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 김철순
애처가로 소문난 김씨가
상처한 지 한 달도 안 돼 새장가 가던 날 하늘이 화를 냈다
오랜 가뭄이다
냇가는 이미 물이 마른 지 오래고
밑바닥은 쩍쩍 갈라져
허연 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샌가
들풀들이 밤의 여자처럼 달라붙어
냇가는 이미 들풀들만 무성할 뿐이다
물이 떠난 자리에
재빨리 들풀을 키울 수 있는
발 빠른 김씨가 거기 있었다
충북 보은군 마로면에서 꾸준히 시 창작활동을 하는 김철순(59) 시인이 1일 첫 동시집 '사과의 길'(문학동네 刊)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동시집에는 자연과 생명력으로 가득 찬 동시 45편이 제1부(팔랑, 봄볕이 떨어진다), 제2부(내 귀를 물고 달아나는), 제3부(사과의 길), 제4부(깍두기 좀 치워주세요) 등 모두 4부로 나뉘어 수록돼 있다.
김 시인은 이 작품집에서 엄마의 마음과 농부의 마음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곱게 담아내고 있다. 뛰어난 상상력과 폭넓은 포용력, 언어를 다루는 솜씨도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동시에서 주전자는 오리로, 국그릇 속의 콩나물은 연못의 올챙이로, 가래떡 뽑는 기계는 두 개의 똥꼬가 달린 이상한 동물로 탈바꿈한다.
아이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인의 발상에 금세 빠져들고, 어느덧 시인과 같은 생각을 떠올리며 상투적 인식에서 벗어나게 된다.
쉿!/조용히 해/저,/두 귀 달린 냄비가/다 듣고 있어/우리 이야기를 잡아다가/냄비 속에 집어넣고/펄펄펄/끓일지도 몰라/그럼,/끓인 말이 어떻게/저 창문을 넘어/친구에게 갈 수 있겠어?/저 산을 넘어/꽃을 데려올 수 있겠어?('냄비' 전문)
냄비의 손잡이가 두 개의 귀로 바뀐 발상이 새롭다.
함기석 시인은 그녀의 동시에 관해 "그로테스크한 발상이 낳는 후속 장면이 재미있고 의미심장하다. 냄비라는 일상의 사물에 대한 시인의 인식 전환이 냄비의 기능과 가치를 바꾸고, 말과 말의 죽음이 낳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고 평했다.
김 시인은 1995년 '제1회 지용신인문학상'을 받은 뒤 2011년 한국일보와 경상신문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했다.
그동안 '꿈속에서 기어 나오고 싶지 않은 날'(1997), '오래된 사과나무 아래서'(2003) 등 2권의 시집을 세상에 선보였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던 김용택, 이상희 시인은 당시 그녀의 동시에 관해 "아기자기한 이미지의 환상적 서사, 소박한 일상의 노래가 자연과 우주를 성찰케 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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