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상]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정일근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을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떠나온 점등인의 별로 돌아가며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신인상] 귀가 서럽다 / 이대흠
강물은 이미 지나온 곳으로 가지 않나니
또 한 해가 갈 것 같은 시월쯤이면
문득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네
사랑했던가 아팠던가
목숨을 걸고 고백했던 시절도 지나고
지금은 다만
세상으로 내가 아픈 시절
저녁은 빨리 오고
슬픔을 아는 자는 황혼을 보네
울혈 든 데 많은 하늘에서
가는 실 같은 바람이 불어오느니
국화꽃 그림자가 창에 어리고
향기는 번져 노을이 스네
꽃 같은 잎 같은 뿌리 같은
인연들을 생각하거니
귀가 서럽네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모임' 대표로 활동하는 정일근 시인(52·경남대 교양학부 교수)이 '제7회 육사시문학상'의 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육사시문학상 주관사인 TBC 대구방송은 제7회 육사시문학상 본상 수상자로 정일근 시인의 시집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문학과 지성사)를, 젊은시인상 수상자로 이대흠 시인의 시집 '귀가 서럽다'(창작과 비평사)를 선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제7회 육사시문학상 심사위원 김주연(문학평론가), 정희성(시인), 김종해(시인), 김재홍(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이태수(시인) 등은 "운명의 형식으로서 고독과 허무를 깊이 있게 천착하면서 그것을 사랑과 슬픔으로 따스하게 치유하려는 서정적 휴머니즘이 돋보이는 뛰어난 시집"이라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시상식은 30일 오후 6시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이육사 문학관에서 열리는 이육사문학축전 개막식에서 마련된다.
본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함께 상금 1000만 원이, 젊은 시인상 수상자에게는 500만 원이 주어진다.
정일근 시인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에 우리나라 시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육사 이원록 선생의 이름자가 들어간 문학상을 수상하게 돼 무거움을 느낀다"며 "육사 선생의 시정신에 부끄럽지 않는 시인이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 시인은 1984년 '실천문학'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 '처용의 도시', '경주 남산',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오른손잡이의 슬픔',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등이 있다.
그동안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특히 시력 25년을 기념해 펴낸 정일근 시인의 10번째 시집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는 지난해는 지훈문학상을, 올해는 육사시문학상을 수상해 남다른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편 '육사시문학'은 민족시인 이육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TBC 대구방송이 지난 2004년 제정했으며 그동안 정완영, 김종길, 허만하, 이수익, 정희성, 김형영 시인 등이 수상했다.
'국내 문학상 > 이육사시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9회 이육사시문학상 / 박형준 (0) | 2011.07.23 |
---|---|
제8회 이육사시문학상 / 천양희 (0) | 2011.07.23 |
제6회 이육사시문학상 / 김형영, 류인서 (0) | 2011.07.23 |
제5회 이육사시문학상 / 정희성, 신용목 (0) | 2011.07.23 |
제4회 이육사시문학상 / 이수익, 김선우 (0) | 2011.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