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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위하여 / 임영조


면벽 100일!
이제는 알겠다, 내가 벽임을
들어올 문 없으니
나갈 문도 없는 벽
기대지 마라!
누구나 돌아서면 등이 벽이니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마음속 집도 절도 버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귀양 떠나듯
그 섬에 닿고 싶다

간 사람이 없으니
올 사람도 없는 섬
뜬구름 밀고 가는 바람이
혹시나 제 이름 부를까 싶어
가슴 늘 두근대는 절해고도여!

나도 그섬에 가고 싶다
가서 동서남북 십리허에
해골 표지 그려지 금표비(禁標碑) 꽂고
한 십 년 나를 씻어 말리고 싶다

옷 벗고 마음 벗고
다시 한 십 년
볕으로 소금으로 절이고 나면
나도 사람 냄새 싹 가신 등신(等神)
눈으로 말하고
귀로 웃는 달마(達磨)가 될까?

뒤 어느 해일 높은 밤
슬쩍 체위(體位) 바꾸듯 그 섬 내쫓고
내가 대신 엎드려 용서를 빌고 나면
나도 세상과 먼 절벽 섬 될까?
한평생 모로 서서
웃음 참 묘하게 짓는 마애불(磨崖佛) 같은.

 

 

 

귀로 웃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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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제8회 소월시문학상에 임영조 시인이 선정됐다. 대상 수상시인 임영조의 <고도를 위하여> 등 작품 20편을 싣고, 시인 6인의 추천 우수작 57, 기수상시 인의 시 8편을 함께 묶었다.

 

소월시문학상 선정위원회(구상 · 김남조 · 오세영 · 이어령 · 조남현)에 따르면 임영조는 우리 시대의 시가 산문에 압도당하고, 또 산문화로 치닫는 것을 자랑삼는 시류에도 불구하고, 이에 휩쓸리지 않고 고고히 언어의 창조 행위에 몰두해 왔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한 시인이다. 그의 시에 제9회 소월시문학상의 영예를 안겨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임영조 시인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70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출항',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목수의 노래'가 당선되었다. 1991년 제1회 서라벌문학상, 1993년 제38회 현대문학상, 1994년 제9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바람이 남긴 은어] [그림자를 지우며] [갈대는 배후가 없다] [귀로 웃는 집]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 등이 있다.

 

인간 욕망의 흔적을 지워 버린 달관과 무욕과 탈속의 한 경지를 드러내는 자아 성찰과 존재 탐색의 시세계를 보이는 임영조 외에도 강은교, 김혜순, 송재학, 이기철, 천양희, 홍신선의 시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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