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부처님 / 김애리나
쉿, 부처님 주무시는 중이세요
햇살이 부처님의 이마에 키스하고파
법당 안을 기웃대는 봄날이었지요
졸립지요 부처님? 그래도 봄인데
나들이는 못 갈망정 마당 가득 피어난 꽃나무 좀 보세요
산사나무 조팝나무 매자나무 꽃들이 치마를 올리고
벌써 바람을 올라탈 준비를 하는 걸요
꽃가루 가득 실은 바람과 공중에서 한 바탕 구르다
주워 입지 못하고, 흘린 치마들이 노랗게 땅을 수놓는 걸요
화나셨어요 부처님? 왜 오롯이 눈은 내리깔고 침묵하셔요
이 봄에 관계하지 못한 生이란 울기만 하는걸요
보세요, 대웅전 계단 옆 고개 숙인 한 그루의 불두화를
향기 많은 꽃에 벌과 나비가 꼬여 열매를 맺는 모습은
수도승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여 성불코자 심었다는 불두화가
관계를 나누다 쓰러진 것들을 보며, 눈물을 찍어내고 있어요
천년이 넘게 한 세상 굽어만 보시는 부처님
오늘처럼 법당에 둘이만 있는 날에는
당신 한번 넘어뜨리고 싶은 마음 아시는지,
헛. 헛 기침하시네요 토라져 눈감으시네요
긴 손 뻗어 몇 날 며칠 불두화의 눈 감겨 주시니
아, 그제야 봄 저무네요 절름발로 지나가네요
[당선소감]
신문사에 작품을 부치던 날이었다. 그날, 꿈에서 부처를 만났다. 거대한 부처가 내게로 저벅저벅 걸어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목이 아프도록 부처의 얼굴을 올려보다가 얼른 합장을 했다. 합장을 하면서 어떤 소원하나를 빌었는지 가물가물 했다. 꿈속에서도 소원을 비는 철부지가 가여웠는지 부처는 빙그레 웃으셨다. 그리고 얼마뒤에 당선통보가 왔다. 너무 기뻐서 터진 웃음이, 곧 눈물로 바뀌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소식을 막상 듣고 보니,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빠를 힘껏 안아드렸다. 내가 글을쓰겠다는 꿈을 품게 된것은 순전히 부모님 때문이었다.
형편이 넉넉치 않았던 나의 유년시절, 아버지는 서점의 직원이셨고 어머니는 책 세일즈를 하셨다. 날마다 무거운 책 짐을 나르는 아빠와, 추운 겨울에 코가 발갛게 얼어도 책 한권을 팔기위해 거리 집집을 누비는 엄마. 나는 한번도 부모님이 부끄럽거나 챙피하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다만, 당신들의 손에서 떠나지 않는그 책들이 너무도 지겨웠었다. 그래서 생겨난 나의 꿈은, 훌륭한 작가가 되어서 내 책만 파는 서점을 부모님께 지어드리고 싶다는 황당한 바람이었다. 다행히도 나의 황당한 바람을 현실로 옮기기 전에, 부모님은 서점을 개업하셨다. 이제, 우리 서점에 내 이름으로 된 시집 한권 놓을 바람으로 지금보다 더욱 치열하게 공부할 것이다. 그리고 감사드려야 할 분이 너무 많다.
고등학생 시절,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많은 힘이 되어주신 땅끝문학회 김경윤 선생님. 모교의 곽재구, 송수권, 김길수, 안광진 교수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지금쯤 눈 동그랗게 뜨고 자기 이름 찾고 있을 친구들아. 한결같이 옆에 있어 줘서 고맙다.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평강왕자 창성선배와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더욱더 정진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심사평] 신선한 신인 작품을 읽는 즐거움
예심을 거쳐 선자에게 넘겨진 작품들 중 몇몇은 서정적인 밀도와 수사적 개성이 남달랐다. 수준 높은 작품들이 응모해 온 것은 해를 거듭할구록 명성을 드높이고 있는 ‘진주신문 가을 문예’의 저력이 아닐까 짐작했다. 마지막까지 되풀이해서 읽었던 시편들은 아래 여섯 분의 작품들이다.
‘검은 열매를 먹는 새’ 등은 상상력의 다양성과 깊이가 살펴졌으나, 촘촘한 심상들이 한 시편 속에서도 파편화이 되어 있어서 작품의 집중력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행간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시를 주밀하게 끌고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리라.
‘딱따구리 경전’ 등은 견고하게 지어진 시의 집을 대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구옥이 되어버렸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가 없었다. 작시를 어떤 울타리 안에만 가두려 애쓰지 말고, 예측 불가지한 상상력의 들판으로 과감하게 방목시키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를 탐독하지 마라’ 등은 잘 짜여진 시적 구조에 실린 탄탄한 사유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작품의 골격만큼 심상 또한 선명하게 부조되었는가는 의문이었다. 스스로를 전환의 자리로 내몰아야 할 것으로 믿어졌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등은 시의 내밀함이 돋보이지만 관념에 기대는 실험은 결국 공허할 수 밖에 없다는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신체를 처절하게 관통해가는 내출혈적인 경과가 더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킨카주’ 등의 시편 앞에서 선자는 오래 망설였다. 불행한 이들을 꽃으로 받아 안음으로써 스스로 만개하는 사랑의 시화도 감염적이었지만, 그것을 건사하는 언어 또한 나무랄 데 없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선이 굵은 서정과 강건한 문체적 마력도 쉽게 물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다만 심상과 심상 사이의 삐꺽거리는 단층들이 수상자의 뒷자리에 이 분을 서게 한 것이리라.
‘봄날의 부처님’이 수상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고즈넉한 절간 속에서 춘정을 불러와 부처님까지 노곤한 봄의 색정 속으로 밀어 넣는 능청이 선자의 입가에 절로 미소를 머금게 했기 때문이다. 돌연한 이 파격은 풍경을 압도하는 상상력의 힘일 것이다. 이 응모자는 또 다른 시편인 ‘A컵의 우주’, ‘안녕? 물고기!’등에서도 섬세한 시적 교직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수상을 축하하며, 큰 시인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해 가시길 당부한다.
심사위원 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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