서도 특유의 개성이 엿보인다. 시상의 전개도 유연하며 독자 상상력을 견인하는 힘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선정 기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며 이영란 씨의 손을 들어줬다. 무엇보다도 시적 사유의 진지함에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 나호열(시인), 이성천(문학평론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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