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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빵 냄새의 시간 / 김은주

 

 

컹컹 우는 한낮의 햇빛,

달래며 실업수당 받으러 가는 길

을지로 한복판 장교빌딩은 높기만 하고

햇빛을 과식하며 방울나무 즐비한 방울나무,

추억은 방울방울*

비오는 날과 흐린 날과 맑은 날 중에 어떤 걸 제일 좋아해?**

떼 지은 평일의 삼삼오오들이 피워 올린 하늘

비대한 구름떼

젖꽃판 같이 달아오른 맨홀 위를 미끄러지듯 건너

나는 보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후끈 달아오르고 싶었으나 바리케이드,

가로수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바리케이드

곧게 편 허리며 잎겨드랑이며 빈틈이 없어

부러 해 놓은 설치처럼 신비로운 군락을 이룬

이 한통속들아

한낮의 햇빛을 모조리 토해내는

비릿하고 능란한 술빵 냄새의 시간

끄억 끄억 배고플 때 나는 입 냄새를 닮은

술빵의 내부

부풀어 오른 공기주머니 속에서 한잠 실컷 자고 일어나

배부르지 않을 만큼만 둥실,

떠오르고 싶어

 

*1991년에 발표된 일본 애니메이션 제목.

** ‘추억은 방울방울에 나오는 대사.

 

 

 

2009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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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조금 더디어도 주저앉진 않을 것

 

누군가는 만남에 대한 어휘가 가치 있다 했지만 나는, 미래의 이별들을 모으느라 하루를 보내곤 했다. 가령, 눈이 오면 눈의 일부처럼 만남을 맞고, 흩날리거나 녹아 없어지는 눈을 보며 이별이 아팠다. 그러한 내력으로 연연해하며 살았다.

 

연연의 목록이 추가될 때마다 구덩이를 팠다. 얕기도, 넓기도 한 연유들이 둥글게 고인 구덩이들. 그 속에 풀리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녹아 없어지지 않을 삶의 문제를 대신해 스르르 몸을 녹였다. 그 구덩이 안팎에서 만만한 한 을 들여다보려 시를 썼다. 게으름과 무책임을 가책으로나마 아플 수 있는 시간. 이제 서른이니 뭐라도 하나는 구원해야 하지 않을까, 골몰하는 밤이 앞으로도 길겠다.

 

은 어린 새의 퍼덕임이라고, 날기 위한 연습에 멈춤이 있어선 안 된다 알려주신 장석남 선생님, 다른 시선은 틀린 게 아니라 특별하다 가르쳐 주신 권혁웅 선생님께 인사 올린다. 통증의 마디인 어머니, 일평생 소슬함의 자루를 메고 가는 아버지,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근원 창수 창현 창미 세 형제들, 많은 것의 동기가 되는 민혁, 나만이 부를 수 있는 이름 이리, 내 모든 풍경의 흉곽인 달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나아가는 연습을 하도록 어깨를 두드려주신 이시영, 남진우 선생님께 조금은 더디어도 주저앉지 않을 거란 다짐을 드린다.

 

 

 

 

희치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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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친숙한 어조로 삶의 다양성 포착

 

마지막까지 선자들의 눈길을 끈 이들은 술빵 냄새의 시간등을 투고한 김은주와 꽃 피는 일등을 보내온 류화, 두 사람이었다.

 

류화의 작품은 집중력과 돌파력이란 점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뤘다. 새벽녘 시장에서 돼지 잡는 장면을 다룬 꽃피는 일은 동물의 몸을 부위별로 분리하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는 처참한 장면을 복사꽃이 피어 가지를 타고 뻗어나가는 것과 중첩시킴으로써 기발하면서도 역동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탐미적 시선이 공존하는 그의 시는 이미지의 조형 능력과 더불어 삶과 죽음의 질서를 투시하는 만만치 않은 인식의 깊이를 내장하고 있었다.

 

김은주의 작품은 심각한 현실에 정공법으로 대응하기보단 가볍게 우회해서 대응하는 여유와 다채로운 화법이 돋보였다. 비근한 현실에서 예기치 않은 놀라움을 끌어낼 줄 아는 이 응모자의 시는 친숙한 어조로 삶의 다양한 양태를 포착하고 있다. 류화의 작품은 집중력이 있는 대신 단조롭게 여겨지는데 비해, 김은주의 작품은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이 보여주듯 대상에 따라 화법을 다채롭게 변주할 줄 아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어 당선작으로 선택했다. 축하와 더불어 정진을 당부한다. 이 밖에 선자의 관심을 끈 응모자로는 바람 부는 날의 모과의 박은지, ‘흰 개와 바다의 이현미, ‘구불구불거리고 싶은 것은 본능이다의 진유경 등이 있다.

 

- 심사위원 이시영, 남진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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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의 세계 / 김은주

 

 

숲이라 불리던 나무들은 한동안 자라기를 멈췄다

그림자를 잘게 부수는 데에만 밤과 초록을 쓸 때

먹는 것에 색의 이름을 처음 붙인 사람은 누구지?

나는 밤과 오렌지가 좋은 사람

일부러 맞춤법을 틀리게 쓰며 친해질 때

아이들은 자주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다

 

나무 밑에 둘러앉은 무리가

그늘이 짜놓은 레이스를 뭉개며 시끄러울 때

공원 벤치는 요의(尿意)를 겨우 참는다

챙이 넓은 모자로 얼굴을 덮고 잠든 척 하는 남자와

빈약한 가슴을 감추기 위해 엎드린 여자

다른 물을 먹고 자란 꽃들을 하나의 병에 꽂아두고 같은 냄새를 견디게 하는 일 사이에

투명한 벽을 종교로 삼은 늙은이들이 있다

 

마른 몸에 액체를 바르고

쓴맛과 단맛이 뒤엉켜 둥글어질 때까지

실온을 견디는 열매와

 

다 다른 맛이 날 때까지

손가락을 빠는 내가 있다

 

 

 

 

희치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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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오전에는 운동, 저녁에는 산책이라고 믿으며

매일 근린공원에 갑니다.

 

햇빛을 감시하느라 짙어진 나무들,

웃는 상으로 짖어대는 개들,

무용보를 그리듯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노인들,

무언가를 애써 이해하려는 듯이 끄덕이다 가는 혼자들.

 

크고 좋은 구름이 따라붙는 사람은 오지 않는

공원의 하루,

하릴없이 어슬렁이는 것만으로 어느새

친해진 돌멩이와 익숙한 그늘이 생겼습니다.

더 튼튼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나에게 몇 시의 햇빛이 유익한지

시를 쓸 땐 어떤 근육을 써야하는지

잘 모릅니다.

눈과 귀를 열어두고 그저 기웃댈 뿐입니다.

 

부족함 많은 저를 1회 수상자로 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뜻한 격려 잊지 않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심사평]

 

작품의 외연적 내포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형식주의의 핵심용어가 낯설게 하기이다. 김은주시인의 [이응의 세계]는 제목에서 외연적으로 생소함을 제공하여 낯섦이 느껴진다. 이응 하면 얼른 떠오른 것이 자음의 이고 둥글다는 것과 작은 원이 연상된다. 그런데 좀처럼 어떤 세계의 대입이 어려울 것 같은 그 이응에 둥근 원인 지구를 끌어와 긍정적 시각으로 내연적으로 아주 사유가 깊은 내포적 가치를 지닌 성찰을 이끌어 내었다.

 

작품 [이응의 세계]는 개성, 성격, 취향이 다른 불안전한 사람들의 모가 난 뾰족함을 상황에 맞추는 구사력으로 둥글어 감을 이야기한다. 은근한 시적 논리이다

 

일본의 현역 시인인 이토오 케이이치는 시() 발상(發想) 차원(次元) 8단계 중 가장 높은 8번째가 나무를 매체(媒體)로 하여 나무의 너머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김은주시인의 [이응의 세계]는 사물 그 너머 이면을 감지한 능력이 돋보인다. 특수한 것을 보편적 감각으로 드러내 놓는 필력 역시 대단하다.

 

작품 [이응의 세계]와 가장 유사하게 견주었던 시는 박소란의 [너무 깊은 오해]였다. 애지회원들의 문자메시지의 투표 결과 김은주시인의 시가 더 많은 표를 얻어 작품상으로 선정되었다. 앞으로 계간지애지”“애지문학회카페에 힘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애지문학회 회원 일동(, 박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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