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엔 사과가 많다 / 김승혜
소백산엔
사과나무 한 그루마다 절 한 채 들었다.
푸른 사과 한 알, 들어 올리는 일은
절 한 채 세우는 일이라
사과 한 알
막 들어 올린 산, 금세 품이 헐렁하다.
나무는 한 알 사과마다
편종 하나 달려는 것인데
종마다 귀 밝은 소리 하나 달려는 것인데
가지 끝 편종 하나 또옥 따는 순간
가지 끝 작은 편종 소리는
종루에 쏟아지는 자잘한 햇살
실핏줄 팽팽한 뿌리로 모아
풍경 소리를 내고
운판 소리를 내고
급기야 안양루 대종 소리를 내고 만다
어쩌자고 소백산엔 사과가 저리 많아
귀 열어 산문(山門)소식 엿듣게 하는가
[당선소감] “삐딱이 부처님 본 뒤 절을 꼭 올리고 싶었다”
화순 땅 운주사, 누운 부처를 처음 보던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곳엔 부처 아닌 돌이 없었다. 뭉툭하게 문드러진 돌들이 부처라니. 코가 닳은 못생긴 부처님, 귀가 떨어져 나간 삐딱이 부처님을 처음 본 그때, 내게 어떤 간절함이 있었기에 천하 귀신들도 탄복할 절을 꼭 한번 올리고 싶었던 걸까?
내 마음 안에 돌탑 하나 세우고 돌아선 그날 이후 가끔 꿈속에서 운주사 가는 그 옛길을 타박타박 걷곤 했다. 그저 한 무더기 돌덩이를 만나도 그것이 탑이 되고 부처가 되게 하는 간절한 천불천탑의 땅. 이제 나는 떨리는 첫 마음 모아 새로 돌탑을 올린다. 그러나 이 간절함이 어디에 가 닿게 될지 지금은 모른다. 다만 나를 위해 불문 훨훨 열어놓고 뜨겁게 데워주는 내 고마운 사람들의 마음, 그들의 염려와 기도 안에서 운주사 가는 옛길을 가듯 멀고 낯선 길을 간다.
늘 따뜻한 가르침을 주시는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선생님들,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는 학형들, 부족한 시를 세상에 내놓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심사평] “水壓 센 한국詩의 바다서 보물 건질 능력 있어”
김승해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 장성실 '소금쟁이 메모', 이병일 '빈집에 핀 목련', 이다연 '가설무대'를 최종심 대상작으로 좁혀가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이는 이들 네 작품이 최소한, 누가 읽어봐도 "이게 시야?" 하는 의문이 들지 않게끔, '스스로 시를 성립시키는' 구성의 내구력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당선작을 고르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렸고, 결정을 두 번이나 번복할 정도로 우리 두 심사자들을 꽤 괴롭혔다. 이들 네 작품이 두루 괜찮았다는 말도 되겠지만, 동시에 눈에 확 띄게 스스로를 구별시키는 작품이 없었다는 말도 된다. 결국 우리가 이번 심사에서 기대하고 예감하고자 한 것은 누가 보다 오랫동안 시를 쓸 수 있겠는가, 수압이 센 한국시의 해저에 누가 더 오랫동안 잠수하여 보물을 건져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김승해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를 당선작으로 최종결정했다. 이 시가 그 자체로 잘 다듬어진 작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과 대등한 수준의 다른 응모작들을 고루 보여줌으로써 앞으로도 그가 계속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가 한 권의 시집을 가지고 나타나서 우리의 눈을 황홀하게 부릅뜨게 해주길 바란다.
- 심사위원 문정희. 황지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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