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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꼭대기에 앉은 새 / 유홍준

 

 

대나무 꼭대기에 앉은 새가 먼 데를 바라보고 있다

 

대나무 우듬지가 요렇게 살짝 휘어져 있다

 

저렇게 조그만 것이 앉아도 휘어지는 것이 있다 저렇게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것이 있다

 

새는 보름달 속에 들어가 있다

 

머리가 둥글고, 부리가 쫑긋하고, 날개를 다 접은 새다 몸집이 작고 검은 새다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

 

창문 앞에 앉아

나는 외톨이가 된 까닭을 생각한다

 

캄캄하다, 대나무 꼭대기를 거머쥐고 있던 발가락을 펴고 날아가는 새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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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통영시문학상에 유홍준·이은규·우은숙·최진영 씨가 선정됐다.

 

통영시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강수성)는 한국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통영 출신 문학인의 정신을 기리고 한국문학발전에 이바지한 유능하고 역량 있는 작가들을 시상하고자 통영문학상을 마련, 1일 올해 수상작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통영시문학상은 '청마문학상' '김춘수 시문학상' '김상옥 시조문학상' '김용익 소설문학상' 4개 부문을 시상하며, 수상작은 작년 6월부터 지난 5월까지 전국에서 출간된 모든 작품집을 대상으로 예심과 본심 등 엄정한 심사 과정을 거쳐 선정한다.

 

올해 청마문학상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유홍준, 시인동네), 김춘수 시 문학상은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이은규, 문학동네), 김상옥 시조문학상은 <그래요, 아무도 모를 거예요>(우은숙, 시인동네), 김용익 소설문학상은 <겨울방학>(최진영, 민음사)이 뽑혔다.

 

청마문학상 수상자에게는 2000만 원의 상금이, 그 밖의 수상자에게는 1000만 원씩 총 5000만 원의 창작지원금이 전달된다. 시상식은 코로나19로 말미암아 10월 중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하향 조정되면 통영문인협회 주관으로 진행된다.

 

한편, 통영시는 청마 유치환(1908~1967)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자 2000년 청마문학상을 제정했다. 이후 2015년부터는 청마, 김춘수, 김상옥, 김용익 등 4개 부문 수상자를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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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 류인서

 

 

여기서 만났을 거다 우리

미끄럼틀과 시소, 혼자 흔들리는 그네, 생울타리에 기댄 작은 청소 수레가 속한

모래의 세계

 

이쪽 기울 때 너는 떠올랐니

우리는 평균대가 아니어서

균형점을 앞에 두고 나뉘어 앉는 세계

시소는 약속이 아니어서

잽싸게 무게를 버리며 달아날 수 있다

떠 있는 빈자리와 쏟아지는 이의 우스꽝스런 엉덩방아,

이것은 갑에게서 가볍게 을이 생략되는

저울놀이

 

데워진 모래는 한결 기분이 좋다

 

굴을 파고 두더지 놀이를 하면

구근 대신 손을 묻어둘 수 있다

꽃과 쓰레기 장난감 블록들

싹 트는 경작지

원통의 미끄럼 터널 속으로 청소부처럼 사라지는, 나쁜 공기처럼 빨려 나오는

아이들

굴뚝을 지나는 그을음 묻은 해

바짓단에 떨어지는 해변

 

꽁초와 휘파람,

아무래도 이곳은 빌딩 창문에서 더 잘 보이는

어른들의 세계

토르소로 떠다니는 구름 우주복

잠깐 나타났다 지워지는 그림자들 숨소리들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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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류인서, 박명숙 시인과 김유진 소설가가 ‘2019 통영시문학상’ 4개 부문의 수상자로 선정 됐다.

 

통영시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강수성)는 지난해 71일부터 올해 531일까지 전국에서 출간된 모든 작품집을 대상으로 예심과 본심 등을 거쳐 통영시문학상 4개 부문(청마, 김춘수, 김상옥, 김용익) 수상자를 선정했다.

 

청마문학상 수상자는 김지하 시인으로 시집 흰 그늘’(출판사:작가)이며 김춘수 시문학상은 류인서 시인의 작품집 놀이터’(출판사:문학과지성사)이다.

 

김상옥 시조문학상은 그늘의 문장’(출판사:동학사)을 펴낸 박명숙 시인에게 돌아갔으며 김용익 소설문학상에는 보이지 않는 정원’(출판사:문학동네)을 낸 김유진 소설가가 선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103일 통영예술제 개막식에 맞춰 한산대첩광장에서 열리며 청마문학상 수상자에게는 2천만 원, 그 밖의 수상자에게는 1천만 원의 창작지원금이 주어된다.

 

한편 통영시는 한국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통영출신문학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0년 청마 유치환(1908~1967) 시인의 청마문학상을 제정했으며, 2015년부터 청마, 김춘수, 김상옥, 김용익 등 4개 부문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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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 박판식

 

 

모자와 박쥐우산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는 물건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다

애완용 개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생명이 있다면

더 어울리지 않는다

내게는 딸이 없다, 나와 어울리지 않아서다

 

하지만 내 인생은 태어나지 않은 딸과 늘 동행하고 있다

웅덩이가 모자처럼 떨어져 있다 인생은

그 위를 지나가는 멀리서 온 구름이다

옷을 입은 개가 맨발일 때

이 경이로운 세상을 둘러보기 위해 얼굴이 세 개나 네 개로 늘어날 때

모자 대신 접시를 머리에 얹고 걸어도 이상할 게 없다

 

개업식 경품 행사로 1등 자전거에 당첨된 일이 있다

빵집 주인이 내 이름을 세 번 연속 불렀는데

끝내 나가지 않았다, 빵집은 반년 만에 폐업했고

이 시장 골목에선 흔한 일이다, 처녀 시절 아내가 키우던 개가 죽었다

개는 죽기 직전 젖은 걸레 위로 올라갔고

자신의 똥 위로 올라갔고 이부자리 위로 올라갔고 나의 배 위로

올라갔다, 죽은 개는 나와 어울린다, 개가 죽고 문득

아들이 태어났다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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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문학상에 박판식, 김상옥 시조문학상 박옥위, 김용익 소설문학상에는 조용호가 수상자로 결정됐다.

 

통영문학제추진위원회(회장 김혜숙)는 올해의 통영문학상 수상자로 김춘수 시문학상에 박판식 시인의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김상옥 시조문학상에 박옥위 시조시인의 '조각보 평전', 김용익 소설문학상에 조용호 작가의 '떠다니네'를 선정했다고 26일 공식 발표했다.

 

2014년 통영문학상 심사는 시 부문에 이기철, 장석주 교수, 시조부문은, 윤금초, 홍성란 시인이 소설 부문은 임철우 작가와 김원일 교수가 맡았다.

 

시 문학상 수상자 박판식 시인은 1973년 생으로 경남 함양에서 출생해 동국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문학과 경계편집위원과 문학선편집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동국대와 광운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그는 2001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해 2003년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와 2004년 시집 밤의 피치카토’ 2013년 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를 발간했다.

 

이기철, 장석주 심사위원은 일곱 권 중에서 네 권을 최종후보로 검토했다. 문성해 시집 입술을 건너간 이름윤성택 시집 감에 관한 사담들이승희 시집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박판식 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등이다.

 

네 분 시인들은 각자의 개성을 활짝 꽃 피우고 있어서 누가 수상자가 되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심사자는 고심 끝에 독창성과 개성에서 놀라운 성취를 보여준 박판식 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2014년도 김춘수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택했다. 고 평했다.

 

김상옥 시조문학상 당선자 박옥위 시인은 한국 시조문학계의 중견 시인이다. 그녀는 1941년생으로 1967년 무렵 울산문인협회 한국지부회원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현대시조와 시조문학에 동시(同時)천료되면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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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 / 조동범

 

 

오늘은 축제의 밤이야

검은 피와 불꽃이 빛나는

불행한 장미의 밤이지

붉은 장미를 바라보며

카니발의 행렬이 폭소를 터뜨리지

고깔모자를 쓴 광대는

신나는 나팔에 매달려

말랑하고 부드러운 리듬을 만들어내지

카니발의 밤은

깊고 아름다워

하늘을 가득 메운 색종이가

바람을 타고 허공을 맴도는,

그런 밤이야

카니발의 여인은 노래를 부르며

나팔 속으로 행진을 하고 있어

카니발의 큰북이

심장을 따라

붉은 리듬을 만들고 있어

오늘은 붉은 심장의 밤이지

벌거벗은 여자들은

광대들의 고깔모자를 빼앗아

공중에 던지지

흥겨운 공중은

빙글빙글 도는 고깔모자로 가득해

검은 피와 불꽃이 빛나는

검은 왕관의 밤

여왕은 빛나는 지휘봉을 들고

최선을 다해 카니발을 지휘하지

나팔과 큰북이

검푸른 어둠을 서성이는 밤

카니발 너머에는

동굴처럼 길고 막막한

어둠이 기다리고 있지

어둠을 향하면서도

끊임없이 즐겁고 유쾌한

카니발의 행렬

여왕은 최선을 다해 웃고 있지

최선을 다해,

지휘봉을 돌리고 있지

고깔모자와 검은 피와

불꽃이 빛나는,

검은 왕관의

카니발 위에서

 

 

 

 

카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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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통영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김춘수 시문학상 조동범 시인의 '카니발', 김상옥 시조문학상 조동화 시조시인의 '영원을 꿈꾸다', 김용익 소설문학상 재미소설가 박경숙의 '빛나는 눈물'이 각 부문작로 선정됐다.

 

통영문학제추진위원회(위원장 김혜숙 통영문인협회장)27일 시, 시조, 소설 장르별 심사위원회를 개최, '2013년도 통영문학상' 수상자를 최종 선정했다고 밝혔다.

 

심사는 박주택, 장석남 시인이 시 부문, 이우걸, 유재영 시인이 시조 부문, 백시종, 방현석 소설가가 소설 부문을 각각 맡았다.

 

김춘수 시문학상 수상자 조동범 시인은 경기도 안양 출생으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한신대 문예창작학과를 거쳐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 문학동네 신인상 시 부문에 당선 등단했으며, 작품집으로는 시집 '심야 베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산문집으로는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문학평론집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등이 있다. 현재 계간 시인동네, 격월간 시사사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중앙대, 서울예대, 한서대 문예창작학과에 출강 중이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조동범의 시집 '카니발'(문학동네)은 도시 생태학적 시선으로 자본과 속도의 문제를 탐구하며 불길한 죽음 의식과 팽팽히 대결, 은폐돼 있는 인간의 심층적 감정이나 원초적 욕망을 밀도 있게 관찰해 시속에 전각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박주택 심사위원은 "김춘수 시세계와 멀리 떨어지지 않는 탁월한 시적 고투를 살피는 한편 최근 시적 활동을 활발, 시적 성취가 남다른 것을 기준으로 본선에 오른 10여 권 중 최종 5권을 다시 심사, 최종 조동범의 카니발을 선택했다"고 심사기준을 밝혔다.

 

"조동범은 체험을 깊이 있게 인식해 자신을 세계와 고립시키지 않고,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서 인간과 현실의 관계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해 온 뛰어난 시인"이라고 평했다.

 

조동범 시인은 "시 쓰기가 설렘과 열정으로만 가득했던 날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언제나 일상을 벗어난 순간들이었고, 그런 날들이야말로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다나는 나의 시가 일상성의 무의미한 파국에 함몰될까 언제나 두려웠고, 그것을 피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 쓰기는 지리멸렬한 파국을 향해 치닫는 것만 같았다. 김춘수 시문학상 수상 소식은 이런 내게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주었으며, 오랜 기간 인내했던 시인으로서의 삶을 어루만져주었다. 가족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통영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75일 오후 7시 통영문학제 개막식과 함께 문화마당 특설무대에서 열리며, 창작지원금으로 각각 1천만원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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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리폼 하우스 / 김선호

 

 

김 씨는 원피스를 마름질한다

고장난 라디오가 정오의 희망 음악

주파수를 찾으며 두리번거리고

서랍에선,

몇 년을 곰삭아 빛을 잃은 단추들과

조각 천들이 빠끔히 밖을 내다본다

어제는 휠체어 소녀가 원피스를 가지고 왔다

작업대 위에 원피스를 놓고 소매를 자른다

 

옷이 날개라고,

레이스를 잘라 시침질하여 달고

절뚝이는 치마 길이를 허리에 맞게 잘라

최신 스타일 나비 모양 옷을 완성했다

 

옷걸이에 걸린 리폼한 원피스는

선풍기 바람에 날개를 달았으나 문에 부딪치며

자리에서 가늘게 떨고 있다

그들도 날고 싶은 희망주파수를 찾고 있는 중이다

실오라기 풀리듯 빛이 들어오는

의류 수선점 지하

시간을 자르고 계절을 재단하는 재봉틀이

다시 햇살을 마름질한다

 

 

 

 

햇살 마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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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정신의 아픔 속에서 피는 꽃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김춘수 선생님의 시 을 읽고 또 읽으며 아련한 미답의 세계를 꿈꾸던 시절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시들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시를 스크랩하여 벽에 붙여놓고 매일 암송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저는 시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리고 또 우연히 어느 문화재단의 후원금을 받아 첫 시집을 내었습니다.

 

그렇게 얼떨결에 밖으로 나왔지만 아무도 제게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쉽게 시인이 되었고, 첫 시집을 간행한 것이지요. 그때 시인이란 이름은 몸에 걸치는 것이 아니라 닦고 빛을 내야 광택을 내는 광물임을 알았습니다. 문학이 사치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시란 표현의 수사나 시류의 모방에 있지 않고 사유의 깊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잠 못드는 밤이 많았습니다. 기진맥진해 펜을 놓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고통의 자기 고백이 이번 수상작이 된 두 번째 시집 햇살 마름질이었는데 행운은 이렇게 축복처럼 왔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김춘수 선생님을 기리는 이 상을 받다니요. 통영에서 이 소식을 알려주었을 때 저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기쁨 뒤엔 겁이 덜컥 났습니다. 이 큰 상을 감당할 수 있을 지, 혹 누가되지 않을 지, 앞으로도 이 명예에 맞는 시를 써낼 수 있을지, 꼬리를 무는 걱정이 상의 무게만큼 이나 무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토록 갈망하고 동경했던 세계라서 더욱 값지게 생각합니다. 선배님들이 걸어 오셨듯이 어둡고 쓸쓸한 길을 열심히 걷겠습니다. 앞으로 이 문학상이 기대하는 시인으로 성장하는데 한 눈을 팔지 않겠습니다.

 

김춘수 시인은 시안(詩眼)에서 시에도 눈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의 눈은 일상적인 사람의 눈과는 달리 이쪽은 보지 않고 저쪽도 보지 않고 그쪽만 보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고 했습니다. 시의 눈으로 바라 볼 때 한 송이 꽃이 피어난다고 했듯이 저도 바람에 시달리고 비를 달래며 꽃을 피워 보겠습니다. 그들과 같이 쪼그리고 앉아 햇빛과 구름과 새 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제가 수상하도록 배려해 주신 분들 뜻 잊지 않겠습니다. 그간 제 시들을 지켜보아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많이 부족한 제 시를 읽고 격려해주신 심사위원님 깊이 감사 인사 올립니다. 아름다운 통영을 문학의 메카로 만드느라 애쓰시는 관계자 여러분께도 마음 단정히 하고 인사드립니다.

 

 

 

 

오래된 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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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두레박을 던져 시를 길어 올리다

 

2012년 김춘수시문학상에 응모된 시집의 수는 모두 55권이었다. 이 가운데 예심을 거쳐 두 본심위원에서 전달된 시집은 21권이었다. 본심위원은 심사에 들어가기 전에 다음과 같은 심사기준을 정하였다.

 

첫째, 한국시의 올바른 건강성 회복에 기여할 만한 깊이를 지닌 시집.

 

둘째, 올바르지 않은 문장, 기이한 어법 등 작금의 시단이 노출하고 있는 부정적인 요소를 덜 지닌 시집.

 

셋째, 독자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시류에 영합하는 난해성을 보이는 시집은 가급적 배제.

 

넷째, 삶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탐색을 보여주고 있으며 건강한 세계관을 가진 시인의 시집.

 

다섯째, 김춘수 시인의 시정신을 이을 만한 유망주의 시집.

 

이런 기준을 정하고서 심사에 임하고 보니 5권의 시집으로 압축되었다. 어떤 경우 심사위원이 해설을 쓴 시집도 있었고 표4 글을 쓴 시집도 있었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시인의 시집도 있었다. 이러한 사적인 것은 배제하고 오로지 시집의 질적 함량을 놓고 따지면서 후보 시집을 압축해 나가다가 최종적으로 남게 된 시집이 김선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햇살 마름질(서정시학)이다.

 

예심 통과작 21권 안에는 유명세는 누리고 있는 시인의 시집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지만 김선호 시인은 등단 11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내는 무명에 가까운 시인이다. 논의 과정에서 본인에게 큰 격려가 되어 발전의 계기로 삼을 만한 시인의 시집이면 좋겠다는 얘기도 나왔고, 중앙문단에서 주는 문학상을 2회 이상 받은 이는 고려하자는 얘기도 나왔다.

 

햇살 마름질은 전통과 실험, 일상(日常)과 이상(理想), 자아와 세계, 추억과 기억, 체험과 상상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가 그다지 어렵지 않으면서도 메시지의 깊이는 옛 우물같다. 편편의 시 중에서 처지는 것이 없다는 것도 강점이지만 인생의 희로애락, 아니, 인생살이 가운데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슬픔과 아픔의 깊이 속으로 두레박을 던져 은유와 상징의 물이 철철 넘치는 시를 길어 올리는 시인의 노력이 십분 느껴진다. ‘종합진단연작시는 특히 더 좋았다. 부박한 언어의 유희가 시단의 주류인 양 유행을 타고 있어 걱정스러운데 김선호 시인의 시는 다행히도 소재와 언어에 대한 대단한 집중력으로 시적 긴장감을 어느 한 편에서도 잃지 않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김선호 시인의 햇살 마름질은 애당초 염두에 두었던 심사기준에 가장 적합한 시집이었다. 그래서 두 심사위원은 수상결정에 흔쾌히 동의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 오세영,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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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는 / 박완호

 

 

송사리가 뛰어올랐다 내려앉은

수면이 파르르 떨린다, 소심한

물낯을 흔드는 것은 물고기를 놓친

허공의 자책, 처음 온 곳으로 햇빛을 되돌려 보내는

비늘의 매끄러운 살결에 정신을 놓아버린

바람의 한숨, 조그만 동심원을 그리며

가라앉는 작은 물고기가 사실은

허공의 전부이고 바람의 온몸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 고요하던 수면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은

너와 나, 너의 순간이 나의 순간 위에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얹었기 때문, 잔잔한

물의 낯에 한 겹 한 겹 지문을 새기는 일,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기 때문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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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문인협회와 통영문학제 추진위원회는 22일 '2011 통영문학상' 3개 부문 김춘수 시 문학상, 김용익 소설 문학상,김상옥 시조문학상의  당선자를 발표했다.

 

통영문학제 추진위원회(위원장 박동원) 측은 김상옥 시조 문학상 선정 과정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심사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심사위원들의 결정을 존중해  터무니 없는 의혹에 대응하지 않고 원안대로 수상자를 발표한다고 밝혔다.

 

초정 김상옥 시조문학상 수상작이 다른 문학상에서 수상한 작품을 선정해 규정을 어겼다는 보도에 따른 내용으로 "그런 규정은 없다"고 문학제 관계자는 일축하며 "기사가 오보였다"고 설명했다.

 

올해 각 상을 수상하게 된 3인은 김춘수 시문학상에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를 출품한 박완호 시인 김상옥 시조문학상에는 '나를 운반해온 시간의 발자국이여'에 이우걸 시조시인, 김용익 소설문학상에는 '겨울소나타'를 출품한 우선덕 소설가가 각각 영광의 수상자로 결정됐다.

 

김춘수 시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박완호 시인은 1965년 충북 진천 출생으로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 안의 흔들림','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아내의 문신','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등이 있고 현재 성남 풍생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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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망설임 없이 / 김충규

 

 

살얼음 같은 어둠을 쪼개며 나비가 날아왔다

그 틈새로 딱딱해지지 않은

액체의 어둠이 주르르 쏟어졌다

날개가 젖어서 나비의 비행이 기울었다

관을 열고 온몸이 얼룩진 시신이 나와

나비 쪽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아무 망설임 없이 관 속으로 나비가 들어갔다

펄렁임을 멎고 나비가 누워 눈을 감았다

쪼개졌던 어둠이 봉합되는 소리

미세하고 허공을 긋고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스스로 관이 닫히는 소리

시신이 관을 짊어지고 숲으로 사라졌다

질척한 흙길에 발자국 하난 남지 앟고

고체가 된 어둠이 숲을 감쌌다

쥐들이 다 죽어버려서 숲이 고요했다

 

 

 

아무 망설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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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문학제추진위원회(위원장 강수성)가 '2010 통영문학상' 수상자를 최종 선정했다.

 

통영문학제추진위원회는 김춘수 시문학상에 김충규 시인의 <아무 망설임 없이>(2010, 문학의 전당), 김상옥 시조문학상에 이달균 시조시인의 <말뚝이 가라사대>(2009, 동학사), 김용익 소설문학상에 소설가 김정남의 <숨결>(2010, 북인)을 각각 선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문학상에는 전국에서 시부문 27명, 시조부문 7명, 소설부문 8명이 응모했다. 특히 시 부문에 많은 사람이 응모하여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송수권·정일근 시인이 시부문을, 박시교·이지엽 시인이 시조부문을 심사했으며, 소설 부문에 소설가 강석경·유익서 씨가 심사를 맡았다.

 

김춘수 시문학상 수상자 김충규(46) 시인은 진주 출신으로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김상옥 시조문학상 수상자 이달균(54) 시인은 함안출신으로 1995년 무크 '시조시학'에 <생명을 위한 연가> 9편의 연작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김용익 소설문학상 수상자 김정남(40) 소설가는 2002 <현대문학> 평론과 2007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됐다. 통영문학상 시상식은 내달 1일 오후 7시 통영문학제 개막식과 함께 문화마당 특설무대에서 열리며 창작지원금 1000만 원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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