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야(經夜) / 김세희
일요일에 왔으니까요
일요일에 가는 게 어때요 아무 부담 없지 않을까요
틀니조차 걸 수 없다고요 입 벌려 억억거릴 때
차곡차곡 다져진 미련, 내가 다 봤어요
꿀꺽 삼켜요 그거
똥이 질면 질다고 때린대요 볼기를
되면 되다고 때린대요
볼기짝이 원숭이 같을 거라고요
요양보호사를 원망하나 봐요 그러지 마세요
손은 잡고 가야 하나요 놓고 가야 하나요
팔다리가 투명해지고요
껍데기를 나온 껍데기처럼 쫄깃해 보였어요
뭐라도 씹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시계를 보다가요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하루살이 한 마리 눌러 죽이고 돌아 나왔어요
일요일에 다시 올게요
침대보다 더 납작해진 사람들이
딱딱한 제 그림자에 등을 기대고 있어요
당신은 나를 얼마나 기다렸던가요
나는 당신을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부채질중이에요 잘 타버리라고요
아빠, 우린 서로를 지나가야 하잖아요
일요일에 올 게요 못다 쓴
당신 얼굴 가지러
올해로 24회를 맞은 1500만원 고료 ‘진주가을문예’ 당선자가 가려졌다. 시는 외 9편을 낸 김세희 시인(46, 김해), 소설은 중편 를 낸 오성은 소설가(34, 부산)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진주가을문예’는 남성(南星)문화재단이 1995년 기금을 마련해 옛 에서 하다 지금은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가 전국에 걸쳐 신인 공모를 벌여 운영해오고 있다. 당선자한테는 시 500만원, 소설 1000만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올해는 지난 10월 31일(소인 유효) 공모 마감했고, 시는 180명 1278편, 소설은 116명 210편(중·단편)이 응모했다. 심사는 예심과 본심 과정을 거쳤다.
시는 송찬호 시인(시집 등)이 본심, 김륭 시인과 임재정 시인이 예심을 맡았다. 소설은 백가흠 소설가(계명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가 본심, 원시림 소설가와 정용준 소설가가 예심을 보았다.
송찬호 시인은 심사평에서 당선작에 대해 “섬세한 언어의 결을 갖고 있다. 이런 정련된 언어에 대한 자의식은, 죽음으로 다가가는 엄숙한 삶의 제의를 묘사한 ‘아빠, 우린 서로를 지나가야 하잖아요 / 일요일에 올게요 못다 쓴 / 당신 얼굴 가지러’와 같은 빼어난 시구를 탄생케 한다. 언어와 시적 대상과의 의도적인 불일치로 사물을 새롭게 탐구하고 이 세계를 낯설게 환기하는 감각도 돋보인다. 또한 전체적으로 작품의 수준이 고르고 완성도가 높은 것이 치열한 습작의 흔적이 역력하다”고 했다.
당선자들은 소감문에서 기쁨과 각오를 나타냈다. 김세희 당선자는 “시 한 편씩 쓸 때마다 ‘이 거 시 맞나?’ ‘내가 뭐라고 쓴 거지’ 뚫어지게 쳐다만 보고 있고는 했습니다. 쳐다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너무 잘 갔습니다”라며 “아빠가 돌아가시기까지를 보면서 제 시 를 썼습니다. 숀탠이라는 작가 경야라는 그림책을 보고, 감동이 저장되어 있는 상태였고 말입니다. 누구나 경야의 그 밤을 지나거나 지켜보거나 할 것입니다. 주시는 상은, 제게 매일을 마지막처럼 최고의 노력을 하라고. 최고의 시를 뱉어 내라고 하는 견적서라고 생각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15일(토) 오후 4시 진주 ‘현장아트홀’(진주시 진주대로1040번길 6-4)에서 열린다.
김장하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은 “저만치서 찬 겨울바람이 다가와 우리의 속살을 헤집지만, 마음은 여느 때보다 훈훈합니다. 그것은 진주가을문예 새 가족을 맞이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며 “진주가을문예가 올해로 스물 네 번째를 맞았습니다. 이번에도 공모와 심사 과정을 거쳐, 참신하고 의욕이 넘치며 기운 팔팔한 새 시인과 소설가를 뽑았습니다. 부디 오셔서 큰 박수로 격려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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