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극장 / 김수완
- 옮겨진 의자
의자가 옮겨져 있다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내 등을
누군가 보고 간 것이 틀림없다
미농지를 대고 그대로 옮겨 가지고
어디론가 달아났다 나는 순간
가구들을 얼른 돌려 놓고
등 없는 벽처럼 서 있었다
의자는 가끔 옮겨지기도 하니까
그자는 다시 올 것이 틀림없다
벽이 되니 등은 더욱 어두워진다
그자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나는 독극물을 해독하는 쥐처럼 몸을 뒤틀며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내 등을
닦아낸다 닦을수록 오히려 마음 약했던
자해의 자국들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나는
거울을 보며 미농지를 등에 대고 애써
그 희미한 선 하나하나를 그려 나간다
그것은 내 시력을 달아난 그자에게
내어주는 일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겠지만
나는 조금씩 의자를 스스로
옮겨 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로 20회를 맞은, 1500만원 고료 '진주가을문예' 공모 당선작이 가려졌다. 25일 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과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위원장 박노정)는 시부문에 '원형극장-옮겨진 의자'를 낸 김수완(오산), 소설부문에 단편 <렛츠 탱고>를 낸 이주혜(서울)씨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고 발표했다.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는 지난 10월 말까지 공모를 실시해, 예심과 본심을 거쳐 당선자를 가려냈다. 이번에는 시 183명 1228편, 소설 122명 213편이 응모했다.
시 본심을 맡았던 김사인 시인은 "당선자의 7편 시들은 매우 빼어난 것이었고, 어느 작품도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을만한 기품을 지니고 있었으며, 흠 잡을 데 없고 또렷하기로는 표제시인 '창동역 플랫폼'이 낫다 하겠지만, 그 작품에 묻어남은 일말의 작위를 피해 '원형극장-옮겨진 의자'의 모호한 듯한 섬세함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 등을 '미농지를 대고 그대로 옮겨가지고' 달아난 그 자와 옮겨진 의자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음으로서의 등에 대한 나의 예민한 트라우마가 이루는 화음은 내밀하면서도 우아하게 또다른 마음의 공간, 감각의 공간으로 성립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 당선자 김수완씨는 "누군가 시를 쓴다는 것은 숭고한 몰락이라고도 했던가, 구원인지 몰락인지는 몰라도 그 사람 몰래 화분에 물을 주고, 버려진 인형을 챙겨 집에 온다, 그러면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구원인지 몰락인지는 몰라도 혼자 구원 받지는, 특히 혼자 몰락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어딘가에 몰락하는 사람들이 몇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수완씨는 수성고, 공주대를 나와 현재 오산 성호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경희사이버대학원 미디어문예창작과에 재학하고 있다. 소설 당선자인 이주혜씨는 전주 출생으로, 현재 주부이면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주혜씨는 "문장 한 공기를 지어낼 자리를 마련해준 재단 관계자와 분명 질거나 되었을 그 밥을 받아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며 "소설 핑계를 대며 자꾸 맛없는 밥을 해줘도 싫은 내색없이 응원해준 남편과 아이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고 싶고, 당선작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모든 것인 내 아버지 어머니, 그분들의 강건을 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진주가을문예(옛 진주신문가을문예)는 진주에서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는 김장하 이사장이 남성문화재단을 만들어 기금을 출연해 운영하고 있다. 당선자 상금은 시부문 500만 원, 소설부문 1000만 원이다. 시상식은 오는 29일 오후 5시 진주 '더하우스 갑을'(옛 갑을가든)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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