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제를 사랑한 / 김추인
-매혹을 소묘하다
바람을 지운다
소리를 지운다
창을 설핏 열어 빛을 소환한다
하오의 잔광이다
동쪽 문은 유리의 캠버스
물의 입자들이 캠버스 위에서 응결되는 중이고 보얗게 채색되는 중이고 무거워진 몇 개
물방울들 중력 쪽으로 가파르게 하강하며 긴 발자국을 남긴다 물의 족적 물의 붓질
캠버스 위 몇 개의 길고 투명한 금줄들은 스크레치 기법일 것이다 샤워실에선 더 촘촘해
진 김, 아지랑이
시계 소리는 화면 밖에서 똑딱이게 두어라
소녀가 뭍에서 오고 있으니
젖은 살내,
<타올을 든 소녀>*쪽으로 쏠리는 펄럭이는 후각들
팔 하나가 불쑥 액자 속으로 들어가 몸을 반쯤 가린 무명 타올을 벗겨내며 빛을 조금 더 불러 앉힌다
전라의 소녀
어디선가 휘리릭 ~날아오는 입바람 소리들
아니다 역시 셀렘은 은밀하고 순연해야...과한 것은 금기, 팔에 걸치고 있던
무명 타올을 그녀에게 돌
려준다 무채색으로 일어서는
<타올을 든 소녀>
아직 더운 김 날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독과 허무의 잿빛,잿빛은 언제 봐도
눈이 부시다 제 본성의
색감으로 소녀를 감고 도는 추상의 오브제들도 빛난다 움직이는 수증기며 시
계 소리 그리고 유리를 달
리는 물의 발자국들이
세상의 덧칠된 시간을 지우며
존재의 물음을 던지고 있다
절대 미감의 영속성에 대하여
* 권옥연 화백의 유화
오브제를 사랑한
nefing.com
제8회 질마재문학상 및 미네르바 2017 상반기 신인상 시상식이 오는 6월 2일 오후 6시 서울 혜화동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다. 계간 문예지 미네르바(발행인 문효치·주간 이채민)와 미네르바 문학회(회장 윤고방)가 함께 여는 이날 시상식에서 김추인 시인이 질마재 문학상을 수상한다.
수상자 김추인 시인은 시력 삼십여 년을 넘긴 중견시인이다. 그 만만찮은 시력에 걸맞게 시세계 또한 주목을 받아왔다. 이번 시집에서도 그녀는 괄목할 만한 몇 가지 시적 특장(特長)들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삶과 시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그 한 축으로 보며 또 다른 하나의 축으로 존재, 그 너머를 바라보는 시인의 깊고 넓은 공간의 확장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시인이 넘나드는 모든 경계의 안과 밖을 보는 시안(詩眼)으로 해서 더욱 증폭된 상상력을 이끌어내며 ‘사소한 일상이나 작은 모래알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뛰어난 상상력이 펼치는 유감없는 세계는 아늑하고도 깊숙하게 다가온다.
‘만 번을 미워하고 천 번을 사랑한’ 끝에 꽃으로 피어나는 ‘생명부여’ 에 대한 지극한 아름다움을 형상화함에도 이 곧 존재의 부활이며 근원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음이 간파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유장한 상상력과 거침없는 사유는 자신의 내적 시공간을 치열하게 전개해 보임으로써 다중적 말의 함의(含意)를 형상화하는 시의 운용에 맺힘이 없고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한국 서정시의 무한한 시공간적 확장을 가능케 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하겠다.
심사위원들은 "우선 그녀의 시적 언술들은 한마디로 매우 유려해 잘 읽히며 시의 어세들은 대체로 거침이 없다"고 평가했다.
요즘 시단의 일부 시들에서 보는 과도한 시적 조사와 그에 따른 독해의 정체(停滯)가 없는 것이며 이 같은 특장의 대부분은 특유의 활달한 상상력에 기인한 것으로 보일 뿐만이 아니라 상상력은 진폭이 넓고 크며 그 진폭은 천체의 광막한 구석구석에서부터 자기내부의 모래사막까지 다양한 공간에 넓고 크게 걸쳐 있고 그런가하면 일련의 과학적 정보들을 매개로 삼아 상상력을 작동시키는 새로움도 보여준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이러한 활달한 상상력은 그녀 나름의 시적 방법론으로 읽힌다. 곧 시적 주체가 겪는 삶과 세계와의 불화를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또한 그 불화는 때로는 야유하듯 때로는 진지한 언사들로 작품 속에 펼쳐지고 있다.
시를 쓰면서 여행을 하면서 심지어는 그림이나 음악을 접하면서도 불화는 계속되고 있다. 누구에게나 삶은 고단하고 세계는 흉포할 마련이다. 그녀는 이런 세계와 삶에 대한 불화와 그 의미에 대한 웅숭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 불화야말로 씨의 남다른 시적 동력이 아닐까 싶다". 라고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주최 측은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에 펼쳐지는 시상식에 문학인이 많이 참여해 축하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날 행사가 끝나면 인근 식당에서 뒤풀이도 진행한다는 게 주최 측의 설명이다.
'문예지작품상 > 질마재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9회 질마재문학상 / 정숙자 (0) | 2020.10.01 |
---|---|
제7회 질마재문학상 / 이경철 (0) | 2020.10.01 |
제6회 질마재문학상 / 이규리 (0) | 2015.05.23 |
제5회 질마재문학상 / 이은봉 (0) | 2015.05.23 |
제4회 질마재문학상 / 김승희 (0) | 2015.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