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 신달자
메루치와 다시마와 무와 양파를 달인 국물로 국수를 만듭니다
바다의 쓰라린 소식과 들판의 뼈저린 대결이 서로 몸 섞으며
사람의 혀를 간질이는 맛을 내고 있습니다
바다는 흐르기만 해서 다리가 없고
들판은 뿌리로 버티다가 허리를 다치기도 하지만
피가 졸고 졸고 애가 잦아지고
서로 뒤틀거나 배배 꼬여 증오의 끝을 다 삭인 뒤에야
고요의 맛에 다가옵니다
내 남편이란 인간도 이 국수를 좋아하다가 죽었지요
바다가 되었다가 들판이 되었다가
들판이다가 바다이다가
다 속은 넓었지만 서로 포개지 못하고
포개지 못하는 절망으로 홀로 입술이 짓물러 눈감았지요
상징적으로 메루치와 양파를 섞어 우려낸 국물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바다만큼 들판만큼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몸을 우리고 마음을 끓여서 겨우 섞어진 국물을 마주보고 마시는
그는 내 생의 국물이고 나는 그의 국물이었습니다
제28회 정지용 문학상에 신달자 시인의 '국물'이 선정됐다. '향수(鄕愁)' 시인 정지용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옥천 지용회는 제28회 정지용문학상에 신달자 시인의 '국물'을 선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심사위원인 유종호 시인은 "17행의 경어체 시편이 일생의 경험을 오래 동안 반추하고 고아서 우려낸 진국 같은 작품이다"며 "'국물'을 천거하는 소리에 아주 쉽게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근배 심사위원은 "'들판이다가 바다이다가' '포개지 못하는 절망으로 홀로 입술이 짓물러 눈을 감았지' 라는 대목에서 사랑이 시에 어떻게 포개지고 시가 사랑을 얼마나 진하게 '몸을 섞으며' '간질이는 맛을'내는지 알싸하게 느꼈다"고 평했다.
이 상은 내달 14일 제29회 지용제가 열리는 옥천군 구읍상계공원 특설무대에서 시상된다.
신달자 시인은 경남 거창 출신으로 1964년 '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봉헌문자' '아버지의 빛' '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는 '다시 부는 바람' '백치애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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