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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상자 : 문인수

 

 

2. 수상작품 :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외 4편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지라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

저녁노을 시뻘건 것 물에 씻고 나서

저 달, 소리북 하나 또 중천 높이 걸린다.
산이 무겁게, 발원의 사내가 다시 어둑어둑
고쳐 눌러 앉는다.

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 추나

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그립다는 말의 긴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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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심사위원 : 유종호(문학평론가, 연세대 교수), 황동규(시인, 서울대 교수), 이성선(시인), 황현산(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최동호(시인, 고려대 교수)

 


4. 심사평

「觀想의 깊이」

심사가 마친내 문인수와 박용하 두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을 수상자로 선정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자 심사위원들은 모두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인수에게는 觀想의 깊이가 있다면, 박용하에게는 패기가 있다. 박용하에게서는 자신의 視像과 이미지를 강요하려는 조급함이 약점이라면, 문인수의 시는 얼핏 보기에 선동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여겨진다. 나는 처음부터 문인수의 편에 서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박용하의 더 훌륭한 시들이 미래에 나타날 것이라고 믿어 그의 어깨에 수상의 짐을 올려놓는 것이 반드시 이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안정감과 신선함을 동시에 지닌 시인을 찾는다면 문인수에게서 그 시인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문인수의 시는 주로 자연에 관해서 노래하며, 그 자연관은 한국적 산수화의 전통과 일정하게 맥이 닿아 있다. 그러나 그에게서 자연이 드러나는 방식은 개량 한복에서 연상되는 것과 같은 그런 오종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치레도 아니며 자기 기만도 아니다. 그의 자연에는 착할래야 착할 수 없는 어떤 의붓자식의 한 같은 것, 일을 벌써 저질러 놓고 원망을 듣는 놀음꾼이나 또다시 길 떠난 가객의 속 그늘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항상 말해 보아야 이해될 턱이 없다는 듯 길게 표현되지 않는다. 시인은 말을 하려다 말고 북채만 한번 부러져라 내리치는데, 이 암묵법은 오히려 모던하다.
「3월」, 아직 날씨 춥고 꽃만 뜨거운데, 무덤 속의 아버지, 어머니 두런거린다: 가슴속에 고려장을 했기 때문인가. 「10월」, 호박 따낸 자리가 고름 짜낸 자리처럼 가을 한복판이 움폭 꺼져 있다: “한동안 저렇게 아프겠”지만, 회복기의 환자처럼 아프겠지.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좋다, 그런데 왜 북채는 동백이 떨어져 선혈지는 순간에만 난타하는가, 왜, 아깝게도 심사 대상 기간 밖에 있는 좋은 시「동강의 높은 새」, 새파란 산 구비들 이어져 “일자무식의 백리 긴 편지를 쓴다”는데, 그 편지를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제 몸 내던지고 살아온 시인은 아직도 세상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축하한다. 그의 수상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출석 부르는 이 의문들을 축하한다.(황현산)

 

 

파란 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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