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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천(母川) / 김철

 


청계천 골목 어디쯤
모천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양양의 남대천이 아닌
뜨끈한 국수를 파는 국수 집 근처 어디라고
국수 발 같은 약도 적힌 메모를 들고 찾아간
미물도 명물로 만든다는 그 만물상
주물 틀에서 갓 나온 물고기 몇 마리 사왔지
수백 마리 수천 마리 붕어빵 구워낼 빵틀
파릇한 불꽃 위를 뒤집다 보면
세상의 모천을 찾아오는 물고기들
다 중불로 찍어낸 붕어빵 같지
한겨울 골목 경제지표가 되기도 하는
천원에 세 마리, 구수한 해류를 타고
이 골목 입구까지 헤엄쳐 왔을
따뜻한 물고기들
길목 어딘가에 차려놓으면
오고 가는 발길 멈칫거리는 여울이 되는 것이지
파닥파닥 바삭바삭
물고기 뛰는 모천의 목전쯤 되는
영하의 파라솔 아래
엄마가 하루 종일 서 있던 그곳

 

 

 

 

[경제신춘문예 수상소감-대상]"사물에 사유와 시선 새겨넣을 것"

 

나의 직업은 늘 웃어야 합니다. 나의 직업은 언제나 반가워야 했습니다

보이는 시간이 모두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그만한 사유가 있다 믿었고 관심이 없는 것은 눈에서 제외 했습니다.

그러다 잊었던 상황을 찾기 위해 시계바늘을 역행 했습니다. 간절함을 바랄 때 찾게 되는 원인들, 방관에서 오는 타협과 외면이 만든 대화, 설마의 순간은 사실이 되고 약점이 되었으며 사각지대가 되었습니다.

정체된 시간들이 박제된 환경 속에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지 말 것’ 의 말.

꿈을 꾸되 현실에서 꿈을 꾸어야 한다 생각을 했고 날 것을 찾기 위해 사물의 시간을 쫒으며 마주했습니다. 관행처럼 버려진 사물들의 서사. 사물과 삶의 반복됨을 보았고 시간의 흐름에 방치된 의식은 화자와 결부되는 관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물의 시간이 관계와 관심이라면 그 사물로 하여금 잃어버린 시간 장소 공간에 사유와 시선을 새겨 넣겠습니다. 조금 더 낮은 자세로 사람과 사물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이야기가 사실이 될 수 있는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방목으로 교육을 하시고 울타리 예절을 덕이라 가르쳐 주신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 동생 고마워. 언제나 실행하라 말씀하신 선생님, 성숙의 시간을 지켜봐 주신 사장님 매니저님 고맙습니다. 잠재적 불길을 피울 극단 놀, 극단 빛 그리고 B.S.D 발화를 꿈 꾸겠습니다. 원두의 향을 알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로즈에게, 기본 원칙에 충실하도록 침묵에서 피어나는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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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상상력과 상징, 현장성 돋보이는 수준작들

 

경제신춘문예 응모작들의 소재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일반문예 수준으로 올라온 듯하다. 수필이나 수기보다 소설 쪽 수준이 높았다.

'페니 스탁 스캠'은 제목 그대로 1페니의 주식을 작전으로 부풀려 고가에 파는 사기방식과 거기에 얽혀 있는 이상한 명상수련 단체의 이야기를 두 축으로 하는데 우선 소설의 문장이 거칠고, 사건의 전개 방식도 치밀하지 않다.

'발효 초콜릿'은 장학재단 설립과 이 재단에 대한 국제송금이 주 이야기를 이루는 작품으로 일단 긴장감 있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후속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나, 기대하며 끝까지 읽히게는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다 읽고 났을 때 작품의 완결도가 떨어진다.

산문 부분 대상작으로 뽑은 '초파리들'은 외국계 반도체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반도체의 특성, 세계 반도체 시장 움직임의 특성, 그리고 이 외국계 회사의 본사와 지사의 움직임, 그에 따른 내부 인력들의 경쟁과 협력, 협잡 등을 아주 리얼하고 현장성 있게 다루었다. 한 편의 기업소설이자 경제소설로 제목 초파리의 상징성까지 두루 잘 구성하고 또 형상화해냈다. 앞으로 작가로서 좋은 활동을 바란다.

시 부문에서는 예년에 비해 응모작이 적었다. 본심에는 김철씨의 '모천', 송종관씨의 '트럭에게 빗길이란', 정소망씨의 '폐차장 풍경', 권수진씨의 '흔들의자', 최명진씨의 '나룻배'가 올라왔다. 이 가운데 최종 경합은 동반작품들도 우수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모천'과 '폐차장 풍경', '나룻배'가 벌였다.

'나룻배'는 함께 출품한 '홍시'와 함께 시적 수련이 잘된 분의 작품 같았다. 그렇지만 시적 정조가 아련하긴 한데 신인에게 기대하게 되는 참신성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폐차장에서 자동차가 해체되는 과정을 다소 과격하게 그려낸 '폐차장 풍경'은 "삶은 때론 멈춘 곳에서 되살아나는 것이다"라는 마무리가 시적 긴장감을 배가 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출품작들 곳곳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의문의 도로", "노동자의 손" 같은 어색한 관형격 조사 '의' 표현들이 마음에 걸렸다.

응모작 대부분에서 발견되는, '~의'와 관련한 오용이나 남용은 글을 어색하고 딱딱하게 만든다는 점을, 특히 시 쓰는 분들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남은 김철씨의 '모천'을 당선작으로 선정키로 했다. 경제신춘문예라는 주제에도 걸맞고 엄마가 파라솔 아래 붕어(빵)와 하루 종일 서 있던 그곳이 곧 모천이라는 시적 상상력 또한 돋보였다. 춥고 삭막한 겨울, 아름답고 따뜻한 작품이었다. 앞으로 시를 향한 정진을 기대할 만하다. 응모하신 모든 분들께 분투를 기원 드린다.

 

심사위원 이순원, 이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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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손 / 김철

 

 

지금은 폐업한 저곳은

한때 똑같은 손들이 쉴 새 없던 곳

어떤 손에 맡겨도 척척 만들어지던 것들이

가끔은 손가락을 찌를 때

그때만 잠깐 달라지던 손, 손들

늙은 엄마의 똥 귀저기를 갈던 손

치켜든 주먹을 만류하던 손

도시락을 싸고 설거지를 하고

이스트처럼 부풀던 제빵사 필기 문제집을 넘기던 손

온갖 손들이 모여 똑같은 일을 하던 곳

가장 낮은 단가의 수량들이

최저임금으로 쏜살같던 곳

백 개를 조립하면 은전 몇 닢

만개를 조립하면 아껴먹어야 하는

, 뿌듯한 삼겹살

언뜻 보면 백 송이도 넘는

활짝 핀 목련꽃같이 모여 있던 손들

그리고 형광등 아래 거대한 몸통의 자본

그 자본의 한 부분만 만들어 내던

가난한 밑천 같던 가내 수공업

조각만 만지다 전체를 잃어버리는

똑같은 손들의 저 아득한

하청의 하층들

 

 

 

살아남은 자의 도시

 

nefing.com

 

 

전태일의 노동해방, 인간해방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1988년 제정된 전태일문학상이 올해로 27회째를 맞았습니다. 그 짝인 전태일청소년문학상도 올해로 벌써 14회째입니다.

 

27회 전태일문학상에는 시 192/753, 소설 97/118, 생활·기록문 77/104편이 접수되었습니다. 14회 청소년문학상에는 시 145/491, 산문 149/154, 독후감 35/35편이 응모되었습니다.

 

전태일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은 똑같은 손4편입니다. 시인이 선택한 제재들을 그려내는 상상력이 좋습니다. 노동에 대한 주제 의식도 깊습니다. 투고한 작품들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단단해질 거라는 믿음도 들었습니다. 하청의 하층을 작업하는 손들, 단체 행동하는 블루컬러의 나무들, 스탬프를 먹는 저녁 등을 인식하는 시인의 시선이 환기력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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